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수 정신과 전문의

참불선원 인문학강좌정신과 의사가 보는 선정(禪定)

불교에서는 흔히 있는 그대로 보라고 강조했다. 무엇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일까? 호흡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바로 명상의 시작이다. 그리고 괴로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그 순간 선정에 든다. 이를 정신치료에 접목할 순 없을까? 전현수 정신과 전문의는 1024일 서울 참불선원 인문학강좌서 정신과 의사의 체험으로 보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연기수행을 익히면 인간 중심, 현생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죽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면서 이는 곧 우리 스스로 괴로움을 짓지 않게 하는 효과적 정신치료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리=이승희 기자

▲ 전현수 정신과 전문의는… 경남고를 졸업하고 부산대서 의학 학사를 받았다. 한양대 대학원서 의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으며, 1990년부터 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법원행정처장 감사장을 받은 바 있다.

괴로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선정으로 연기법 이해시키면
고통의 원리 알고 받아들여
극단적 선택 단념하는 효과

부처님 가르침 핵심 사성제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인 1985년에 초기불교경전 니까야를 읽고 부처님 가르침이 진리임을 확신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경험하고 공유하고자 한 보편적 진리에 대한 확신을 토대로 불교심리치료 방법을 연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수행에 돌입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에 있어서 큰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에는 3종 외도, 6사 외도 등 어쩔 수 없는 일들에 관한 여러 가지 설들이 성행했습니다. 이들은 잘 아시다시피 전지전능한 신이 세상을 관장한다는 존우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있다는 숙명론’, 세상 모든 일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무인무연론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가만히 사정을 들여다보면 모든 일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움직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아란 개념도 우리 몸과 마음이 모두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서 설하신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사성제(四聖諦)입니다. 부처님은 처음 깨달음을 얻고 난 직후 설법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법도와 반대인 자신의 깨달음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천이 간곡히 설법을 청하자 맘을 바꿉니다. 부처님은 첫 법문서 내가 사성제를 확실히 깨달았기에 모든 이에게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내가 사성제를 몰랐기에 끝없는 고통을 받았다고 말하셨습니다. 부처님과 가장 비슷한 경지에 오른 제자 사리불도 코끼리 발자국을 빌어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코끼리 발자국 안에 들어가듯 사성제에는 모든 법이 다 포함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 사성제를 확실히 알아야 성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수행은 정확히 말해 알고, 보는 것입니다. 수행을 했다면 모든 게 명확히 눈에 보여야 합니다. 사성제도 마찬가지로 직접 알고, 보는 수행입니다. 사성제에는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가 있습니다.

먼저 고성제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우리가 괴로움을 피할 수 없는 존재란 사실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불교 공부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괴롭지 않으면 절대 수행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괴로움에 대해 잘 느끼고 인간으로서 고통을 벗어나겠단 생각을 가져야 비로소 수행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고통에 대한 이해만큼 불교를 이해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통이란 구체적으로 생4고와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고통)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구부득고(求不得苦, 생각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고통)오온성고(五蘊盛苦, 자기중심적 집착서 생기는 고통)를 합한 8고를 말합니다. 고통과 괴로움의 뿌리는 색()()()()()5온입니다. 이는 갈애로부터 형성됩니다.

집성제는 고통의 원인을 이 갈애로 봅니다. 갈애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을 뜻하며 12연기 사슬의 원인이 됩니다. 12연기는 무명(無明)()()명색(名色)육입(六入)()()(, 갈애)()()()노사(老死)의 십이지(十二支)로 이루어진 윤회의 사슬이며 이들 과정을 정확히 관찰하면 집성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수행으로 이 모든 과정을 관찰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선정과 위빠사나를 수행하다보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가 오는데, 무명이 완전히 없어진 이 경지가 멸성제입니다. 도성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의 팔정도를 제시합니다.

선정으로 지혜의 눈 뜨자
부처님 진리를 깨닫기 위한 선정에 대해 들었을 때 처음엔 난 할 수 없어. 선정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든 선정을 경험할 수 있단 말에 꾸준히 시간을 들여 선정을 경험했습니다.

선정의 핵심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겁니다. 마음은 본질상 한 번에 한 곳에 놓입니다. 다른 곳에 놓인 마음을 선정 훈련을 통해 한 곳에 완전히 모으면 선정 상태에 든 겁니다. 부처님은 이 선정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이 보편적 진리인지 연구하시며 수행하셨습니다. 전 지극히 지혜로우신 부처님께선 중생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어떤 것도 권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선정에 임했습니다.

선정을 닦으면 지혜의 눈이 열립니다. 우리 육안으로 본 세상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선정으로 현미경을 선물하신 겁니다. 우리가 선정에 든 상태를 흔히 삼매라고 표현하는데 삼매엔 3종류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순간삼매, 근접삼매, 본삼매로 선정은 본삼매의 경지입니다.

수행을 하면서 스승님께 삼매의 목적이 뭐냐고 물으니 삼매의 목적은 법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라고 답변하시더군요. 선정을 닦은 후 바라본 세상은 물질의 궁극적 형태는 물론 정신의 궁극적 형태까지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생, 미래생도 보고, 궁극적으로 세상이 매번 사라짐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과학으로 따진다면 현대물리학적 관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겁니다. 아주 미세한 세계와 거시적 세계를 통찰할 수 있습니다.

수행지침서 청정도론엔 선정을 닦는 방법으로 40가지를 소개합니다. 저는 그 중 특히 아나빠나사띠(들숨날숨 마음챙김 수행)’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대념처경서 부처님이 호흡 알아차리는 법을 중요하게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일단,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면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쉰다고 압니다. 또 숨을 짧게 들이쉬고 내쉬면 숨을 짧게 들이쉬고 내쉰다고 압니다. 이렇게 숨의 전 과정을 알면서 숨을 들이쉬려고 노력하고, 숨의 전 과정을 알면서 내쉬려고 노력합니다.

이후 미세한 숨이 되게 하면서 숨을 들이쉬려고 노력하고, 미세한 숨이 되게 하면서 내쉬려고 노력합니다. 숨이 잦아들다가 없어진 곳에 빛이 보이게 되는데 그땐 이 빛에 집중합니다. 선정은 이러한 단계를 무수히 밟아 자동으로 집중 상태에 드는 경지를 가리킵니다.

이외 선정을 경험하는 방법으론 몸의 32상 알아차리기, 까시나 수행, 무색계 선정 수행, 4범주, 4보호 명상, 사대수행 등이 있습니다. 물질수행을 위해 사대수행을 하면 물질의 28가지 구성체(구체적 물질 18, 추상적 물질 10)가 보입니다. 처음에 사대수행을 할 땐 지풍 성질을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는 단순히 땅을 말하는 게 아니라 물질의 특성이나 에너지로, 땅에 깃든 단단함, 거침, 부드러움, 매끄러움, 무거움, 가벼움의 6가지 성질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선정에 들어 마음의 눈으로 몸의 32상 전체를 떠올리다 단단함을 떠올리면 정확히 그 성질을 찾아들어 갑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전 지혜의 눈을 믿을 수 있겠단 확신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깔라빠를 보는 단계인데, 깔라빠란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빛 덩어리라도 깔라빠 단위로 깨지면 개개의 깔라빠들로 구별되면서 더 큰 빛이 방출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깔라빠 내에서 또 지수화풍의 성질을 구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상태를 순간삼매로 봅니다.

선정, 존재의 진실 알려
저는 이러한 수행 과정을 거치며 불교정신치료의 핵심으로 연기수행을 떠올렸습니다. 우리 존재는 언제나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들 의지나 생각이란 이유 없이 불쑥 혹은 단독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기수행법으론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맛지마 니까야 38번째 경인 갈애멸진의 긴 경서 말하는 4가지 방법과 사리불 존자가 말한 수행체계 논서 빠띠삼비다막가(무애해도,解道)가 그것들입니다. 파욱 사야도 큰스님은 마지막 방법으로 연기를 식별할 때 5온으로 식별해야 한다고 방법을 말해주었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무명, 갈애, 취착, , 업 등의 이유서 미래의 식, 정신-물질, 6가지 감각장소, 접촉, 느낌 등 결과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불교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궁극적 실재인 정신이 아닌 사람이란 물질로 바라보는 시각이 무명입니다. 불교 공부하는 사람의 삶에 애착을 가지는 갈애서 다음 마음 연결 물질이 나옵니다. 이런 갈애가 계속되면 취착으로 변하며 취착의 업에서 생긴 물질이 을 일으킵니다. 행이 일어나므로 업이 일어나게 돼 여러 가지 마음부수가 결과로 나타납니다. 선정에 들면 이들을 과정마다 식별하고, 또 이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연기수행이 우리 삶의 태도에 주는 영향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뭘 봐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또 모든 것을 현생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며, 죽음을 보는 시각도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고통으로 인해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존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괴로움이 불가피하단 이유를 받아들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선정수행을 통한 정신치료는 우리 스스로 괴로움을 짓지 않게 하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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