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탁탑천왕과의 일화

쥐 요괴를 살려준 탁탑천왕
요괴 행패에 대신 사과해
사람 처신의 어려움 표현

앞에서 이야기한 것을 좀 다시 상기해 볼까요? 도교의 근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수명을 늘리고, 신선이 되어 영원히 산다.” 대충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목적을 무분별하게 추구하고,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매우 위험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도교의 수양법 가운데 하나인 방중술 자체야 잘못된 것이 아니겠지만, 그것이 잘못된 성적인 행태를 낳게 되면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요괴 도사, 즉 국왕을 홀려서 아이들을 재료로 한 영약을 만들게 한 그 도사의 말을 좀 들어볼까요?
 
사계절에 맞추어 약재를 채취하고 아홉 번 뜨거운 불에 정련하여 단약을 만든다. 푸른 난새 타고 옥황상제 계신 곳에 오르고 흰 학을 타고 신선의 세상에 노닌다. 고요히 참선하라는 석가의 가르침에 따르고 적명 속에서 음신을 키워 열반해도 냄새나는 껍데기나 남기고 속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너희들 불교에 비할쏘냐! 유, 불, 도 삼교 가운데 위없는 품격을 가진 것 예로부터 오직 도교만이 홀로 높았더라.
불로장생이라는 실제적인 효과를 내세우면서 은근히 불교를 폄하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런 불로장생을 추구하면서 남의 생명, 그것도 죄 없는 아이들의 생명을 희생해도 된다는 것은 어디에 나오는 교리인지…. 바로 그게 문제네요. 적당히 그럴듯한 목적 내세우면서 혹세무민하여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것이 바로 사이비종교의 일반적인 행태지요. 그리고 그런 사이비 종교에 국가 최고지도가가 현혹된 것이 그 비극을 엄청난 규모로 증폭을 시켜버리는 것이구요. 그러니 소름이 끼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요.

다행히도 현장법사 일행이 때맞춰 도착하는 바람에 더는 끔찍한 사태로 번지지 않고, 삿된 것을 물리칠 수가 있게 되었네요. 그 나라로서는 참으로 다행이고, 일행에게는 또 하나의 큰 공덕이 쌓이는 일이 되겠지요.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 그 이상의 공덕이 어디 있을까요? 서유기의 말대로 “이번 비구국에서 벌인 큰 싸움은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분명하게 가려주었네” 입니다요.

이 이야기의 결말은 손오공이 요괴를 항복시켜 죽이려 하는 대목에서 태백금성이 나타나 “죽이지 마세요. 그 요괴는….” 이 정도 하면 우리 독자님들 이미 알아채셨겠지요. 애고고…. 그렇습니다. 태백금성이 기르던 사슴이었다네요. 웬만큼 선도를 닦은 바탕이 있는 요괴이다 보니 요괴도사 역할을 했겠지요. 그리고 이 요괴도사가 왕을 홀리기 위해 바쳤던 미녀는 불쌍하게도 저팔계의 쇠스랑 아래 외로운 혼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흰 얼굴 가진 여우요괴 이었다고요. 그래서 손오공, 증인으로 태백금성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가 자초지종 왕에게 알리고 여우시체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지요. “이게 당신이 사랑하던 아름다운 여인이오! 같이 좀 놀아보시겠소?” 그리고 온갖 대접 받고 떠나면서 또 이렇게 말해줍니다. “여색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남몰래 공덕을 쌓으며, 모든 일을 처리할 때 남는 것을 덜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시면 모든 병을 물리치고 충분히 장수하실 수 있습니다.” 참으로 건강에 좋다면, 정력에 좋다면 못하는 짓이 없는 오늘의 세태에 귀 기울일만한 따끔한 가르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큰 공덕 세우고 떠난 현장법사 일행. 다음엔 어떤 요괴가 기다릴까요? 요즈음엔 요괴가 나타나도 좀 쉽게 물리치고, 그 김에 공덕도 쌓고…. 그런 느낌이 좀 있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정말 어려운 고비는 웬만큼 넘었다 할 수 있거든요. 거의 인도에 왔거든요. 아직 부처님 계신 곳까지 가려면 좀 더 남았지만, 이미 인도 땅에 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해요? 그리고 수행의 경지로 말하면 거의 궁극에 다다랐다는 이야기도 되니까요. 그러한 상황이다 보니 요괴를 물리치는 힘도 더 생기고, 그만한 위치에 있으니 공덕을 쌓는 일도 많아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약의 글에서 말했듯이 언제나 ‘도고마장(道高魔長)’, 도가 높아지면 마군이도 또한 자라고, 요괴들 사이에서 현장법사 몸값도 더 오른다는 것이 문제지요. 무슨 몸값이냐구요? 정말 말 그대로 몸값이예요. 도가 높아지면 질수록 그 몸을 잡아 먹으면 불로장생의 약효 또한 더해지니…. 하하 정말 몸값이지요. 그런데 몸값을 그렇게 따지지 않고 정말 현장법사를 열렬히 사모하여 반드시 결혼을 하고 말겠다는 요괴가 나타났네요.
 
정말 지극하게 현장법사 모시면서 “스님 오빠! 저랑 합환주 같이 들고 부부의 의식을 올려요!”하고 달라붙는…. 현장법사 정말 죽을 맛? 어떤 의미에서 죽을 맛? 농담 아니고 정말 곤경에 처합니다. 그 지극한 발원과 신심을 깨뜨리려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저팔계라면 부러워했을지 모르지만, 현장법사는 정말 곤욕입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면 기쁨을 느끼는 곳이 다른 것이지요. 그래서 현장법사가 손오공의 꾀를 성사시키려, 요괴 손잡고 동산을 사이좋게 걸으면서 손오공이 둔갑하여 있는 복숭아를 요괴에게 권하기도 하고, 그래서 손오공이 요괴 뱃속에 들어가 한바탕 서커스를 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이거 고지식한 현장법사로서는 참 힘든 일이었거든요. 그런 일까지 한 것을 보면 현장법사가 얼마나 이 곤경을 벗어나고 싶었을까가 거꾸로 짐작되기도 하지요. 그런 요괴와의 싸움을 어렵게 이어나가는데, 우연히 이 요괴가 탁탑천왕을 아버지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 흔적을 발견하지요. “옳다! 되었다!” 잔머리 잘 돌아가는 손오공, 이것을 증거로 하여 천상세계의 탁탑천왕을 핍박합니다. 탁탑천왕 처음에는 “그런 딸 없다! 모함이다! 유언비어다! 중상모략이다!” 하면서 손오공을 핍박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발뺌만 되는 게 아니라는 증거가 드러납니다. 먼 옛날 늙은 암컷 쥐 요정을 잡아 죽이려할 때 애걸복걸하여 살려줬더니, 그 쥐 요정이 양아버지로 모시게 된 일이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연 드러나니 정말 굴욕스럽게도 손오공에게 사과하고 사정하고 거의 싹싹 빌다시피 하여 옥황상제에게 고해 바치는 것을 막고, 결국 쥐 요정 잡으러 직접 출동하게 되지요. 양아버지로 모시던 천왕이 직접 오니 쥐 요정이 어쩌겠어요. 결국 잡히어 오라비로 섬기는 탁탑천왕의 아들 나타태자에게 사정하는데, 그 때 나타태자가 이렇게 말하지요. “네가 (탁탑천왕을 아비로 삼고 나를 오빠로 삼아 제사지내며) 올린 향을 받은 탓에 우리 부자(父子)가 애꿎게 봉변을 당하지 않았느냐!” 정말 무서운 말이지요. 그냥 스스로 양아버지 양오라비로 모시고 향을 올리니, 나쁜 일도 아니고 하여 그냥 넘겼겠지요. 그런데 결국 그것이 탁탑천왕과 나타태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처신이라는 것은 이래서 어려운 것이지요. 자신이 꼭 고의로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완전히 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남섬부주 대한민국은 이런 도리가 아주 무시되는 나라더군요. “부하가 한 일이라 나는 몰랐다”던가, “내가 요구한 게 아니고 그쪽에서 알아서 그렇게 해 준 것인데 내가 무슨 책임이 있느냐”는 말을, 아주 너무 쉽게 내뱉지 않던가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삼쾌선생도 어떤 벼슬이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잘못한 건 모두 “부하가 한 일이라 몰랐다”하면서 떠넘기고, 적당히 자신의 위세를 부리면 알아서 갖다 바치는 거 적당해 챙기고…. 아~주~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하하. 이크,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는데요? 맹자 표현에 의하면 그렇게 아첨하고 바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여름철에 밭일 하는 것보다 힘들다” 하였는데, 삼쾌선생도 그리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 잘 할 수 있다는 말은 취소입니다. 취소!
 
어쨌든 탁탑천왕 부자가 출동하여 흰쥐요괴 퇴치하고, 현장법사를 여난에서 구하고, 또 다시 구법에의 막바지 깔딱 고개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죽이는 나라가 아니라 스님들을 죽이는 나라에 도착했지요? 만 명 죽이기로 서원하고 9 996명 스님을 죽인 나라! 그래서 현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만 죽이면 만 명을 채워 죽일 수 있게 된 나라! 거기서 벌이는 손오공의 활약과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지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 머리를 다 깎아, 모든 이들을 스님머리로 만들어서 그들을 회개시키는 대목, 생각하면 좀 웃음이 납니다. 왕부터 시작하여 왕비, 조정의 대신을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까까머리…. 그 앞에 나타난 후줄근한 현장법사 일행 넷의 까까머리…. 우후후후, 크크크그, 웃음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아무튼 이런 손오공의 재기 넘치는 활약 덕분에 어려움을 쉽게 넘어가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그 쉬움과는 달리 일행이 이룩한 공덕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왕과 조정 대신들이 모두 스님들을 죽였던 것을 회개하고 앞으로는 불교를 탄압하지 않기로 하였으니, 그 공덕이 얼마나 클까요?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나네요. “동방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사방과 상하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하시면서 무주상보시의 공덕이 그보다 크다 말씀하셨는데, 그런 무주상보시의 공덕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불법을 멸한다는 멸법국에서 불법을 흠모하는 흠법국으로 국호까지 바꾸게 한 그 공덕!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세운 것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런 공덕이 뒤를 받쳐 주니 앞으로 나가는 길이 더더욱 순탄하겠지요?

앞의 요약 글에서는 몇 가지 이야기를 스르륵~ 가볍게 넘어갔지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좀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니, 자칫 여러분도 식상할 수 있어 좀 과감하게 생략했지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인도 땅에 확실하게 도착하여, 확실한 인도 땅이라는 표를 내려 했던지 부처님을 가장한 요괴를 만나게 됩니다. 양젖으로 만든 향기로운 기름을 유난히 좋아하는 요괴, 그래서 부처님으로 분장하고 나타나 양젖을 갈취해가는 요괴, 그 부처님 분장에 신앙심 두터운 현장법사 걸려들어 잡혀가지요. 그래서 큰 고생을 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서유기의 저자는 나태해지고 산만해진 마음을 경계합니다. 또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고도 말합니다. 이러한 재앙이 생긴 원인이 바로 나태하고 산만한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조짐은 이미 이전에도 조금씩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 앞의 사건들에서 조금 자만에 빠지고 나태해진 표가 나고 있었거든요. 맹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우환 속에서 살아남고, 안락 속에서 죽어간다”고. 참으로 귀 기울일 만한 말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경계를 하고 단속을 하면 오히려 자신의 성장을 이룰 수도 있고 좋은 결과를 볼 수도 있지만, 편안하고 즐거운 속에서 나태하면 자산의 퇴보는 물론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미 인도에 도착하여 안심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에 요괴와 부처를 제대로 가리지 못해 위기에 처한 현장법사! 그러나 그 위기가 다시 “우환 가운데서 살아남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그 우환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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