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아이들이 원하는 것

자신의 젊은 시절 실수
자녀는 범하지 않길 바라며
솔직한 대화 하고 싶지만
잔소리로 그치는 경우 많아
자녀 말, 온 마음으로 들을 것 

아빠한테 원하는 거 3가지만 얘기해봐.”

대학교에 갓 입학한 딸에게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다.

, 전화하지 말 것, 문자하지 말 것, 언제 들어 오냐고 물어보지 말 것.”

.”

한마음아버지마당에서는 첫 주를 마치면 아버지들에게 아내와 자녀가 원하는 것 세 가지를 알아오라는 과제를 준다. 단 조건이 있다. 아내와 자녀가 자신에게 원할 것이라 생각되는 세 가지를 본인이 먼저 적고, 그 다음에 물어보도록 했다.

전 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의 아버지세대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가치이다. 자녀들도 당연히 아버지는 가족 부양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능력과 건강만 갖추고 있다면 그 외에는 아버지에게 특별히 바랄 것이 없을 거란 생각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버지들이 조사해온 자녀들의 생각은 그런 예상과 많이 벗어나 있었다. 우선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잔소리 듣는 걸 제일 싫어했다. 잔소리라니. ‘잔소리는 엄마가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아버지들은 예전 아버지들에 비해 자녀에 대한 잔소리가 만만치 않게 많다. 아니, 엄밀히 말해 잔소리 할 시간이 없었다. 밖에서 일하느라 집에 안 들어오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집에 들어와도 엄마가 아버지에게 자식 일을 시시콜콜 의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아버지들은 상대적으로 나아진 경제생활 덕분에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자녀의 가정과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그 관심이 자녀에게 잔소리로 표출되는 듯하다. 더군다나 예전처럼 자녀가 많지도 않아 대부분 많아야 둘, 셋의 자녀를 둔 요즘의 가족 형태에서 자녀 하나하나가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과 딸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직도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딸은 보호받아야 하고, 잘 키워 좋은 젊은이 만나 시집가면 그걸로 부모의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한다(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 생각조차 많이 변할 것이라 예상된다). 반면 아들은 지금의 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지켜온 가장으로서의 가치와 역할을 물려받아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띤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요즘은 외아들이 점점 많아져 장남 차남 구별도 힘들어지는 세태라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감이 오히려 예전보다 커진 경향이 있다.

, 이렇다보니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 무엇이 도움이 되었고, 아쉽고, 실수했던 것은 무엇인지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인생 경험을 아들에게 설파하며 너는 이 아버지가 잘한 일은 본받아야 하고, 아쉬웠고 잘못한 일은 답습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솟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자녀 입장에서는 어떨까? 요즘 아이들은 아버지들이 자라던 시절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환경에 놓여있다. 사회에서의 성공과 높은 급여보다는 나의 인생 목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내가 행복하려면 어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이 아버지 생각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 요즘 같은 세상에 경제생활은 당연히 아버지가 해결해야 하는 기본 의무사항이고,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내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지, 내가 앞으로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구하는 것이지, 아버지의 일방적인 자기주장과 인생 경험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 경험이 많은 아버지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훈계가 아닌 대화를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이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는 자녀와 솔직한 대화를 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른다. 아버지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듯이 대화하는 법을 배운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에게 대화는 직장에서의 회의, 어릴 적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어쩌다 들었던 훈계가 대부분이고, 여기에는 거의 지시와 복종만 존재했다. 이런 아버지들에게 자녀와의 동등한 대화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오늘 너와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싶으니, 우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보자하고 막상은 그게 아니고, 너는 도대체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그래?”라는 마무리와 훈계로 대화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모처럼 마련한 자녀와의 대화는 서슬 퍼런 아버지와 한숨 쉬는 자녀의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이것이 보통 가정 아버지와 자녀의 대화 패턴으로 굳어졌다.

이를 위해 한마음아버지마당에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한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을 연습한다. 이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끝까지 듣는 것이다. 우선 21조 짝을 지어 일정 주제를 두고 5분간 이야기를 한다. 한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기만 한다. 그 다음 들은 사람은 다른 자리로 옮겨 자기가 방금 들은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결과는? 대부분 방금 들은 이야기를 잊어버린다. 왜 그럴까? 안 듣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대화할 때 남이 이야기하면 속으로 딴 생각을 하는 일이 많다. 자녀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듣고 자녀의 마음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한다. 그래서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과제 수행 후 아버지들은 대개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기만 했더니 그동안 몰랐던 자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는 소감이 많았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데 힘쓰겠다는 다짐에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물었다.

아빠한테 원하는 거 3가지만 얘기해봐.”

전화하지 말 것, 문자하지 말 것, 언제 들어 오냐고 물어보지 말 것.”

넌 어떻게 5년 전이랑 바뀐 게 없냐?”

아빠가 안 변하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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