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광사 덕희봉사회

12월 11일 제주 삼광사에서 열린 ‘제13회 삼광사 덕희봉사회 김장하는 날’에서 봉사회 도반들이 김치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제주불교 100여 년 역사 속에 임덕희 대보살은 제석사·불탑사·보림사·덕흥사·용화정사·해봉유치원·삼광사 화주를 맡아 제주불교 불사의 중추역할을 했다. 임덕희 보살은 제주불교에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다가 지난 2004년 1월 22일 아미타부처님의 곁으로 떠났다. 향년 82세.

소외계층 보듬기 13년
2004년 임덕희 보살 타계 계기
덕희봉사회 창립 후 김장봉사
된장 등 후원물품 다변화

찾아가는 ‘자비나눔’ 화제
2009년부터 도시락 배달 봉사
25가구 매주 토요일 실시해
올레길 정화운동 등 전개

제주불교 대모의 빈자리를 느낀 삼광사(주지 현명) 신도들이 그해 4월 22일 ‘덕희봉사회(회장 김문자)’를 창립했다. 13여 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덕희봉사회의 명성은 불교계뿐 아니라 제주 전역에 걸쳐 자자하다.

평생 제주불교에 헌신했던 임덕희 보살의 원력은 현재 덕희봉사회원들에 의해 계승 발전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되고 있다.

찬바람 불어올 무렵이면 덕희봉사회원들과 소외된 이웃들의 연결고리인 ‘덕희봉사회의 김장하는 날’은 연꽃이 만개하듯 축제날로 승화된다. 지난 12월 11일 삼광사 도량에서 열린 ‘제13회 삼광사 덕희봉사회 김장하는 날’ 덕희봉사회원 도반들의 끈끈한 인연을 들어봤다.

불교축제 그리고 제주축제로
‘삼광사 덕희봉사회 김장하는 날’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제주시자원봉사센터 및 백혈병소아암협회 그리고 도내 장애인·노인복지시설 식구들, 각종 신행단체장 등이 찾아온 만큼 일일이 인사 나누기 어려울 정도. 김문자 삼광사 덕희봉사회장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랐다. 김장뿐만 아니라 된장과 햅쌀 등을 나누며 소외된 이웃들의 희망을 더해가는 삼광사 김장행사가 단위 사찰 규모를 넘어 지역 축제로, 불교계의 축제로 확장됐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잠시 짬을 낸 김문자 회장은 “13년째를 맞는 만큼 덕희봉사회원들도, 찾아오는 손님들도 모두가 축제처럼 받아들여 얼굴마다 미소를 머금는다”며 “4일 전부터 천막을 치고 배추에 소금을 절이고 소금물을 빼는 등 일주일동안 쉼 없는 일정이다. 하지만 그 어느 얼굴에도 구름 낀 회원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보살행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도반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이날 오전 10시 한편에 몽골천막으로 줄을 지은 배추 버무리는 공간은 왁자지껄했다. 13년의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봉사회원들의 손놀림이 보통이 아니다. 오랜 역사만큼 봉사단의 분업도 잘 갖췄다. 젊은 보살들은 김장을 버무리고, 이를 나르고 옮기는 것은 거사들의 몫이다. 고생하는 도반들을 위해 공양간에선 노보살님들이 구수한 손맛을 담아 빙떡(메밀전에 무채를 말아 만든 떡)을 만들어냈다.

올해 버무리는 김장은 총 1500포기. 잠시 허리를 펴고 쉬는 시간, 공양간에서 가져온 빙떡을 갓 버무린 김치에 얹어먹는 그 맛이 과연 일품이었다. 그 온정만큼은 무엇보다 넉넉해 보였다. 하지만 어딜 가든 군기반장이 있는 법. 시어머니처럼 사소한 것조차 눈 밖에 나는 것을 못 보는 송금순 상임부회장이 배추 속까지 잘 스며들도록 양념을 넉넉히 치라며 꼼꼼하게 참견한다. 잔소리에도 회원들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송 부회장과 단원들 사이엔 염화미소가 번진다. 봉사를 하면서도 즐길 줄 아는 이들만의 여유가 묻어났다.

송금순 상임부회장은 “10년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만 김장이 바로 덕희봉사회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회원들에게도 당부를 한다”면서 “무엇보다 김장하는 날은 회원들의 축제이기 때문에 잔소리를 해도 다들 잘 인지하고 있다. 그래도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챙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설명했다.

이를 지켜보는 김문자 회장은 흐뭇하기만 하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밀려들기 때문일까. 이제는 알아서 척척해내는 회원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손이고 나눔의 손이라 했잖아요. 요즘 다들 바쁜데 김장을 위해 4일 동안 손길을 보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죠. 각자 직장생활을 하는 회원들이지만 손길을 보태지 못한 회원들은 후원금을 대신 전할 정도로 서로 존중과 예의가 단단히 뿌리내려 있습니다.”

이 같은 노력에 감동한 사람들은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덕희봉사회를 돕는 숨은 후원자들이 돼주었다. 그 사랑은 덕희봉사회원들의 손길을 타고 제주시자원봉사센터, 아라동주민센터, 다문화가정, 도내 노인·장애인 복지시설, 소아암협회 등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오전 11시가 되자 도내 복지시설 관계자들이 김장과 된장, 쌀 등의 선물을 받기 위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이들을 먼저 공양간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덕희봉사회 표 김장 떡국’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다. 시설 어르신과 장애인들에게 선물을 잘 전달해 달라는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씨까지 담아낸 떡국공양이다.

덕희봉사회는 매주 도시락을 만들어 독거어르신 등을 돕는다.
봉사의 새로운 변혁 모색
덕희봉사회의 김장은 초창기 350포기로 시작해 지난 2014년 10회를 맞아 10배에 달하는 3천여 포기를 담갔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이 발자취를 따라 많은 불교계 신행단체를 비롯해 도내 자원봉사자들이 김장행사를 열어 덕희봉사회는 다른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리고 2012년 정기총회에서 이를 화두 삼아 그동안 시나브로 준비했던 된장을 늘려 소외된 이웃들에게 다양한 물품을 나눠주기로 결의했다.

이에 덕희봉사회는 매년 순차적으로 김장규모를 줄이면서 올해는 1500포기를 담갔다. 대신 된장을 150통으로 늘렸다. 혜택을 받던 도내 각 복지시설 등에 나눠줄 김장에는 조금이나마 부족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했다.

그동안 덕희봉사회원들은 삼광사 부지 3천여 평에 김장배추와 콩 농사를 직접 지었다. 단원들의 부담도 덜 겸 2014년부터 배추농사는 접고, 콩 농사를 확대해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덕희봉사회원들이 6월에 직접 파종한 콩은 그해 11월에 수확, 대형 가마솥에서 삶고 메주를 만들었다. 이어 100일 동안 자연 건조시킨 메주에 핀 곰팡이를 씻고, 간장에 다시 100일 동안 담갔다가 간장과 분리한 다음 된장에 청국장 가루를 뿌려 다시 찌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숨 쉬는 옹기에다가 3개월을 숙성시킨다. 김장하는 날 소외된 이웃에게 나누는 된장은 1년 이상 숙성시킨 것들이다.

현재 삼광사 뒤뜰에는 250개의 옹기가 있다. 이 옹기는 10년 전 현명 스님이 구입한 것으로 스님의 선견을 엿볼 수 있다.

김자선 회원은 “콩을 직접 꺾어 된장을 담그는 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이 인다”며 “극진한 정성을 담아 만들었기에 어떤 곳에 내놓아도 자부심이 있고, 나눔이 커져 희망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편 콩이 밭의 흙심을 딛고 잘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삼광사 거사들의 수행모임인 문수회의 역할이 컸다.

이날 힘든 일을 도맡아 했던 김영해 거사는 “다들 직장을 다니지만 일요일이면 시간을 내서 배추에 칼슘이 든 영양제를 살포하고, 콩 수확에는 직접 탈곡하는 등 봉사가 곧 수행이라는 마음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도반들이 뿌린 씨앗에 흙심과 햇살을 머금어 속이 꽉 찬 콩으로 만든 된장과 김장은 소외된 이웃의 희망을 심는 씨앗이다.

2012년 2월, 제주 올레길 청소봉사 모습.
1년 365일 봉사하는 날
덕희봉사회원들은 1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봉사회는 지난 2009년 3월부터 제주시로부터 독거어르신을 추천받아 ‘자비의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해왔다. 초창기 9가구에서 현재는 25가구로 늘어났다. 매주 토요일 직접 사찰 조리실에서 반찬을 만들고, 사찰에 재가 있는 날이면 과일과 떡 등 어르신들에게 전해지는 공양은 더욱 풍성해진다.

특히 11월이면 도시락 배달하는 25가구 어르신들을 한자리에 모셔 ‘조촐한 나들이 행사’를 마련한다. 매년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이끄는 봉사회원들은 “삼춘, 맹심핸 내려갑서!(어르신, 조심해서 내려가세요)”라는 말씨 덕분에 정겨움을 더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들에게 이 같은 말 한마디가 길을 열어주는 지팡이처럼 고맙기만 하다.

송금순 상임부회장은 “어르신들에게는 반찬을 배달하지만 건강하게 지내시는지,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 확인하고 말벗도 되어드리는 등 친부모같이 어르신을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어르신들도 “정말 고마운 게(고맙다). 통 바깥에 나올 일이 어신디(없었는데). 와서 부처님도 보고 사람도 보고 구경도 하고 정말 고마워게(고맙다)”라며 고마움을 담아 인사한다.

이밖에도 덕희봉사회는 삼광사 주변의 경로당을 찾아가 전복죽 공양을, 교계 시설인 제주양로원과 제주태고원에 점심공양을, 어르신 생필품 지원, 장애인체육대회 개최 등 제주시자원봉사센터에서 위탁한 봉사활동을 펼친다. 그러면서도 2012년 제주서 열린 환경올림픽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 앞서 올레길 정화활동을 추진해 ‘청정제주’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제주를 위한 일에도 앞장섰다.

이런 덕희봉사회원들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희망더하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늘 한계로 지적받는 노력봉사를 넘어 이웃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봉사를 위해 한 걸음 더 정진하는 것은 서로 보듬어주는 회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말 ‘김장하는 날’이 이웃온정을 나누는 축제로 승화되었듯 자비나눔을 통한 환희심은 도반의 보살행을 더욱 살찌우게 하는 원력이었다.

김문자 회장은 “배추 한 포기, 메주 한 덩이 자연이 빚어내고 덕희봉사회원들의 정성이 깃들어 만들어 낸 것들”이라며 “쌀 한 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바로 우리 덕희봉사회원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김 회장의 말을 귀담아 듣던 현명 스님이 입을 열었다.

“불교는 실천의 종교로 봉사가 바로 수행입니다.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안고 가는 것이 바로 부처님 도량이 해야 할 일이고요. 이 사회에서 불교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면 아마도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2016년 12월 11일 김장나눔행사 후 장학금을 전달하는 덕희봉사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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