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조 前금강대 총장

정병조 前금강대 총장은…1947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 교동초, 서울사대부중, 서울사대부고를 나왔다. 고려대 공대 65학번 입학 후 동국대 인도철학과 67학번으로 입학했다. 영남대 철학과에서 문학석사를 동국대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31년간 동국대 윤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3년간 인도 네루대에서 객원교수로 있었다. 동국대에서 교무처장,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사)한국불교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현대인의 불교〉 〈History of Korean Buddhist Thought(영문판)〉 〈동아시아불교교류연구(공저)〉, 〈Master Wonhyo(원효성사) 영문판〉 등 다수가 있다.
 

한국불교 대중화·현대화 꿈 키워
이기영 박사에 학문 방향 영향 받아
대학시절 〈우리말 불교성전〉편찬 동참
대학생 불교연합회 창립… 본격 연구

21세기 불교학 응용불교로 전환
미래불교는 과학 끌어들이는 노력 필요
불교학 트렌드 환경 살펴봐야할 시점
시대흐름 읽고 변화에 빨리 대비 해야

[현대불교=노덕현 기자] 매일 5시면 FM 101.9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있다. 바로 정병조의 ‘무명을 밝히고’ 코너다. 이 코너를 진행하는 이는 정병조 前금강대 총장. 백발의 신사가 된 그는 라디오를 통해 불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매일 매일 불자들을 상담하고, 불교 현안에 대한 현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한국불교가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온지 오래, 정 前 총장을 만난 것은 이런 그의 소통과 식견을 얻기 위함이었다.

정병조 前총장은 그 누구보다 한국불교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던 이다. 그가 처음부터 불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정 前 총장은 당초 1965년 고려대 공대에 진학한 공학생이었다. 2학년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서울 동숭동에서 철학 특강을 듣고 그는 ‘한국철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한국철학을 세계화 시킨다’는 당시 강사 故박종홍 선생의 한마디는 그의 가슴에 일종의 사명감을 새겼고 이후 불자로서의 길을 걷게 했다.

한국철학에 대한 책을 한 권씩 읽던 그는 곧 벽에 부딪쳤다. 바로 ‘불교’라는 벽이었다. 목사와 장로, 권사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그는 결심한다. ‘불교란 과연 무엇일까?’ 학문적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그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동국대로 이끌었다. 다니던 고려대 공대를 중퇴하고 속성으로 공부를 해 인도철학과에 합격했다. 인도철학과 2기, 67학번이었다.

집안의 반대에도 정 前 총장은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다. 주말이면 학과 동기 스님의 절에 가 놀고, 방학이면 살았다. 습자지에 물이 배듯, 그는 불자가 됐다. 기독교적 성장 과정과 불교적 사상 배경은 그가 종교적 편견을 갖지 않고 균형있는 시각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됐다.

동국대에는 정 前 총장과 비슷한 배경을 지닌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의 은사인 故이기영 교수였다. 이기영 교수는 가톨릭으로 개종해 노기남 대주교의 주선으로 벨기에 루뱅가톨릭대와 프랑스 파리대에서 공부했다.

정 前 총장의 말에 따르면 이기영 교수는 그에게 학자적인 양심과 연구태도를 심어줬다. 이와 함께 원효사상을 발굴한 그는 학문연구의 방향을 설정해주었다.

법정 스님과의 인연도 당시 젊은 학생이었던 정 前 총장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법정 스님을 보며 정 前 총장은 한국불교의 대중화와 현대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60년대 불교경전은 한자로 돼 있었고, 불교 경전 번역은 불교 대중화와 현대화의 큰 과제였다. 법정 스님은 서경수 前 동국대 교수와 〈우리말 불교성전〉 편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정 前 총장은 이 작업에 동참하게 됐다. 법정 스님의 격려는 정 前 총장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학내에서 불교를 연구하는 학생들과 ‘대학생불교연합회’를 꾸렸다.

이런 학업에서의 과정을 이어 1990년대 불교 세계화와 최근의 불교 현대화까지 정 前 총장이 꿈꾸는 불교의 미래는 한 방향이다. 정 前 총장과의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불교의 미래를 밝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게 했다.

Q: 정병조의 ‘무명을 밝히고’에서 매일 불교계 현안을 다루시고, 현문우답으로 불자들의 신행상담도 하고 계십니다. 라디오를 통해 직접 불자들과 소통하는 소감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불교계에서 스승이 없다는 말도 들립니다. 대중들과 소통이 중요할 때인데요. 불교계가 어떤 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직접 대중들과 매일 만나다보니 불교 뿐만이 아니라 불자들의 의식이 변하는 것을 체감합니다. 1980~90년대에는 불교교리에 대한 지적인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불교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 문제에 대해 ‘왜 우리 불교가 침묵하고 있는가’를 고민합니다. 틱낫한 스님이 말한 참여불교로 불교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중들이 기도만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불교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는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 인류를 위해, 불교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리더쉽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교학이나 교육에서 활동해 온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에 책임을 느낍니다.

Q: 불교가 변화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불자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불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가 다변화된 것처럼 불교의 참여범위도 한없이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불자들에 해당되지만 미래의 불교발전을 위해서는 ‘생활불교’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불교로 변화해야 합니다. 집을 옮기는 것, 결혼하는 것 등이 불교적으로 어떻게 해석이 가능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 가운데 불교생활화가 이뤄지고, 자연스럽게 불교신행이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현대사회가 첨예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서양에 비해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가장 먼저 사회복지 개념의 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를 봉사의 날로 정합니다. 무연고 봉사자로서 센터에 가서 봉사장소 등을 배당받게 됩니다. 지붕을 고치고, 길에서 꽁초를 줍고 이런 것이 생활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돌아봅시다. ‘1년에 한 번 만이라도 노숙자들에게 팥죽을 떠서 나눠준 일이 있는가’, ‘어려운 분들과 함께 어울린 적이 있는가’ 등을 돌아보면 반성할 일이 많습니다.

세 번째는 군포교에 대한 관심입니다. 군포교 상황은 예전과 사뭇 다릅니다. 군법당은 많은데 법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법당 서너군데를 법사 한 두 명이 뛰는 상황입니다. 종단 차원에서 문호를 열어 재가 법사들이 그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처럼 출가자의 수가 급감했을 때는 방법이 없습니다. 재가 불자들이 사찰을 맡는 수 밖에 없습니다. 법당에 모인 불자 장병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 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불교는 향후 10년, 20년 내에 위기가 옵니다. 출가자는 감소하고 사찰을 비워 놓을 수도 없습니다. 불교 저변의 여러 가지 변화 상황을 미리 챙겨야 합니다.

Q: 정 前 총장님께서는 불교의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아직 불자 개개인이 변화해야 할 지점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도 비법(非法)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점ㆍ복’입니다. 불자분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비법에는 분명한 정의가 있습니다. 기도의 목표가 이기적인 것, 그리고 물질적인 것입니다. 사홍서원에서 나오는 모든 중생을 위한 것 등이 필요합니다.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이죠. 하나하나 불교계 내의 비법적 요소를 걷어내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Q: 한국불교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인문학의 전반적인 쇠퇴로 인해 불교학의 위기도 곧 다가올 것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불교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오셨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문학의 위기는 불교뿐만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문제입니다. 그래서 불교학 진흥을 위해서는 불교학의 트렌드가 변화한다는 인식을 일반 불교학자들과 불자들이 해야 합니다. 트렌드는 과거에는 교학 중심이었습니다. 화엄, 법화, 선종 등 냉정하게 말하면 훈고학적 문헌학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21세기 들어서며 불교학의 경향이 응용불교 쪽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과거에는 불교적인 인식을 갖고 사회를 본다든지, 불교사회학, 불교경제학을 발전시킨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좀 더 진일보 하여 명상이 인간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연구합니다. MRI공명장치를 통해 행복지수를 계산합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 에모리 3개 대학이 선두주자인데, 이들 대학의 실험에서 티베트 스님들을 통해 기계가 고장났다고 평가할 정도로 높은 지수를 얻은 바 있습니다. 이들은 돈은 철저히 없고, 나라도 없습니다. 게다가 독신잖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행복이라는 것의 반대되는 상황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미래의 불교는 이런 응용불교를 통해 과학을 불교로 끌어들이는 노력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의 쇠퇴가 반드시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옛날에는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불교교학을 공부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과학하는 사람들, 의학하는 사람들이 ‘불교 안에 무엇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교학의 트렌드 변화를 살펴보고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이 시대 불교학자들에게 필요합니다.

Q: 금강대 총장으로 계실 때는 소수정예 특성화로 작지만 강한 대학을 육성하는데 주력하셨습니다. 최근 많은 대학들이 학생 감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종립학교 발전에 불교계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종립대학은 3개 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불교계 3개 대학은 부처님의 도량입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대학 자체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교계의 인식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의 4년제 대학이 육사 등을 포함하여 242곳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불교 종립은 3곳이고, 기독교 종립은 100곳이 넘습니다. 이런 현실이 된 것에 불자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종립 불교대학의 발전이 곧 불교발전입니다. ‘불교의 모든 분야에서 동국대학이 없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십시오. 끔찍하지요. 정말 만해 한용운 선생님부터 미당 서정주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교대학이 가진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는데, 우리가 관심 밖에 두고 있었습니다. 교계가 적극적으로 종립대학 발전을 위해 나서는 것이 불교 발전의 씨앗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금강대 총장 시절 불교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대학과 교류를 진행했다.
Q: 불연 이기영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불교학에 매진하게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故이기영 선생님의 입적 20주년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기영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이기영 선생님은 현대불교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원효연구로 이름을 날리셨지만 불교학 발전에 한문문헌 위주보다 원어 중심의 원전연구 방향을 세우신 분입니다. 이기영 선생님은 특히 산스크리트어를 중심으로 하는 원류적인 불교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를 했습니다. 여기에 불교가 발전하려면 비교사상적인 측면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너무 불교, 불교만 하면 발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철학보다는 불교사상을 다른 역사학, 유학, 가톨릭 등과 비교해 드러내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현대불교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 가운데 하나라고 저는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는 학부 때부터 시작해서 석·박사를 받고 교수가 돼서도 그분 제자로 살았기 때문에 평생을 함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분이 언젠가 술회를 한적이 있습니다. ‘자네는 참 전공선택을 잘했다’고 하시는 겁니다. 당신이 프랑스 유학 당시 얘기였습니다. 지금 우리처럼 집에 돈이 있고, 학문을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절박했을 때입니다. 이기영 선생님의 어머님은 대구 피난시절에 길에서 담배와 껌을 파는 입장이었고, 당신 아내는 아이 둘을 둘러업고 서문시장에서 야채를 다듬어 파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유학에 가니 심정은 오죽 했겠습니까.

꼭 학위를 해야겠다는 절박함이 있는데 비교적 자신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수강을 했는데, 몇 과목을 낙제를 했다고 합니다. 참 충격이지요.

낙제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고대 히랍의 문학 등 수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호마의 시 등을 라틴어로 줄줄 외웠습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은사가 고민하는 이 박사를 불러 ‘자네는 동양 사람이 서양사를 왜 하느냐’고 했습니다. ‘불교는 서양 사람들이 못따라간다. 장점을 살려야 하지 않나’라고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안 겪고 불교를 바로 배우니 얼마나 행운아냐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기영 선생님은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분은 불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일본어, 영어, 라틴어까지 할 줄 아셨습니다. 어학 실력이 일단 압도가 됐습니다. 이기영 선생님은 외국어 공부를 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외국어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우리 한국불교의 과제인 세계화의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평소 많은 수행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하시는 수행을 소개해주시고,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십시오.

수행이라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새벽 예불을 모시는 것을 해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염불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염불이 정신집중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마음챙김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염불을 합니다. 매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평정심과 정신집중인데 염불이 요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염불을 일상화 하는 것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욱 소중한 수행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나와 인연을 맺는 모든 생명에게 어떤 경우에서도 상처를 주면 안되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예전에 강의를 하다가 학생들에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이나 이런 것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대중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를 고민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조심조심히 살고 있습니다. 늙은이의 지혜라고 할까요?(웃음)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작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불자분들도 거창한 수행보다 작은 마음가짐 하나 하나 항상 염두에 두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금강대 총장 시절 학생들과 소통하는 모습.
현재 원로학자로서 정 前 총장은 한국불교를 어떻게 하면 대중화, 세계화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매일 라디오를 통해 불자들을 만나 일종의 계몽활동에 앞장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부처님의 진리에 얼마만큼 다가서느냐, 또 이를 사회에 어떻게 환원시키느냐가 미래 불교다. 믿는데 그치지 말고 현실에 응용해야 한다”는 그의 모습에서 불교의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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