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란 무엇인가 ③

대상세계’()를 제대로 보고 아는 데는 여러 가지 능력이 요구된다. 어원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상세계란 움직이는 것이어서, ‘여섯의 감각기관’(六根)으로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양상은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시각으로 포착할 때에 주어지는 자료는 동영상이다. 그러나 실제가 동영상의 형태라고 해도 대상과 접촉’()하여 받아들일’() 때에는 1차적으로는 그 영상들을 일련의 정지된 화면으로 붙잡는다. 시각의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건이든 시각 자료의 특정 부분에 먼저 초점을 맞출 것인데, 시각을 어느 지점에 두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느낌과 인식과 감정의 굴곡은 다양한 층을 이룬다. 하나의 동영상에서 저마다 선택한 정지화면들의 집합, 이로써 저마다 시각으로 구성한 세계를 구성한다. 이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동일한 사람이라도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니까야와 아함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기’(如實知見)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이러한 전제가 타당하다면, 지혜의 성취는 대상을 거시적 관점으로 볼 것을 먼저 요구한다. 전체 모습에 대한 안목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산의 정상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본 경험이 없으면 우리가 사는 곳의 모습은 그저 포장된 길과 건물의 사이에 지나지 않지만, 정상에 서서 전후좌우와 상하를 모두 살펴보는 순간 산줄기와 강줄기가 서로 이어지는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 보인다. 그러나 이때의 전체라는 것도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지된 화면들의 집합체로서 잠깐 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균형 잡힌 시선을 다시 요구한다.

▲ 그림 나은영.

미시적 시선의 필요성 또한 놓칠 수 없다. ‘내려 보기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특징들은 그 속살의 드러냄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대상이나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다가오는 사건 및 상황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 본연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더 어렵다. 나아가 작다고 여긴 미세한 특징들 속에는 언제나 크고 작음의 차이가 다시 존재하기 때문에 미시적인 분석력을 정밀하게 동원한다고 해도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거시와 미시적 관점을 아무리 종횡무진 발휘하더라도 상대적, 부분적, 제한적, 조건적이라는 그물에 걸리게 마련이다. 디가-니까야의 첫 번째 경전에서 견해의 그물이라는 표현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숫타니파타서 수행자의 길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고 한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부처는 지혜를 얻기 위한 길로 무엇을 제시했던가? 이제 우리의 관심은 여기로 모을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관심은 움직이고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고 있는 대상들을 정지된 화면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움직이고 있는 실제의 대상에서 발견되는 규칙성의 파악이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외국어 문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문법이라는 길잡이가 도움을 주듯이, 우리들의 일상이라는 현실에 내재하는 규칙성의 존재를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상세계를 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크든 작든 모두 상대적, 부분적, 제한적, 조건적이라는 한계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처가 지혜로써 파악하여 제시한 교학, 교리라는 설명체계는 우리들의 시선을 대상세계에 대한 규칙성의 파악으로 이끌고, 또 한편으로는 상대적, 부분적, 제한적, 조건적시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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