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란 무엇인가 ②

우리들의 삶은 감각기관의 문()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감각 대상을 마주하여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인도인들은 감각기관의 존재를 외부 대상을 알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에서 인드리야’(Indriya)라고 불렀다. 이 말은 고대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 인드라(Indra, 帝釋天)와 유사한이라는 뜻이다.

인드라신은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고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이기 때문에 인도의 종교 문헌에 등장하는 신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지위에 있다. 따라서 우리들의 감각기관이란 마치 인드라신이 출현하여 비를 내려주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는 발상에서 나온 말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 말을 뿌리’()로 옮겼다. ‘외부의 대상세계’()를 아는 작용이야말로 우리들의 삶을 꾸려가는 뿌리에 해당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인드라신과 유사한 이 감각기관을 여섯으로 파악하였다. ‘(), (), (), (), (), 의식()’이다. 이 여섯의 문은 제 각각 받아들일 수 있는 대상이 제한되어 있다. 눈은 보인 것’(), 귀는 들린 것’(), 코는 냄새난 것’(), 혀는 맛본 것’(), 몸은 감촉된 것’(), 의식은 인식된 것’()을 그 대상으로 한다.

▲ 그림 나은영.

중국인들은 불교경전을 한역하면서 여섯 감각기관’(六根)이 각각 받아들이는 여섯 가지 대상을 육경(六境)이라고 옮겼다. ‘감각대상’()에 해당하는 팔리어 원어는 ‘visaya’인데, 팔리어 사전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그 어원을 동사어근 ‘vis.(움직이다·활동하다·붙잡다·받아들이다·먹다)’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이 풀이에 따르면, ‘대상세계’()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감각기관으로 붙잡아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장소, 지역, 영역, 경계라는 의미에 주목하여 이를 ()’으로 번역하였던 것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각각의 대상세계’(六境)를 만나 이루어지는 열두 가지를 토대로 인식 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十二處)모든 것’(一切)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一切)은 이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우리의 감각기관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감각된 것, 의식된 것, 인식된 것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대상들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인간들의 삶의 질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니까야/아함에서 말하는 지혜는 이 열 두 가지 영역을 그 범위로 한다. <잡아함> 319경의 서술에 나오듯이, 이 열두 가지 영역을 넘어서는 존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말일 뿐 앎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지혜로써 알아야 할 대상 세계는 지금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우리들의 감각기관이라는 문으로 들어오는 녀석들이다. ‘행위 단속의 영역’(戒學)명상의 영역’(定學)갖가지 감각기관의 지킴’(諸根守護)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지혜의 영역’(慧學)에서는 모든 것이라고 부르는 대상세계의 움직임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계율을 잘 지키면 명상을 잘 닦을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율만 잘 지키면 명상 또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명상은 지혜의 길을 열어가는 하나의 열쇠이지 그 자체가 만능열쇠나 자동열쇠는 아니다. 지혜로 가는 길은 우리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저 대상세계를 제대로 보고 아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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