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동지’(冬至)를 맞아 불교계가 동지 팥죽나눔 축제를 열었다. 서울 인사동, 노량진, 시청, 탑골공원, 종각, 광화문 등 서울 6곳을 비롯해 전국 112개 장소에서 동시에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29개 종단이 참여해 17만여 그릇의 팥죽을 전달했다. 특히 인사동 행사장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해 각 종단 대표 스님들이 나서 시민들에게 동지의 의미를 담은 리플렛과 팥죽 2만 그릇을 전달했다.

24절기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는 예로부터 선조들이 작은 설로 여길 정도로 중요한 절기였다.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이었다. 동지에는 음기가 가장 강하고 귀신이 몰려든다는 속설에 고사를 지내고 팥죽을 나눠먹는 관습이 이어졌다. 이는 새해를 앞두고 묵은 기운을 떨치고 새 희망을 만들자는 의미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나눔 문화를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정신문화는 동지 외 정초, 입춘, 백중 등 불교와 관련된 절기에도 나타난다. 정초에는 지신밟기를 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 또 오곡밥을 먹으며 만중생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고 새로운 원을 세우기도 한다.

입춘은 아직 추위가 남아 있지만 따뜻함이 온다는 것을 일러주는 절기로 어떤 재앙이 오더라도 감당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알고, 정진의 마음을 새롭게 다진다.

산업화 과정에서 세시풍속이 사라지며 그 속에 담긴 정신도 잠시 잊혔지만 불교계에서는 맥을 이어왔다. 그러던 세시풍속이 이제 불교계를 시작으로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각 사찰 스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절기, 그리고 명절마다 사찰을 찾거나 행사 참여를 문의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분당의 한 사찰 주지 스님은 평소 600명 수준인 주말법회 참여자가 동지나 절기 때에는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털어놨다. 한 스님은 특히 대보름, 동지 등에 음식을 먹기 위해 불자가 아닌 이들, 특히 직장인들이 사찰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설과 추석과 같은 명절에 입증되고 있다. 조계사와 봉은사를 비롯한 서울지역 도심 사찰에서 진행되는 차례에 참가하는 인원은 매년 7% 이상씩 증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올해에는 대구 동화사 등 지역사찰에서도 명절 차례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제 불교계는 그동안 이어온 민족문화를 연구, 발전시키는 과제가 남았다. 기존의 획일적 의식에서 벗어나 세시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고 알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의 삶에 불교적 방식의 재충전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오늘날에 맞도록 재편, 전승하는 작업이 필수적인 것이다. 산업화, 도시화와 함께 삶의 기반이 달라진 현대에 적합한 세시 체계를 갖추어 나가는데 불교계가 기여해야 한다.

따라서 각 사찰의 종교적, 지역적, 문화적 특성을 살려 새로운 세시풍속 활용프로그램을 개발해나가는 방안을 비롯하여 지역특성을 살리는 가운데 주민의 참여를 이끄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희미한 불교관련 세시풍속이 지닌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제도 새롭게 부각된다. 점차 대형화·장기화되는 의식이 많아지면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도 커질 우려가 있다.

그 무엇보다 다양한 명절과 절기의 문화 속에는 자기중심의 마음을 지혜와 자비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내재됐음을 주지시키고 그것이 불교계가 이어온 세시풍속의 본질임을 일깨우는 작업이 강조돼야 한다.

불교계 최초로 각 종단이 참여한 동지 팥죽나눔 축제에는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다고 한다. 종단협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긴급한 예산 요청에도 그 중요성에 높은 호응을 보였다니 지속적인 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세시풍속을 개발하는 과정은 템플스테이, 사찰음식에 이어 불교문화와 한국전통을 알리는 또 다른 작업이 될 것이다.

이제 세시마다 진행되는 불교계의 활약을 눈여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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