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때문에 부탄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다녀온 평론가 이형권 교수님과 차를 마실 때였다. 다소 까매지고 마른 모습을 뵈니 말 못할 고생이 많으셨던 것 같았다. “잘 돌아오셔서 다행이다. 다음에는 좀 더 편한 곳을 다녀오시면 좋겠다고 하니 막상 교수님은 뜻밖에 대답을 꺼냈다. “될 수 있으면 거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행복지수 세계 1위 국가의 매력이 어땠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교수님은 사랑에라도 빠진 사람처럼 허공을 부드럽게 응시하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교수님은 승려나 학자, 노동자 누구를 만나더라도 모두 행복한 모습뿐이었는데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웃을 준비가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웃을 준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과연 우리를 보고 선뜻 그런 표현을 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교수님이 돌아온 대한민국은 웃을 준비보다 이유 없이 화낼 준비가 더 되어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상담한 어느 직장인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직속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녀의 상사는 상식 밖의 행동과 이상 성격으로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몇 년간 상사와의 갈등이 지속되자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에 빠졌고, 한 때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갈등은 억압되고 폐쇄된 한국 조직 문화에서 흔히 나타난다. 설사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부조리한 갈등은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자기 그룹(가족이나 조직)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 한해서지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이른바 내 식구 아니면 남이라는 구분이 강한 것이다. 이것은 편 가르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크게는 역사적 이데올로기부터 작게는 지역 갈등까지 한국사회의 편 가르기 병폐는 자못 심각한 수준에 와있는 것 같다. 그것은 사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만들어낸 오래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그림 박구원.

우리 민족은 수많은 상처와 피해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왔고 대를 이어왔다. 무슨 무슨 기적을 만든 한국인,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라는 최면 속에서 정신적 승화나 해소 기회를 빼앗긴 채 없이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그것은 선진국을 꿈꾸는 개발도상국의 집단 강박이었다. ‘국가를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국민은 감정과 자신을 숨겨야만 했고 표리부동에 익숙해졌다. 아프든 괴롭든 무조건 괜찮다고만 하면서 히스테릭한 방어기제를 쌓아온 것이다.

이제는 그 응어리를 좀 풀어낼 때가 온 것 같다. 미국정신의학회에 공식 등록된 특수 우울증세 화병(hwa-byung)’이라는 명칭만 들어봐도 그동안 쌓여가는 에 우리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묻지마 폭행이나 데이트 폭력, 술만 먹으면 너도 나도 에드워드 하이드로 돌변하는 그런 일들이 흔한 뉴스거리가 되어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그동안 감춰졌던 것들을 꺼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부조리했던 것을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단호히 잘라내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몇 년간 상담자로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귀한 기회를 받았다. 거기서 깨달은 바는 좋은 경험이야말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거대한 파도도 잔잔한 바람에서부터 시작한다. ()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을 마주할 수 있기 바란다.

그것이 곧 역사와 사회 또 각자가 쌓은 응어리를 씻어내며 부처님을 마주하는 시작일 것이다. 당신을 바라보는 부처님은 지금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

-신동찬 시인/불교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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