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오르지 않고 있다. ‘좀처럼이라는 말도 어색하다. 2016년 세밑, 대한민국의 인심이 어쩌다 이리 됐을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도 아닌데 어쩌다 이리 꽁꽁 얼어붙었을까?

누구는 정치를 탓한다. 맞다. 결정적 주범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다. 현 대통령부터 최순실, 문고리 3인방들의 농단에 대한민국도 무너져 내리고, 대한민국 정치도 무너져 내리고, 대한민국 인심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경제는 또 어떤가. 가진 자는 더 갖기 위해 더욱 악다구니를 쓰고, 못 가진 자는 어떻게라도 생존하기 위해 깃발을 더욱 높이 올리고, 그런 시간에도 연탄 한 장의 무게마저 무거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백사마을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의 허리는 오늘도 노곤하다.

지난달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 이후 23일이 지난 14일 오전 현재,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겨우 12.1. 한겨울 북풍설한은 쌩쌩 광장을 휩쓸고 지나가는데 정치계는 물론 경제계 누구 하나 제대로 풍찬노숙을 덮어주는 이 없다. 지난해 모금 시작 일주일만인 1129414억 원으로 12.1도를 가리켰던 것에 비하면 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불과 1년 만에 백의의 대한민국 인심이 왜 그토록 황량해진 것일까. 꽁꽁 얼어붙은 것일까. 매스컴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명백히 진단하고 있다. ‘경기불황과 함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여파로 기부금 모금이 현격하게 떨어졌다.

모금회 관계자들도 입을 모은다. “정치 사회적인 현안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눔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 측면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뿐일까. 우리 마음이 지레 먼저 얼어버린 것은 아닐까. 내 한파만 한파고 남의 한파는 한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광장의 촛불에만 너무 매몰된 나머지 나눔의 온기를 잠시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도 얼굴 없는 기부천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황량한 우리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 1,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익명의 기부자가 현금 500만원이 든 흰 편지봉투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에 놓고 갔다고 밝혔다. 사랑의 온도탑 측면에 세워진 사랑의 우체통에서 발견한 봉투 겉봉에는 아무 글씨도 적혀 있지 않았고, 봉투 안에도 5만 원권 지폐 100장이 담겼을 뿐 편지나 쪽지는 없었다고 한다.

맞다. 이게 진짜 나눔이다. 사랑이다. 자비다. 연민이다. 단 한 명이라도 이런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있는 한 우리 마음의 사랑의 온도탑은 항상 100도를 가리킬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증일아함경>을 통해 말씀하셨다. “나만을 위해 보시하지 말고 중생에게 회향하는 마음으로 보시하라. 재물을 가지고 보시하되 이와 같은 마음으로 보시하면 큰 공덕을 얻게 된다.

또한 <잡아함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을 버리고 조건 없는 깨끗한 보시를 행하면 어느 곳에 처하더라도 항상 기쁨이 함께 하리라.

매주 토요일, 아직도 광화문 광장은 촛불의 뜨거움으로 채워지고 있다. 촛불의 열기 못지않게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온도탑도 뜨거워지길 바라본다. 그리하여 단돈 1천 원이라도 들고 내가 먼저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되어 광화문 광장에 서길 바라본다. 내 안에는 이미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살다. 그분이 바로 부처이고, 부처의 길이고, 깨달음이다.

참고로 사랑의 온도탑은 사랑의 열매가 매년 연말연시를 맞아 기부금 목표액을 정하고,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1도씩 올라가도록 서울 광화문 등 전국에 설치해놓은 것이다. 올 목표액은 3588억 원이다.

함께 쌓을 때 탑은 더 빛난다. 내 촛불의 뜨거움이 그 탑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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