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수·인재·인조 쌍둥이 삼형제(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회원)

둘째 인재, 고창고 파라미타 주역
첫 사찰 체험서 불교와 인연
고사 직전 동아대 대불련 살려
올부터 대불련 문화부장 활동 

형제들에게 대불련 가입 권유
연희단 율동팀으로 연등축제 참가
1121일 생일날 함께 군입대
외국인 불교 홍보·수계 등 서원

세 쌍둥이는 확률적으로 태어나기 어려워 그 인연이 매우 깊다. 하지만 이런 삼형제가 함께 불법(佛法)을 닦는 도반이라면 세상 무엇보다 존귀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대학생불자로서 전법에 매진하고 있는 세 쌍둥이 유인수유인재유인조 법우. 오는 21일 생일날 함께 입대하는 세 쌍둥이 도반이 각자 품은 서원을 들어봤다.

 

▲ 올해 3월부터 함께 대불련 활동을 하고 있는 유인수ㆍ유인재ㆍ유인조 쌍둥이 삼형제가 오랜만에 만나 조계사에서 예불을 모시고 뭉쳤다. 오른쪽부터 첫째 유인수, 둘째 유인재, 셋째 유인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에는 문화부장이 셋이다? 어찌 이런 일이. 지난 114, 서울 견지동에 위치한 대불련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옆 법당엔 똑같이 생긴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들은 1분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 삼형제. 첫째 유인수(22천안남서울대 건축공학과), 둘째 유인재(동아대 철학과), 셋째 유인조(순천향대 국제학과). 그랬다. 그 중 둘째인 인재 씨가 대불련 문화부장이다. 하지만 대불련 식구들은 아직도 누가 진짜 문화부장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저 내가 인재야하면 끝. 회원들이 보기엔 문화부장이 셋인 셈이다. 삼형제는 지난 3월부터 형제에서 도반이 되었다. 모두 대불련에서 함께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쌍둥이 삼형제는 어떻게 도반이 되었을까.

둘째의 힘들었던 사춘기
모든 것은 둘째인 유인재 씨로부터 시작된다. 인재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사춘기를 맞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반항의 이유가 됐다. 그는 교실 앞쪽에 아무런 관심 없는 학생이었다. 인재의 시선과 두 발은 늘 뒷문과 창 밖에 있었다. 삼형제 중 인재는 유달리 힘든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인재는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는 폭력을 휘둘렀다. 그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그는 모든 선생님과 전교생 앞에서 피해자 학생의 보호자로부터 매를 맞았다. 그의 얼굴에 날아든 분노 가득한 손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모욕을 남겼다. 인재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이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이유 없는 반항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멋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비가 온 뒤의 땅은 단단해지는 법. 확실한 백신을 맞은 인재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는 조금씩 교실의 앞쪽으로 향해 갔다.

새로운 삶, 반장이 되다
힘든 사춘기를 벗어난 인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원을 하나 세운다. 반장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반장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는 지난날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한 학급의 반장이 된다는 것은 지난날의 잘못된 삶에서 자신을 지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그는 학급과 학교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누구보다 먼저 등교해 교실을 정리하고 수업 준비를 했다. 층별로 쓰는 정수기의 물을 채우고, 선생님의 심부름을 자진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다. ‘문제아에서 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쯤 됐을 때였다. 드디어 반장 선거가 다가왔다. 그는 마침내 반장이 되었다. 그의 삶은 점점 반듯한 모양을 찾아갔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2학년이 되어서도 다시 반장을 하고 싶었지만 그는 반장이 되지 못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선거를 치르지 않고 직권으로 반장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반장이 된 학생은 인재가 1학년 반장일 때 부반장을 했던 같은 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성적은 전교 초상위권에 속했다. 반장의 이유는 그것이었다. 인재도 나름대로 성적이 좋았으나 그 친구의 성적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투표를 해야 합니다. 투표를 하게 해주십시오.”

인재는 수업이 시작될 때, 자율학습 시간에, 또 복도에서 선생님과 마주칠 때 등등 틈만 나면 시위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싸늘했다. 인재는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는 선생님이 야속했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그는 마침내 선생님에게 이 같은 편지를 썼다. 정정당당히 선거를 치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간절한 글로 호소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선생님의 단호한 선언이 함께 있었다.

또 다시 반장 선거를 이야기한다면 나는 이 학급의 담임을 맡지 않겠다.”

선생님에게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2학년과 1학년은 다르다. 대학 진학이라는 큰 숙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선생님은 인재도 좋지만 학교 차원에서 기대를 걸고 있는 학생이 반장을 함으로써 학급의 분위기를 좀 더 면학적으로 이끌고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속내를 들은 인재는 그 깊은 뜻을 알아보지 못하고 나만을 생각했던 자신이 또 한 번 부끄러웠다. 그날 밤, 그는 다시 선생님께 마음을 담은 사죄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자신을 원망할 것이라 생각했던 인재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은 선생님은 그의 심성을 알아보게 됐다.

▲ 2016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에 연희단 율동팀으로 참가한 삼형제. 왼쪽부터 둘째 인재, 셋째 인조, 첫째 인수.

고창고 파라미타 출범의 주역
동아리 한번 해보지 않겠니?”

인재의 심성을 알아본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동아리 활동을 추천했다. 그것은 파라미타 청소년연합회(이하 파라미타)’였다. 전북 고창고교에 파라미타가 출범한 것이다. 동아리의 고문을 맡은 담임선생님은 인재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불교의 자도 모르는 인재였지만 담임선생님은 인재의 불성을 보았던 것이다. 인재는 3일 동안 1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고창고교 파라미타는 그렇게 출범했다.

처음으로 사찰체험을 갔어요. 완주 송광사였어요. 송광사에는 문화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문화재에 대해서 조사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불교문화재들을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됐어요.”

인재는 그렇게 불교와 만났다. 처음으로 보는 유서 깊은 대웅전, 종루, 사천왕상, 동종, 부도, 그리고 처음 듣는 스님의 법문, 가까이에서 듣는 풍경소리, 처음 해보는 발우공양, 처음 해보는 울력. 그의 마음속으로 불교가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전북교육청과 불교시민연대, 전북파라미타가 진행하는 청소년생명평화실천단의 1기 단장을 맡았다.

초파일에 선운사로 봉사활동을 갔어요. 제가 직접 기획한 첫 행사였어요. 법우들과 연등도 달고, 설거지도 하고 법당과 마당 청소도 하고, 행사 진행도 했죠. 연등이 달린 마당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는데, 그냥 좋더라고요.”

그는 그 해 왕성한 활동으로 교육감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대불련의 존재를 알게 됐다.

꺼져가는 동아대 불교학생회를 살리다
삼형제는 대학에 진학했다. 첫째 인수는 천안남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에, 둘째 인재는 부산 동아대학교 철학과에, 셋째 인조는 순천향대학교 국제학과에. 고교시절 파라미타를 계기로 불교를 알게 되고 그때부터 틈틈이 불교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넓혀갔던 인재는 불교동아리부터 찾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동아대 불교학생회는 유명무실한 동아리였다. 회원 감소와 열의 부족, 리더의 부재 등으로 인해 방치된 동아리였다. 동아리방마저 없어질 처지였다. 그렇게 꺼져가는 동아대 불교학생회를 살린 것은 인재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의 파라미타를 떠올렸다. 그는 발로 뛰며 단 며칠 만에 60명의 회원을 모집했다. 동아리방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매주 법회를 열어 많은 법우들과 교수들이 동아리방을 찾게 했고,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해 불교학생회의 존재를 알렸다.

▲ 2016 한국문화연수원에서 개최된 대불련 영캠프에 참가한 삼형제.
대불련 문화부장 유인재
그렇게 동아대 불교학생회를 재건한 인재는 올해 1월 대불련 중앙으로 올라오게 됐다.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위해 휴학 중이던 인재는 문화부장을 맡았다. 첫 임무는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였다. 연등회에서 율동을 선보일 연희단을 꾸리는 것이었다.

지난 3, 조계사 옆 전법회관 1층 선운당. 대불련 문화부는 연등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서울지부 지회장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와 문화부 모임을 가졌다. 설명회가 끝나고 인재는 20여 명의 문화부 법우들과 함께 차담도 나누고 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문화부 법우들이 이렇게 모여서 놀았답니다. 춤 연습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가 만나는 이유는 도반과 함께 있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정말 즐거운 시간 보내서 감사합니다.”

그가 그날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인재는 힘겨웠던 사춘기 시절을 겪고, 파라미타를 만나고, 대불련을 만나고, 불교를 만난 일련의 일들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인연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불교를 떠올리며 오랫동안 보지 못한 형제 인수와 인조가 생각났다.

인수와 인조도 함께 하면 좋을 텐데. 왜 진즉 불법을 전하지 못했을까.’

인수와 인조도 휴학 중이었다. 인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불가에 댄스?”

인수와 인조의 학교에는 불교학생회 동아리가 없다. 불교학생회가 없는 학교 학생들은 중앙의 대불련 문화부를 통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연등축제를 준비하고 있던 인재는 인수와 인조를 대불련에 가입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희단에 동참시킬 계획을 세웠다. 인수와 인조는 인재의 권유로 올해 3월에 대불련 회원이 됐다. 그리고 연희단에 적극 동참했다.

솔직히 인재의 권유로 얼떨결에 가입하고 얼떨결에 춤을 추기 시작했죠.(인수, 인조 웃음) 그런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불교에 이렇게 재미난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무겁고 구식이라고만 생각했던 불교를 다시 보게 된 거죠.”

그야말로 불교의 자도 몰랐던 인수와 인조는 처음 듣는 찬불가도 신기했고, 찬불가에 댄스는 더욱 신기했다.

처음엔 같은 대학생 법우들과 춤을 추면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았어요. 그러다가 법우가 왜 법우인지 알았고, 그러다보니 그들 생각과 믿음의 원천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들의 말()과 걸음걸이, 눈빛, 미소, 점점 닮아갔어요. 그런데 저희가 어느 새 불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얼떨결에 배운 춤이었지만 인수와 인조의 춤은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를 더했다. 드디어 연등축제가 시작됐다. 인수와 인조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TV에서나 어쩌다 한 번 보았던 연등축제였다. 화려하고 엄숙한 장엄물과 수많은 연등과 인파가 놀라웠고, 그 속에 자신들이 있다는 것 또한 신기했다. 인수와 인조 그리고 인재, 쌍둥이 삼형제는 신명나게 춤을 추었고, 난생 처음 연등을 따라 연등길을 걸었다.

소중한 인연, 도반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좋죠. 더구나 저(인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둘이나 더 있으니 말이죠.(웃음) 무엇보다 인수와 인조가 불교에 눈 뜬 것이 기뻐요. 같은 믿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즐겁고요. 늘 좋은 법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삼형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오늘 삼형제는 서울여자간호대학교 불교학생회 창립제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인조)는 불교공부는 물론이고, 영어 공부를 좀 더 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불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저는 외국인 친구가 조금 있는데, 예전에 삼보사찰을 선운사라고 잘못 알려주고 인재에게 헤드록을 당한 적이 있어요.(모두 박장대소).”

삼형제는 모두 오는 1121일 군에 입대한다. 그날은 그들의 생일이기도 하다. 인수인재인조. 그들은 이름을 월주 스님으로부터 받았다. 외조부 인연이라고 한다. 그들의 이름이 법명은 아니지만 그것은 불가의 항렬일 것이다. 인연법이다. 매순간 스쳐가는 말 한 마디, 글씨 한 자, 머문 자리, 바라보는 자리는 반드시 법으로 돌아왔다.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삼형제의 모습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인수)는 군에 있는 동안 꼭 계를 받고 싶어요. 인재에게 들으니 군에서도 수계법회가 있더라고요. 빨리 손목에 연비하고 불명도 받고 싶어요.”

참된 도반을 얻는 것은 공부의 반을 이룬 것과 같다고 했다. 이제 막 불가의 마당에 들어선 삼형제는 한참 신이 나있다. 사물을 챙기며 또 다른 법우를 만나러 가는 그들의 뒷모습엔 어느 법회, 어느 법문보다 여법한 법향이 묻어났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그들이 기다려진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