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니

임연태 지음|인북스 펴냄|1만 9500원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풍광이 수려한 곳마다 아름답게 서 있는 정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음풍농월과 선비들의 풍류다. 문학과 예술의 발상지로서 안성마춤인 이유다. 특히 누각과 정자의 안팎에는 시(詩)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자연을 벗 삼아 무욕의 삶을 펼친 선비들의 대쪽 같은 기개와 시대 정신의 체취가 고스란히 서려 있다. 그래서 누정시(樓亭詩)라는 장르가 탄생했다. 이는 정자와 누각의 풍정을 소재로 한 시문이나, 누정의 아름다움 속에 세상 사는 지혜를 읊은 문인 선비들의 시다.

천년세월 관통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누정시
무위자연과 유유자적 철학
담긴 명상 치유 문학
누정 22곳 현판에 걸린
누정시 210여편 소개

이 책은 전국에 남아 있는 누정시의 숨결을 역사와 문학적 관점서 살펴, 한국 정신문화의 굳건한 기둥 역할을 한 선비 정신과 고전 문학의 향기를 전하고자 기획됐다. ‘누(樓) 하나의 망가짐과 세워짐으로 한 고을의 슬픔과 기쁨을 알 수 있고, 그것으로 한 시대 도(道)의 오르내림을 알 수 있다’고 한 하륜(河崙, 1347~1416)의 말처럼, 누정시의 감상과 이해를 통해 흥망성쇠를 조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한국의 대표적인 누각과 정자 22곳을 찾아, 누정을 소재로 한 시와 누정의 현판에 걸린 누정시 210여 편을 소개한다. 작품의 창작 배경과 문학적 의의, 시를 쓴 인물에 얽힌 영욕의 역사도 조명해 선비 문인들의 풍류와 기개, 예술적 향기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누정이 자리한 지리적 환경에 따라 제 1부는 바닷가에 소재한 누정들, 제 2부는 계류에 자리한 정자, 제 3부는 강변가 정자, 제 4부는 궁궐과 사찰에 소재한 누각, 제 5부는 평야와 산정에 소재한 정자들로 구성했다.

이 책은 선비들이 남긴 시문(詩文)뿐 아니라 각 누정마다 창건자와 시대적 배경, 지리적 환경, 주변의 풍광과 인물에 얽힌 일화들을 상세히 기술해 역사 문학 기행이라는 특성에 충실한 책을 꾸미고자 했다. 누정시를 남긴 시인 묵객은 신라 시대의 최치원을 비롯하여 고려의 이규보, 문익점, 이색, 정몽주 등과 조선 시대의 하륜, 이이, 정철, 이산해, 김시습, 김병연, 서거정 등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로 이름을 떨친 선비들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권력의 정점서 세상을 호령한 이들이 굴곡진 삶을 겪고 나서 누정을 짓고 강학에 전념해 재기를 다지거나 마음을 추스르며 귀거래사를 읊었음을 상기할 때, 누정시는 지혜를 모색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야에 은일해 자연과 교감하며 무위자연과 안분지족을 추구한 이들이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며 관조와 달관의 경지를 담은 누정시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가치가 있다.

누정시야말로 우리 문학계가 특별한 관심으로 학술적 연구를 통해 정리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고전문학 분야이다. 하지만 누정문학에 대한 문학적 관심과 학술적 연구는 빈약한 편이다.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조차 일천하기 그지없다. 학회나 대학은 물론이고 많은 지역의 문화원이 전문인력과 예산의 부족으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우려를 조금 씻어준다. 국문학도 출신인 저자의 학술적 탐구와 시인다운 시적 감성이 어우러져 튼실한 역사기행서를 읽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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