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삼탄 이승소
33. 삼탄 이승소
  • 윤호섭 기자
  • 승인 2016.11.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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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주지 明信과 우정 다진 名臣

예악·병법·율역 두루 밝고
임금 향한 충심도 뛰어나
표면적 해불론 지었지만
승려교유 단절 않고 이어

▲ 삼각산 진관사 전경. 이승소의 시를 통해 그가 조선전기 진관사 주지 명신과 깊은 우정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서거정과 쌍벽을 이뤘던 이승소(李承召, 1422~1484)는 김수온(1410~1481), 강희맹(1424~1483), 김종직(1431~1492)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다. 자는 윤보(胤保)이고 삼탄(三灘)이라는 호를 썼다.

17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한 후 집현전 부수찬(集賢殿 副修撰)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후에 응교(應敎)로 승진되었고, 여러 관직을 거쳐 이조와 형조의 판서,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그가 외직인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병이 나자 임금(세조)이 약을 하사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특히 예악(禮樂)뿐 아니라 병법에도 능했던 그는 율·(·)에도 밝았을 뿐 아니라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늘 청렴했다고 한다. 그의 임금을 향한 충심(衷心) 또한 대단했던 듯한데 이는 국조보감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성종 2(1471) 왕께서 세 대비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당시 여러 종신(宗臣)들과 재상을 불러 술과 음악을 하사했다. 주흥(酒興)이 고조되자 왕은 친히 태평한 오늘은 취해도 좋으리(昇平今日醉無妨)’라는 한 구절을 내려 여러 신하들에게 화답을 청했다고 한다. 당시 예조판서 이승소는 즉석에서 임금님과 신하들이 한자리에 모이셨도다(魚水相歡共一堂)/예로부터 편안할 때엔 위태로움을 잊지 말라 경계하였으니(安不忘危古所戒)/다시 굳은 뿌리에 왕업이 매였음을 생각하리(更思王業繫苞桑)”라고 하였다.

그의 화답 시에 천하가 모두 태평할 때 늘 위험을 생각한다(安不忘危)”라는 말은 원래 역경(易經)에 있는 말이다. 나라의 위태로움은 어려울 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태평성대를 누릴 때에 (위험이) 싹 튼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성종은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임금이었다.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즐거운 연회에서 성종의 호기는 한번쯤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던 분위기였으련만 이승소의 화답은 폐부를 찌르는 직언(直言)이었던 셈이다. 아마도 성종은 포용력이 있는 성군이었기에 그의 쓴 소리를 유쾌하게 들었을 것이다. 실로 태평성대는 성군과 현신이 함께 만드는 시대의 하모니(harmony)인 셈이다.

한편 그가 살았던 시대는 성리학이 대세를 이룬 때다. 그러므로 불교는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다. 세조 때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경을 간행했지만 불교의 영향력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니다. 척불론(斥佛論)이 대세를 이뤘던 시대이기에 그 또한 해불(害佛:불교가 풍속에 미친 악영향)을 논하는 글을 지었을 것이다. 불교의 위축은 이미 조선 건국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15세기 말 산사를 찾아 차를 나누던 풍속도 점점 줄어들었고 실제 차를 즐기는 문인의 수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때다. 물론 이승소가 표면적으론 해불론을 짓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명분이었을 뿐이며 승려들과의 교유까지 단절했던 것은 아닌 듯한데 이는 그의 삼탄집에 수록된 수편의 시문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그와 교유했던 일암전 장로에게 준 일암전장로(贈一菴專長老)를 감상해 보자.

백 년의 번뇌를 떨쳐 버리고(抖擻百年累)
깊이 일미선에 들었네(深參一味禪)
몸이 한가하니 응당 늙지 않을 것이고(身閑應不老)
고요한 마음엔 졸음조차 없으리(心靜更無眠)
대바구니 속엔 약()을 말리고(藥料筠籠)
차 솥엔 흰 눈()으로 (차를) 달이네(雪水煎)
제일 가련한 건 속세의 객이(最憐塵世俗)
항상 몸이 얽매여 애쓰는 것이라(役役常在纏)  

그와 오랫동안 교유했던 일암전 장로는 백 년의 번뇌를 떨쳐 버리고(抖擻百年累)/깊이 일미선에 들었던(深參一味禪)” 승려라는 것이다. 일암전 스님의 수행 경지를 드러냈다. 이뿐 아니라 이승소는 일암전 승려와의 어떤 교유를 나누고 있었는지를 일암전 장로에게 주다(贈一菴專長老)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누항에서 가끔 서로 지나쳤는데(陋巷時相過)
포단에서 좌선하는 그대에게 물었지(蒲團坐問禪)
현관에 선사는 이미 다 뚫었는데(玄關師已透)
화택의 나는 현재 졸고 있다네(火宅我方眠)
또한 많은 술을 마시어도 괜찮겠거니(且可百壺飮)
어찌 팔병의 차를 달일 필요가 있는가(何須八餠煎)
오롯이 대도를 통하였으니(陶然通大道)
티끌세상 얽매임을 벗어 던졌네(脫下塵網纏)

일암전 승려는 가끔 만나는 사이로 서로의 친분이 먼 것은 아니었다. 포단은 수행하는 승려들이 앉아서 참선하는 방석이다. 포단에서 수행하는 일암전 승려에게 선을 물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그 또한 세속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일암전 승려는 현관을 다 뚫어 버린 수행자이고, 자신은 아직도 미몽에서 졸고 있는 속한(俗漢: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이다. “고요한 마음엔 졸음조차 없으리(心靜更無眠)”라던 선승 일암전 승려는 당대의 문장가 신숙주, 서거정, 성삼문과도 깊이 교유했으며, 이들의 유불교유를 이끈 징검다리는 차와 시, 그리고 술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이승소는 당대의 이름난 학자답게 불교의 교리에도 밝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림 족자에 제하여 승려에게 주다(題花簇贈僧)에서 드러난다. 그 내용은 이렇다.

나무에 한가한 꽃눈의 흰빛 훔쳤는데(一樹閑花偸雪白)
짝을 지어 깃든 아름다운 ()깃엔 검붉은 빛으로 물들었네(雙棲錦羽染猩紅)
곁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림을 보며(傍人盡作丹靑看)
원래 색이 바로 공한 줄을 모르누나(不悟從來色是空)

화족(花簇)은 그림 족자를 말한다. 그와 교유했던 승려에게 준 그림 족자엔 두 쌍의 새가 깃든 그림이 그려져 있던 듯하다. 그림 속의 아름다운 색깔이 원래 공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공은 불교의 도리, 그림이라는 시공간, 그리고 형상을 드러낸 그림 족자는 그저 인연의 결과일 뿐 흩어지면 없어지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그의 통 승려 허곡(通上人虛谷)에는 그가 얼마나 불교에 밝은 유학자인지를 드러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유에 내력은 유()가 먼저이거니(無有從來有有先)
무에 작용함이 천성을 온전히 하는 것이라네(當無作用是天全)
진공은 두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 있거니(眞空遍滿三千界)
십이인연 잡된 망념, 다 사라졌네(妄念消磨十二緣)
마음은 옛 연못 같아 물결조차 일지 않고(心似古潭波不起)
지혜 또한 명경처럼 항상 원만하네(智如明鏡體常圓)
일 없이 계곡에서 한가로이 앉았으니(谷中閑坐無餘事)
물이 허공 머금듯, 오히려 고요하구나(定水含虛更寂然)

, (有無)는 색과 공(, )을 말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에도 색은 즉 공이며 공은 즉 색이라(色卽是空 空卽是色)”고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통 승려는 수행이 높아 십이인연의 망상을 떨쳐낸 수행자란다. 그러기에 그의 경지는 물이 허공 머금듯, 더욱 고요한 듯(定水含虛更寂然)” 적멸(寂滅)의 세계를 이뤘다.

한편 이승소가 진관사 주지와 나눈 교유의 정은 진관사 주지 명신이 부채를 보냈기에(津寬寺住持明信惠扇)에 자세한데 오래도록 사귄 이들의 교유는 유불(儒佛)의 독특한 인연을 드러냈다.

일찍이 선원에서 시로 명성을 들었더니(曾從禪苑聽詩名)
깁부채를 보내 후한 정을 드러냈네(紈扇今將寄厚情)
서로의 깊은 우정, 떨어져서 있는 걸 걱정 말고(莫訝論交違兩地)
삼생에 업 맺었다는 걸 부디 아시게나(須知結業在三生)
한가로이 운림 속에 누운 게 제일 부럽거니(閑閑最羨雲林臥)
애 쓰면서 세상 그물 걸린 것, 매우 부끄럽네(役役多慙世網)
어느 때 방장의 부드러운 말 듣고서(方丈幾時聞軟語)
조계의 물 빌려 나의 티끌 갓끈 씻으려나(借曹溪水濯塵纓)

삼각산 진관사의 사명(寺名)은 원래 신혈사였다. 후일 진관사라 개명된 것은 진관 승려와 대랑원군(大良院君)과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바로 왕태후(경종의 비)가 자신의 소생을 옹립하기 위해 대랑원군을 죽이려 할 때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아 챈 진관이 대랑원군을 숨겨 주어 화를 모면했던 것. 후일 개경으로 돌아가 현종이 된 대랑원군은 1011년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웠던 것이다. 후일 진관사가 146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창된 것은 1470년의 일이다. 아마도 명신 승려는 진관사가 화재로 소실되기 이전에 주지를 지냈던 인물이 아닐까 싶다.

한편 이승소는 명신 승려와는 오랜 숙연이었던 듯하다. 그가 서로의 깊은 우정, 떨어져서 있는 걸 걱정 말고(莫訝論交違兩地)/삼생에 업 맺었다는 걸 부디 아시게나(須知結業在三生)”라고 스스로 밝혔다. 더구나 부채는 단오절에 정 깊은 벗들이 주고받는 선물이다. 무더운 여름을 잘 지내라는 기원을 담은 정표였으니 이 또한 이들의 교유의 정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자 했던 이들의 유불(儒佛) 우정은 이승소의 삼탄집(三灘集)에 자세하다. 신숙주와 함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편찬했던 이승소의 시문에는 조선전기 사대가의 품격과 함께 인간의 소통은 무변(無邊)이어야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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