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서광 스님

참불선원 인문학강좌불교와 뇌과학, 그리고 명상

광활한 평원 위에 마차가 한 대 지나간다. 그 길로 나버린 바퀴자국을 따라 연이어 다른 마차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최초의 마차 한 대가 남긴 흔적은 큰 길이 됐다. 불교와 서양 의학은 우리 행동과 감정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형성됐다고 말한다. 뇌과학자들은 수술이나 약물치료 없이 물리적 뇌의 변화를 부정했지만, 불교선 명상을 통해 뇌 자체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서광 스님은 1114일 참불선원 인문학강좌서 알아차림 명상이 뇌의 행동 패턴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하고, 명상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했다. 정리=이승희 기자

▲ 서광 스님은… 1992년 운문사 명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화여자대학 대학원 교육심리학과 석사를 수료하고, 미국 보스턴 대학서 종교심리학을 전공, 소피아대학교 대학원 심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에 〈현대심리학으로 풀어본 유식 30송〉, 〈현대심리학으로 풀어본 대승기신론〉 등 있다.

행동패턴 따라 생긴 뇌회로서
무의식적 행동 불쑥 튀어나와
오랜 악습 바꾸려면 시간 걸려
명상 통한 알아차림부터 시작

뇌를 바꾸는 명상
오늘 여러분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한다기보다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 받겠단 생각으로 강의를 들어보세요. 강연을 듣는 주체는 라고 생각합시다.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다양한 이론과 기법을 방편으로 활용하겠단 생각으로 공부에 임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3주 내내 우울과 명상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연구할 때, 가만히 있으면서 대상을 이해하려고만 한다면 성과가 없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경계가 만나 이뤄내는 수많은 감정 상태가 곧 나라는 자아느낌을 형성한다는데, 단순히 대상을 놓고 본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이라면 공부했다는 상()만 쌓이고, 겉 개념만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전 우울이란 주제에 완전히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울을 보는데 우울한 감정이 느껴지더군요. 퍼뜩 주위서 우울증을 앓다 빨리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불교적 가르침이 절박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한때 많은 연예인들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줄을 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 TV 채널에서 우울증에 대한 특강을 하더군요. 거기서 강사는 우울증이란 마음의 작용이 아닌 뇌의 작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통적 뇌과학 입장에선 마음을 뇌가 전기화학적 작용을 한 결과로 봅니다. 따라서 뇌가 죽으면 마음도 끝나게 됩니다. 전통적 불교 관점에서 뇌는 마음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은 마음의 작용 결과로 생각합니다. 양쪽이 전혀 상반된 견해를 가졌습니다.

뇌과학 관점에서 보면 마음이 불편할 땐 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뇌수술을 집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불교의 관점에선 마음을 닦아야 하지요. 뇌를 바꿔서 마음을 바꿀 것인지, 마음을 바꿔 뇌를 바꿀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명상과 뇌과학이 만나게 됩니다.

달라이라마는 뇌과학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서양 의료계에 마음이 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졌지요. 신경학자들은 뇌 가소성개념으로 뇌에 접근합니다. 뇌 가소성 논리에선 한 번 생긴 뇌세포나 신경회로는 변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불교에선 어떨까요? 수행을 통해 뇌조차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MRI 기술이 도입되고 뇌 상태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자 이러한 사실이 증명됐습니다. 이후 서양 정신치료와 불교가 만나면서 명상이란 분야를 활발히 개척하게 됩니다.

습관의 노예가 되지마라
여러분, 갓난아이의 두뇌 작용원리를 아십니까? 아이의 두뇌엔 수많은 신경이 있고, 전기화학적 전류가 특정 신경을 통해 흐를 때마다 해당하는 신경 통로가 형성됩니다. 뇌 작용을 연결하는 뉴런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 규칙적으로 사용되는 통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패턴으로 연결됩니다. 적게 사용되는 통로들은 연결이 약하거나, 작용하지 않을 땐 신경이 죽기도 합니다.

두뇌가 성장해갈수록 특정한 형태의 패턴은 강화됩니다. 우리 경험은 차별적이기 때문에 뇌의 발달부분도 다르지요. 화를 많이 내면 화를 담당하는 신경부분이 발달합니다. 이런 패턴이 형성된 것을 우리는 성격 혹은 인격이라고 일컫습니다.

평원을 지나가는 마차의 행로 자국을 떠올려 보세요. 마차의 흔적은 나중에 길이 되곤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두뇌는 과거 활동의 자취가 미래 활동으로 진행될 경향성을 높이는 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활동 패턴이 굳어지면 결국엔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행동들이 표출됩니다.

마음은 이렇듯 습관에 의해 강요될 때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삶의 습관적인 반응이 고통을 불러일으킵니다. 화를 내기 싫어도 불쑥 화가 나고, 모진 말을 내뱉고 싶지 않아도 이미 말은 나와 버렸습니다. 전에 쌓인 업이 너무 많으니 조건만 맞으면 불쑥 안 좋은 습관이 뛰쳐나와 인간관계를 힘겹게 만들고, 중요한 일을 망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고통과 갈등을 유발하는 정신적사회적신체적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학습된 악습이 작동하는 행동 패턴을 바꿔야 합니다. 세세생생 쌓인 업은 단지 한 번 깨달았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바꾸려면 당연히 힘이 들지만 일상에서 작은 습관을 하나씩 바꾸려는 의지를 내는 게 중요합니다.

마음 똑바로 보기
이때 명상은 잘못된 습관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변환하는 데 사용되는 좋은 도구입니다. 마음챙김의 의식적 자각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마음 구조를 재구성하는데 필요합니다. 깊게 새겨진 무의식적 행동 패턴은 지각의 범주를 벗어나 작용하기 때문에 직접 관찰되진 않습니다. 명상의 핵심적 기능인 알아차림은 역동적인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킵니다.

평원 위에 새겨진 마차의 흔적은 누구나 평원을 응시한다면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우리 뇌에 새겨진 통로도 자각하고 의식할 수 있습니다. 명상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 따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아닌데, 왜 명상을 하면 지혜로워집니까?
우리는 각자 방식대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해석합니다. 명상을 하면 있는 그대로, 아무 편견도 없고 탐욕에도 근거하지 않은 채로 볼 수 있습니다. 지혜의 반대는 망상입니다. 망상은 인지사고정서의 왜곡이고 이로 인해 번뇌가 일게 됩니다. 그러니 망상과 번뇌가 없다면 더욱 지혜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겠지요. 배가 고플 때 모든 감각이 음식에만 반응하고, 명예를 원하는 사람이 오직 명예만 추구하는 등 맹목적 상태서 벗어나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니 지혜로워지지요.

-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을 또렷이 뵙고 싶은데 관()이 잘 되지 않습니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또렷이 보고 싶다면 잘 그려진 그림을 보세요. 그리고 관이 잘 안 돼도 실망하지 마세요. 몇 십 년을 수련한 명상 스승님들도 앉아 있을 때면 망상이 떠오른다고 솔직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 뇌는 활발히 움직입니다. 우리 모든 몸과 마음 구조는 생존을 위해 발달되었기 때문에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은 행복을 위하기보다 생존을 위해서 작동합니다. 그러니 집중이 안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떠돌아다니는 아이를 부드럽게 타일러 데려온다는 생각으로 접근해보세요.

- 화를 알아차린 후에 오히려 여기에 집중만 하게 됐습니다. 결국 화병이 날 것 같아 화를 내버렸습니다.
부처님은 심리 상태 각각에 따라 효과적이거나 덜 효과적인 수행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전통적으로 불교는 화를 자비명상으로 다스리라는 지침을 줍니다. 화는 상당히 거친 감정이지만, 그 이면에는 각각의 다른 부드러운 욕구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섭거나, 외롭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화를 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 이면엔 사랑받고 싶단 최초의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비명상을 통해 현재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생각하고 이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내가 먼저 나에게 사랑을 주는 자기연민이 필요합니다.

- 남의 단점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그리고 정말 화가 났을 땐 정작 화를 알아차리지 못해 자괴감이 듭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가장 위험한 생각은 한심하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겁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바탕에는 자만심이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그대로 효과를 볼 것이라는 생각은 더 큰 질책만 부릅니다.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고 너그러이 넘어가야 합니다.

상대방은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타자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춰볼 수 있습니다. 내 안의 긍정적인 요소를 발현하고 싶은데 남이 이를 가지고 있으니 좋아 보이는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피할 수 없다면, 모든 일은 반드시 내가 필요한 공부가 남았기에 겪는 것이니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지 생각하십시오.

- 명상을 통해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다 보니 가족들은 무관심하다며 섭섭함을 표합니다. 가족에 애착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들을 서운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나요?
가족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음 내려놓기는 단순히 무덤덤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 사무량심(四無量心)이 말하는 마음가짐은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평정심훈련입니다. 우리 모두는 중도 수행을 해야 합니다. 가족 관계서 자녀에게 관심이 쏠려 남편을 못봤거나, 가족에 쏠려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때 이를 바로 잡는 걸 말합니다. 내려놓기보단 평등하단 표현이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수행을 할 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자신을 포함하란 겁니다. 부처님 교리의 핵심 가르침은 요익중생(饒益衆生)입니다. 부처님은 살아있는 모든 중생이 서로 유익한 존재이길 바라셨습니다. 불법을 적용할 때에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포함시키는 법에 유의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부터 나를 돌보고 따뜻하게 대할 때, 요익중생은 점점 확장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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