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연재를 시작하며

좋은 아버지 되는 법배운 적 없어
가족과 사회 요구 앞에서 갈팡질팡
점점 더 설 곳 없는 존재 되어가
아버지 행복법연구 필요성 느껴

얼마 전 종영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넉넉지 않은 가정서 언니와 생일이 같아 한 개의 케이크에 촛불만 새로 켜서 생일축가를 부르는 가족. 그리고 그게 싫어 화를 내고 울면서 뛰쳐나간 둘째 딸을 보며, 아빠는 새로 장만한 생일케이크를 손에 들고 딸을 찾아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안해, 아빠가 아버지 역할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우리 딸이 이 아빠를 이해해줘.”

단순히 드라마로 흘려듣기에 이 대사는 이 세상 아버지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필자를 포함한 한국 아버지들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에 대해 특별히 시간 내서 배운 적이 없다. 여자는 태교, 육아법 등을 배울 기회도 많고 또 정보를 얻을 곳도 많지만,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기억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아버지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가르쳐준 이도 거의 없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엔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보릿고개를 넘기며,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것이 아버지의 가장 큰 도리와 의무였고, 가족에게 밥을 굶기지 않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버지라는 막연하면서도 굳센 믿음을 갖고 살았다. 또 우리 어머니들이나 자식들도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거나, 그 이상의 요구를 못하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경제가 성장하며, 물질이 풍요해지고 행복의 가치관이 변해가면서 아버지들은 거센 도전에 직면한다. 경제권을 쥐고 가정서 제왕적 지위를 누린 아버지들은 가정의 민주화에 직면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것은 기본 역할이고, 그 외에도 남편으로서 자녀 양육자로서도 훌륭한 자질과 품성을 갖춰 달라는 가족과 사회의 거센 요구에 맞닥뜨린다.

이때부터 아버지들은 적잖이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밖에 나가 어떻게 하면 직업을 갖고 사회적으로 성공해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까만을 고민하던 아버지들은 한 번도 요구받거나 배운 적 없는 이런 가족과 사회의 요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요구에 대한 항변을 해보다가 그마저도 안 될 때는 회피도 불사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언론에서는 가정의 문제를 다루면서 심심치 않게 아버지가 가정 파탄의 주범이고, 아버지만 잘 하면 이 세상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사회에 심었다. 결국 아버지는 점점 더 설 곳이 없는 존재가 돼 가고 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회 초년 시절엔 일에 젊음을 불사르며 사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직장서 승진하고, 급여가 올라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아버지와 남편의 의무며 인생최고의 가치관이라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따돌림 받기 일쑤였고, 어느덧 필자 스스로 가족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이 시대 문제적 아버지로 변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이와 관련해 아버지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불교의 마음법 안에서 조망해 보고자 한 한마음선원의 연구교육기관인 한마음과학원에서는 아버지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라는 대 전제하에 불교의 마음 법을 토대로 아버지들을 통한 가정의 행복을 이룰 수 있도록, 수년에 걸쳐 아버지들과 인성교육전문가 집단으로 연구팀을 구성,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2010년 제1한마음아버지마당이라는 아버지들만을 위한 마음공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한마음아버지마당은 지금까지 5회에 걸쳐 40대에서 70대 아버지 약 150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이 교육을 통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가족은 아버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가족이 행복하려면 아버지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상당한 사례와 데이터를 축적해 오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건 남자들만 아는 남자들의 속성이었다. 남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남자들은 처음 보는 남자들과는 거의 대화를 안 한다는 사실이다. 우스갯소리로 여자들은 처음본지 10분만 지나면 남편 욕하고, 아들 자랑한다고 하지만 남자들은 여러 실험에서도 증명되었듯이 1시간이 지나도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동물이다. 특히 자신의 부끄러운 가정사에 대해서는 바윗돌 같이 침묵을 지키는 속성이 있다. 오죽하면 죽마고우가 이혼한지 10년이 지나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을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첫 시간 팀당 5~6명 정도의 그룹을 이뤄 첫인사를 나누는 순간부터 순식간에 소란스러운 수다의 장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이를 보고 놀란 것은 진행팀뿐 아니라 참가한 아버지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그동안 아버지들이 얼마나 억눌려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첫 회, 어느 팀에서는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저 사실 재혼가정의 아버지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이가 있었고, 이 아버지는 교육활동 발표를 하면서 제가 모르는 사람 앞에서 재혼한 사실을 이야기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고백을 해 듣는 이들의 놀라움과 공감을 산 일도 있었다. 이렇게 한마음아버지 마당은 아버지들의 수다와 함께 시작을 하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수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아버지들의 뜻밖의 모습은 평생을 마음속에 누르고 담아왔던 이야기들을 어디선가 털어 놓고 하소연 하고 싶었던 인간으로서의 욕망이었고, 이 시대 아버지들은 자신의 이야기조차 맘대로 할 수 없는 마음의 감옥 속에서 살아온 것이 아니겠느냐는, 탄식을 금할 길 없는 아버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때부터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살아온 남자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훌훌 벗어버리고, 실컷 이야기하고, 마음껏 소리 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필자는 다음 회부터 이 한마음아버지 마당을 진행하며 많은 아버지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자녀와의 관계, 남자로서의 아버지, 아들로서의 아버지, 가족 대화법, 아버지 이전의 나를 찾아서 등의 관점별로 써나갈 예정이다.

윤종헌 팀장은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 동대학원 경영정보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한마음과학원 한마음아버지마당교육팀장 및 선수행실천연구회 정회원이다. 이밖에 비영리민간단체 사람과 사회적경제이사, 불교여성개발원 웰다잉운동본부 회원 등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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