45년 ‘花禪一如’… 꽃송이마다 一念으로 佛心 담아
45년 ‘花禪一如’… 꽃송이마다 一念으로 佛心 담아
  • 글·사진=박도일 수필가
  • 승인 2017.01.06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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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스님 (보림꽃예술중앙회장ㆍ기원사 회주)

꽃과 함께한 인생
3세 때 죽을 고비 넘기고
모친과 절에 다니며 불연 시작
옥련암서 은사 스님 만나
어릴 때부터 꽃·나무 좋아해

불교 꽃꽂이 새 장 열다
동대 입학 후 꽃꽂이 입문
40여 년 출품과 강의로
포교·전법 활동 활발

회향도 오직 꽃꽂이로
45주년 기념 전시회 열고
후학 양성 위한 길 모색
꽃꽂이 관심 가져주길

. 인간이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것 중에 그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꽃은 인간이 가장 기쁜 순간과 가장 슬픈 순간에 찾는 언어. 꽃 한 송이로 법을 주고받았던 그 옛날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꽃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장 아름답고 깊은 언어였다. 그만큼 꽃을 건네는 일은 특별한 일이다. 모든 언어가 문법을 가졌듯이, 꽃도 문법을 가졌다. 바로 꽃꽂이다. 꽃꽂이는 꽃의 문법이다. 그리고 그 꽃꽂이가 불가(佛家)의 문자를 품는 순간, 그것은 그 옛날의 염화(拈華)’와 같은 것이리라. 45년 동안 꽃꽂이로 염화의 길을 걸으며 불교꽃꽂이의 영역을 넓힌 이가 있다. 서울 기원사 회주 지연 스님이다. 스님의 염화, 꽃꽂이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생사의 반전, 출세간의 반전
지연 스님은 열 살 때, 서울 미타사에서 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숙연 아닌 인연이 어디 있을까. 스님의 이른 출가 역시 그렇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지연 스님이 세 살 때였다. 할아버지 환갑 잔칫날이었다.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놀던 아이는 갑자기 일어난 어머니 치맛자락에 딸려가 쇠죽을 끓이고 있던 뜨거운 가마솥에 빠졌다. 급히 아이를 건졌으나 아이는 숨을 쉬지 않았다. 모두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잔칫집이 초상집이 되었다. 그렇게 생과 사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의 죽음이 확실해지자 모두가 아이를 그만 묻자고 했지만 스님의 어머니는 이제 겨우 세 살인 딸을 차마 보낼 수 없었다. 모친의 오열에 가족들도 차마 아이를 쉽게 묻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짧은 세연을 접고 죽음으로 변한 아이는 방 한 편에서 금생의 하룻밤을 더 보내게 된다. 창가에 여명이 번질 무렵, 방안에는 기적이 번진다. 아이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기적처럼 살아났다.

한 번 더 사는 거죠.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랬다. 스님의 극적인 생사는 지금 우리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본인도 기억할 수 없는 시절의 생사 반전은 숙연의 봉인을 푸는 일이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 지연 스님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주 아팠다. 마음도 몸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약했다. 지연 스님의 어머니는 스님을 데리고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구 옥련암. 어머니의 기도는 하나였다. 딸아이의 건강. 다른 아이들처럼 튼튼하게만 자라주는 것이었다. 지연 스님의 집안에는 스님이 한 분 있었다. 촌수가 조금 먼 할머니였는데, 해인사 삼선암에 계신 수한 스님이었다. 옥련암은 수한 스님의 상좌 스님이 계신 곳이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는지, 절에 가 있으면 덜 아프고 편안했어요.”

지연 스님의 어머니는 더욱 열심히 지연 스님을 데리고 절에 다니며 기도를 놓지 않았다. 지연 스님이 열 살 때였다. 지연 스님은 출가 은사인 대운 스님을 옥련암에서 만난다. 대운 스님은 옥련암에 인연이 있어 한번 발걸음을 하면 오래 머물렀다. 지연 스님의 세간사를 들은 대운 스님은 지연 스님의 지난날을 불연이라고 생각했다. 대운 스님은 서울로 올라가는 길 위에 열 살 난 지연 스님을 태웠다. 지연 스님의 어머니는 그 길을 막지 않았다. 그 길이 지연 스님의 출가였다. 그 옛날 생사의 반전처럼 출세간의 자리 역시 순간에 그 자리를 바꾸었다.

▲ 지연 스님은… 서울 미타사에서 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4년 관응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고, 1968년 동학사 강원 사교과를 수료했다. 1974년 법주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고, 1976년에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기원사 초대 주지를 지냈고, 현재 회주로 주석하고 있다. 1980년 법보연구원 경국사 대교과를 졸업했고, 1988년부터 회룡사와 동화사 양진암 등에서 안거를 마쳤다. 전국불교꽃꽂이연합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보림꽃예술중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불교꽃예술부분 공로패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불교의 꽃 이야기〉〈보림회의 길라잡이〉〈한국꽃꽂이 지침서〉 등 다수가 있다.

꽃을 집다명동서 꽃꽂이 연구소 개원
지연 스님은 삭발을 하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시 그랬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지연 스님은 절로 가야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애써 물어볼 필요가 없는 자명한 일이다. 지연 스님은 그 쉽지 않은 시간을 여법하게 견디었다. 지금에서 보면 그저 불연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어린 지연 스님으로서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연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꽃과 나무를 좋아했다. 길이가 다른 나무 끝을 보면 맞춰놓고 싶고, 흩어져 핀 꽃들을 보면 모아 놓고 싶었다. 불단에 올라가는 꽃들을 볼 때면 늘 아쉬웠다. 좀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지연 스님은 늘 꽃과 나무를 바라보면서 살았다. 아마도 그것은 힘든 시간 속에서 작지만 큰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숙연 속의 숙업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지연 스님의 불교꽃꽂이는 그 시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지연 스님은 열일곱 살 때 관응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고, 4년 뒤 동학사 강원 사교과를 마친 뒤, 돌연 동국대 불교대학 선학과에 입학한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지연 스님은 불명을 받은 수좌로서 당연한 공부만 하고 있다는 것이 왠지 부족한 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법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공부로 보다 충분한 수행자의 면모를 갖추고 싶었다. 선화를 그리고, 선시를 쓰고, 불교음악을 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통해 불법을 펴고 있는 스님들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바람이 불어오듯 지연 스님의 귀에 들려온 것이 있었다. ‘꽃꽂이였다. 꽃꽂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지연 스님은 무릎을 쳤다. 그리고 가슴이 뛰었다. 만난 것이다. 인연을.

꽃꽂이에 대한 저변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지연 스님은 학교 주변에서 꽃꽂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우금연 원장이 운영하는 금연꽃꽂이연구소였다. 처음 2~3년간은 어른 스님들 눈을 피해 꽃꽂이 공부를 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꽃꽂이 사범과정을 마친 지연 스님은 동국대를 졸업하면서부터 한국 꽃꽂이협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명동에서 꽃꽂이 연구소를 열어 꽃꽂이 강좌를 시작했다. ‘스님의 꽃꽂이는 당연히 불교꽃꽂이였고 그 강좌의 자리는 다름 아닌 포교의 장이 되었다. 스님은 육법공양 관련 여러 특강과 40년 넘게 매주 수요일 기원사에서 정기 강좌를 열고 있으며, 매년 초파일 즈음에는 단기 무료강좌도 꾸준히 열고 있다.

지연 스님은 꽃꽂이를 시작한지 10년 만인 1980년대 초부터 비슷한 시기에 꽃꽂이를 시작한 몇몇 도반들과 전국불교꽃꽂이연합회의 창립을 모색한다. 하지만 저변은 열악했다. 광고를 내고 전국으로 수소문했지만 사범자격증을 가진 스님은 열 명이 채 안 됐다. 세월이 필요했다. 19889월 마침내 서울 서초동 수안불교회관에서 전국불교꽃꽂이연합회가 출범한다. 그 해부터 전국불교꽃꽂이연합회는 매년 전시회를 열며, 불교꽃꽂이의 기원과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는 협회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지연 스님은 보림꽃예술중앙회(이하 보림회)’를 만들어 개인 차원에서도 공부를 이어간다. 또한 불교꽃꽂이연구소를 개설해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꽃들의 이야기를 다룬 불교의 꽃 이야기등 불교꽃꽂이를 위한 교재를 발간한다.

불교 속의 문화를 알림으로써 포교의 장을 넓히고 싶었어요. 법화경이나 화엄경처럼 꽃으로 장엄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보다 더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연 스님은 이후에도 1998년에 보림회의 길라잡이라는 꽃꽂이 교재를 발간했는데, ‘보림(寶林)’은 극락정토의 칠보(七寶) 수림(樹林)으로, 무량수경칠보의 제수(諸樹)가 세계에 가득하다에서 온 것이다.

현대의 수반 꽃꽂이는 불교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꽃꽂이의 가장 기초적인 화형의 구도가 삼존불의 배치도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이 되는 꽃을 가운데 꽂은 후 균형을 이룰 꽃을 양옆에 꽂는데, 바로 이러한 삼각구도는 중앙의 주불인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을 모시는 삼존불의 배치와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꽃꽂이라는 영역은 수행자의 영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을 꽂을 땐 늘 수행자의 마음으로 꽃 하나하나에 일념을 담아 놓아야 합니다.”

지연 스님은 작품을 시작하면 그 작품이 끝날 때까지 꽃이 된다. 꽃 말고는 스님의 육근을 지나가지 못한다. 공양을 했으나 공양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해우소를 다녀왔으나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화선불이(花禪不二)’이다.

이렇듯 지연 스님이 꽃꽂이를 통해 홍법에 기여한 것은 눈에 보이는 작품과 강좌 등 일련의 불사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스님이 불교꽃꽂이를 통해 한국 전체 꽃꽂이계에 불교의 위상을 심은 것 또한 커다란 기여이며 불사라 할 수 있다.

지연 스님은 강좌와 전시, 출품 외에도 성철탄성혜암관응 등 큰스님들의 꽃상여를 장엄하는 등 선지식의 열반길 장엄불사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꽃이 있는 곳이면 스님이 있었다.

▲ 꽃꽂이에 쓸 꽃을 손질하는 지연 스님.
45년 동안 걸어온 꽃길
검은 소 한 마리가 바위 속으로 뛰어 들고, 동자 하나가 소를 뒤따른다. 동자 옆에는 마디초가 솟아있고, 노박넝굴이 걸려있다. 동자와 소의 발밑엔 라벤더와 소국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꽃꽂이로 그려낸 심우도이다. 지연 스님의 작품 여정출가라는 작품이다. 60년 전 자신의 출가 모습에서 온 것이다. 그 옛날, 어머니의 손을 놓고 영문도 모른 채 스님을 따라가던 어린 지연 스님의 기억이 그린 그림이다.

20161018. 서울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제6회 보림회 전시회가 마음 머물다-()()()’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보림회 창립 25주년과 회장인 지연 스님의 꽃꽂이 4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회원들과 ()한국꽃꽂이협회 초대작가 등 불교와 일반 꽃꽂이 작품 90여 점이 전시됐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지연 스님의 고희에 맞춰 출가부터 지금에 이르는 지연 스님의 일대기를 8부작으로 그려낸 여정이었다. 그 중 앞에서 소개한 작품 여정은 스님이 열 살 때 속세를 떠나던 날을 그린 작품이다. 여정은 가사장삼과 호접란, 망개가 어우러진 향화(25)’. 기원사를 창건하는 () 그리고 화예(花藝35)’, 발우에 꼿꼿하게 선 스틸그라스로 수행의 공양을 표현한 깨달음의 공양(40)’, 오색 국수가닥과 수양버들, 클레마티스로 만개한 꽃길을 그려낸 화엄법계(51)’, 불교꽃꽂이 저변 확대라는 원력을 담은 만행화(61)’, 출가 60년과 꽃꽂이 45년의 진리의 향연(오늘날)’까지. 여백과 절제로 그려낸 꽃그림은 선()의 세계와 닿아있다. 작품 여정의 백미는 탑 그늘 아래이다. 우주를 상징하는 속이 빈 나무둥치 안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와 석탑이 서있다. 그 사이에 안시리움 하나가 피어있다. 지연 스님, 자신이다. 지연 스님은 이 작품을 통해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법을 만난 것을 복으로 여기고, 그 마음 꽃공양으로 여한 없이 회향하고자 하는 자신의 서원을 그렸다.

올해로 꽃꽂이에 입문한 지 45년이 됐습니다. 이제는 한국불교계의 꽃을 이용한 문화포교가 많이 성장한 만큼 후학들이 불교적 가치를 잘 담아내 더 많은 전법의 기회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꽃다운 회향
꽃꽂이 강의를 40여 년간 해왔어요. 지금도 하고 있는데, 올해까지만 할 생각입니다. 꽃꽂이를 놓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좀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것이 1세대인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공부해서 후학들에게 일러주고 가는 것이 저의 회향입니다.”

45년 동안 꽃꽂이 한 길을 걸어온 지연 스님은 매년 불교꽃꽂이연합회, 보림회 등의 전시에 작품을 출품해왔으며, 여섯 차례의 개인전과 5권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공식 작품집에 실린 작품만 해도 천여 점이 넘는다. 앞으로 연구와 저술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지연 스님은 한편으로 출가자들의 불교꽃꽂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아쉬워했다.

예전에는 비구니 강원에 꽃꽂이 강좌가 많이 있어 강의를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꽃꽂이 강좌가 대부분 사라졌어요. 그만큼 관심이 줄었다는 것이겠지요. 육법공양에 꽃공양이 있다는 것은 꽃이 그만큼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꽃을 여법하게 다루는 것 역시 중요한 불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불제자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석가모니부처님과 아쇼다라 공주는 전생에 꽃으로 인연을 시작했고,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시던 날엔 꽃비가 내렸다. 아기부처님이 처음 내딛었던 발걸음 마다엔 연꽃이 피어올랐고,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은 가섭 존자와 꽃 한 송이로 법을 주고받았다. 부처님께서 아쇼다라 공주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전생의 인연을 설하신 후로부터는 일곱 송이의 꽃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풍습이 생겼다. 그 만큼 꽃은 대중의 삶을 아름답게 장엄해주는 소중한 존재로, 대중에겐 보배인 것이다. 지연 스님의 걱정과 아쉬움에 대중이 함께 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도 지연 스님은 꽃을 든다. 그 꽃송이 속엔 우리가 주고받아야 할 소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꽃만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절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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