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천진암·주어사지서 펼쳐진 종교화합 행사

불교계 자비명상, ‘천진암첫 방문
아리담문화원, ‘주어사지서 문화제
불교·가톨릭 인식 차이 드러나 

가톨릭계에
천진암·주어사
불교역사 알리는
노력 이어져야

▲ 천진암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자비명상 마가 스님과 송요셉 신부가 종교화합을 상징하는 굳은 악수를 하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불자들의 노력으로 이 땅에 종교화합을 이끌고, 그 힘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치유되길 기원합니다.”

조선시대 박해를 받던 가톨릭 신자들을 보호하다 희생된 스님들의 숭고한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 경기도 광주 천진암(天眞庵)과 여주 주어사지에서 불자들의 종교화합을 기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단법인 자비명상(대표 마가)과 아리담문화원(원장 송탁)115일 이 일대에서 가톨릭 인사들과 함께 종교 화합의 장을 개최한 것이다.

천진암과 주어사지는 광주에 위치한 앵자봉 기슭에 좌우로 나뉘어 자리하고 있다. 가톨릭계에서 한국 가톨릭 발상지로 여기는 천진암과 주어사지는 1700년대 중반 이벽·이승훈·권일신·권철신·정약종 등 학자들이 스님들의 보호 속에 강학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801년 가톨릭을 박해한 신유사옥 당시 가톨릭신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10여 명의 스님이 참수당하고 두 사찰이 폐사된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가톨릭계는 1980년대 천진암 대웅전 터에 이 5명의 묘소를 짓는 등 성역화 사업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 주어사지에서도 성역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가톨릭계가 천진암 성역화 사업 당시 암자를 뜻하는 천진암의 ()’()’으로 고치고, 사찰 흔적을 모두 지웠다는 것이다.

불교 관련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가톨릭계의 천진암 성역화 사업 결과를 보고 불자들은 2014년 주어사지 성역화 사업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2년여 동안의 갈등 끝에 마련된 이날 행사는 불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가톨릭계와 소통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 천진암 성모성당을 둘러보는 스님들의 모습

가톨릭 성지화된 천진암 첫 방문
먼저 행사는 마가 스님이 이끄는 자비명상이 주최한 천진암 방문으로 시작됐다. 이날 방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불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천진암 입구의 거대한 성모마리아상과 십자가의 모습에 불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비명상 서울본부 선덕화 보살은 이날 행사조차도 못받아 들이고 빠진 분들이 많다. 열린 마음으로 불교계가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왔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남에서 온 동효 스님은 천진암 가톨릭 성역화 사업 당시의 반대움직임을 소개하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스님은 출가 이전부터 이 지역에 살았다. 당시 광주·하남사암연합회에서 반대운동을 펼쳤는데, 여러 종단이 섞여 있고, 조계종단의 뚜렷한 입장이 없어 유야무야 된 바 있다가톨릭 성역화 사업은 이해하지만 불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요셉 신부 공통점 있어, 화합 가능
이런 불자들을 맞이한 건 송 요셉 신부였다. 성당 입구에서 악수를 하며 불자들을 맞이한 송 신부는 종교간 공통된 부분이 많다며 강연했다.

천진암 성모성당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송 신부는 오늘 오신 불자님들은 성당을 건립한 후 처음 온 이웃종교인들이라며 욕심을 버리고 선을 행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행선피악(行善避惡)이 종교의 근본이기에 이런 관점에서 두 종교는 화합할 수 있다. 그 움직임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사로 나선 마가 스님은 올바른 역사계승, 뭘까요?”라고 모인 대중들에게 질문하고 종교가 다르니까 너는 여기 절에 오지 말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오늘 이 자리에서 불교의 자비정신과 포용에 대해 한번 생각해봅시다라고 화두를 던졌다. 스님은 이어 요셉 신부에게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본 벽화를 본 딴 부처님과 예수님의 어깨동무 그림을 선물했다.

하지만 천진암에는 치유돼야 할 갈등의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보였다. 이날 천진암 경내에는 불교경전 독경 소리가 크게 들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천진암 관계자는 “1978년부터 가톨릭계에서 땅 1평 사기운동을 벌여 현재 30만평을 보유하고 있는데 일명 알박기를 한 이들이 있다인근 한 사람이 입구에 땅 1평을 산 뒤 피켓·현수막 시위를 하는가 하면, 미사시간 일부러 음향을 트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진암 인근에 살고 있는 김주석 씨는 천진암이 갖가지 박물관과 성모마리아상 건립 등 과정에 법에 위반되는 사실이 많다. 이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진상을 밝히고 시정할 것은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 위령제에서 헌향하는 가톨릭 신부 모습.

화합 위한 노력 필요성 드러나
종교화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필요성은 아리담문화원이 여주 하품2리 마을회관에서 개최한 주어사의 올바른 역사 계승을 위한 화합한마당에서도 드러났다.

천진암을 방문한 자비명상 불자 200명과 수원 아리담문화원 등 각 지역에서 온 100여 불자들, 인근 가톨릭 교구 관계자 및 유림 10여 명은 주어사지 인근 하품2리 마을회관 앞에서 주어사의 올바른 역사 계승을 위한 화합한마당을 통해 이날의 행사를 이어갔다.

천주교 예배, 유교 제례, 불교 예불 순으로 합동 추모의식을 진행하며 각기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제는 이어 진행된 예술제에서 선보인 뮤지컬이었다. 천진암과 주어사지 관련 구술 증언을 소재로 창작된 생명이 중헌디!’ 뮤지컬은 주어사 스님들이 가톨릭 신자, 유학자들과 함께 관군에게 사살되고 천진암과 주어사가 폐사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런 구술 증언에 가톨릭계 일부 인사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며 불편함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수원에서 온 김상기 불자는 천진암과 주어사지는 폐사와 함께 화합의 의미는 묻히고 현재는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된 상황이라며 역사적 사료 고증과 이를 가톨릭계에 알리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리담문화원 원장 송탁 스님은 장기간 지속돼 온 천진암, 주어사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소통만이 해답이다. 대중들, 그리고 가톨릭계에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환기시켜 나갈 계획이라며 가톨릭 측도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처음으로 종교갈등의 현장에서 열린 화합의 움직임. 이날 행사는 천진암과 주어사지에 대한 불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30년 넘게 굳어진 인식 차이가 드러난 자리이기도 했다. 진정한 종교 화합과 상생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행사는 막을 내렸다.

▲ 하품그리 마을회관 앞에서 펼쳐진 뮤지컬.
▲ 하품그리 마을회관에서 열린 문화제에는 스님과 신부 등 총 400여 대중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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