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

하루의 절반은 낮이요 절반은 밤이다. 절반은 빛이요 절반은 어둠이다. 하루는 길면서도 짧다. 짧으면서도 길다.

<법구경>에 박힌 말씀처럼 ‘지친 자에게 길은 멀고 잠 못 이루는 자에겐 밤이 길다.’ 하루 또한 그렇다.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여 즐거운 일이 많으면 하루는 짧다. 마음이 복잡하고 몸이 불편하여 걱정이 풀리지 않으면 하루는 길다. 즐거우면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지만 슬프면 시간이 멈춘 듯 더디게 흘러간다.

벽시계의 시계추 소리 또한 독서 중이거나 어딘가에 몰입해있을 경우 전혀 소리의 진동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짜증스럽거나 잠 못 이루는 밤엔 시계추 소리는 신경을 자극해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즐거운 만남에는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다. 부담스런 만남에는 시간이 거북이처럼 더디다. 어머니가 타준 커피는 덤덤하지만 애인이 타준 커피는 향기롭고 신비롭다. 친구의 농담도 기분에 따라 웃을 수도 있지만 짜증이나 시비로 번질 수도 있다. 아침 기분이 설레면 하루가 빛으로 가득하다. 아침 기분이 우울하면 하루가 어둠으로 칙칙하다.

같은 음식도 마음의 변화에 따라 꿀맛일 수 있고 역겨운 맛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반가운 만남이 많아 하루가 즐거울 수도 있고 맨숭맨숭한 그렇고 그런 만남이 이어지면 하루가 피로해 지칠 수도 있을 것이다.

빛(낮)과 어둠(밤)이 둘이 아닌 하나이듯이 설렘과 우울증은 마음의 울림에서 비롯된다. 행복과 불행 또한 동전의 앞뒤처럼 한 몸의 느낌 변화로 좌우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 또한 진하듯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한 것이다. 소욕지족(少欲知足)처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한다. 비우고 나누는 생활 습관으로 즐거움을 길들이며 살 일이다.

하루는 짧지만 24시간으로 짜여 있다. 하루는 길지만 순간순간의 느낌으로 윤회(輪廻)한다. 하루 동안에도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짐승이 될 수도 있다. 이용자가 될 수도 있고 이용당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사냥꾼이 될 수도 있고 사냥감이 될 수도 있다.

빛이 될 수도 있고 어둠이 될 수도 있다. 보살이 될 수도 있고 투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천사와 악마는 깃털의 하나의 무게로 뒤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빛으로 충만한 하루는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어둠으로 가득한 하루도 누구에게도 머물지 않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행복과 불행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빛처럼 다가왔다가 어둠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하루를 짧게 표현하자면 물음표와 느낌표일 터이다. 간간이 쉼표와 마침표도 끼어들 수 있을 터이다.

하루를 여는 아침의 느낌, 사람을 만나는 처음의 느낌, 일을 시작하는 예감의 느낌이 쉼표로 물음표로 마침표로 오고가며 시작과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느낌과 선입견보다 대화와 이해, 배려가 있어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대화의 단절과 이해의 결핍은 틈을 만들고 벽을 만들어 스스로 로빈슨크루스가 되기 때문이다. 포대화상이나 산타할아버지는 전설 속에 숨어있는 게 아니다. 나누고 베풀며 이해하고 배려하는, 칭찬하고 용서하는 열린 마음에 살아 있는 것이다.

얻어먹는 짜장면 맛보다 내가 사주는 짜장면 맛이 감칠맛 나고 개운할 터이다. 칭찬하고 격려하며 대화하고 이해하며 배려하며 살 일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어느 모임, 어떤 장소에도 미운사람은 꼭 끼어 있기 마련이다. 인생팔고(人生八苦)에는 생(生)·노(老)·병(病)·사(死)와 함께 원증회고(怨憎會苦)도 끼어 있는데 미운사람을 만나는 괴로움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운자도 보내고 나면 마음이 짠하게 아려올 터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愛別離苦) 것만이 괴로운 게 아니다. 미운 친척도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에 마음 아린 서운함이 깃드는 것이다.

하루는 짧고도 길지만 후회로 남을 일을 줄여 가야한다. 자랑으로 남고 아름다움으로 남을 추억의 바벨탑을 쌓아야 한다. 신앙은 사닥다리 오르듯 해야 참 신앙이듯 마음의 문을 열고 살아야 삶이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하루의 보람과 행복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열려야 평화와 자유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낮과 밤이 반반이어야 하루인 것이다. 본래 빛과 어둠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하루에는 내 인생의 전부가 담겨있다. 마음 열고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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