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우정 김극성
32. 우정 김극성
  • 박동춘 소장
  • 승인 2016.10.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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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佛香 맡으며 승속 경계 넘나들어

잇단 士禍에도 절제 갖춰
폭군에게 소신 밝힌 충신
승려들과 꾸준히 교유하며
자신 글에 僧俗不二 나타내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는 삶의 기준도 바로 세우기 어려운 법이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생존만이 더욱 또렷한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절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혹 시류에 동조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아니면 의리명분을 중시하여 스스로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몸으로 겪어낸다. 하지만 인과론적인 역사의 패턴은 일시적인 부귀란 결국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일 뿐이고, 의리를 실천한 이는 오래도록 길이 남을 명예를 얻는다는 사실이 언제나 명징(明澄)했다.

우정 김극성(憂亭 金克成, 1474~1540)의 자는 성지(成之). 호는 청라(靑蘿), 우정(憂亭)이라 하였고 우정집(憂亭集)을 남겼던 그는 혼란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잇달아 일어난 사화(士禍)로 인해 국정은 문란했으며 오랑캐의 침입과 왜구의 침탈 또한 이 시대에 상존된 위기였다. 실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 겹친 시기였던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늘 근신과 절제를 통해 높은 벼슬에 올랐던 그이지만 처음 생원시에 급제한 해는 1496년이다. 2년 후인 1498년 별시 문과에 장원한 후 전적(典籍)에 임명되어 종학사회(宗學司誨)를 겸했고, 1500년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가 헌납(獻納)으로 봉직할 때에 폭군 연산군에게 충간(忠諫)했던 일은 그의 성정이 어떠했는지를 드러낸다. 국조인물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산군이 죄가 아닌 것을 가지고 심순문을 죽이고자 하여 군신(群臣)들에게 물었지만 모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공이 대사간(大司諫) 성세순(成世純)에게 이르기를 간관(諫官) 벼슬로써 죄가 없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한갓 몸을 아낄 수는 있겠지만 맡은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니 어찌하리오라고 말하자, 좌우에서 아무 말을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심순문과 같이 죽으려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공은 성세순과 담소(談笑)하며 태연하게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큰일이다. 각각 그 뜻에 맡기는 것이 좋다. 오늘 먼저 죽을 자는 아마도 우리 두 사람일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리오라고 하였다. 드디어 심순문의 억울한 정황을 아뢰었다. 연산군이 듣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죄를 내리지도 않았다.(燕山欲以非罪殺沈順門 問群臣皆莫敢異辭 公謂大司諫成世純曰官以諫爲名 見人死無罪而不言 縱愛身奈負職何 左右默默 或曰必與順門同死無益 公與世純談笑自若曰死生大矣 各任其志可也 今日先死者必吾兩人 豈累他人 遂白順門寃狀 燕山雖不聽 亦不之罪累)

이 글에 따르면 김극성은 폭군이었던 연산군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말할 수 있는 충신이었다. 그러므로 연산군은 그의 말을 수렴(收斂)하지는 않았지만 벌을 주지 않았으며 여러 번 자리를 옮겨 병조정랑(兵曹正郞)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에 임명했던 것이다.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했던 그는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어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임명된다. 그가 관료로서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사실은 유배지에서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바로 그가 권신 김안로에게 미움을 받아 정광필(鄭光弼)과 함께 흥덕(興德)으로 유배되었다가 해배되었을 때 도성의 부노(父老)들이 이마에 손을 대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 선인(善人)을 보게 되니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백성에서 보인 신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게 한다.

한편 그의 인품은 국조인물고풍모(風貌)는 풍후()하고 빼어났으며 그릇이 크고 넓어 조화(調和)를 이루되 세속(世俗)에 흐르지 않았으며, 침착 중후하고 간결 엄정하여 평상시에 몸가짐이 법도가 있었다고 하였고, 그의 품 넓은 포용력을 남의 과오를 발견했을 때는 가려 덮어주기에 힘썼다. 비록 자제에게 실책이 있다하더라도 반드시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으며 사람을 접함에 있어 반드시 지성(至誠)으로 대했다고 하였다. 그가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늘 검소한 삶을 살았던 삶의 일면은 어떤 사람이 그 집에 단확()을 바르도록 권하였지만 사치를 후손에게 전함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차를 좋아하며 수편의 다시(茶詩)를 남겼을 뿐 아니라 승려들과의 격의 없는 교유를 나누었다. 특히 속리산의 숭 승려와 막역한 사이인 듯한데 이는 숭 승려가 보낸 먹을 받고 쓴 숭 승려가 먹을 보냈기에 감사하며(謝崇上人惠墨)’에서 짐작할 수 있다.

누워서 휴식하는 건, 산문의 풍미이니(山門風味臥宜休)

어찌 속인을 위해 편안히 머리를 드는가(豈爲塵容穩擧頭)

늘 꿈속에서 천리 밖에 있을 그대를 생각하지만(千里憶君常入夢)

조각구름 나를 가려 함께 놀지 못하네(片雲遮我不同遊)

이미 업신여겨 비웃음 많은 걸 부끄럽게 여기니(已慙白眼多譏笑)

어찌 높은 벼슬 구하기를 도모할까(何計朱門一品求)

묵객이 깊이 경개하는 벗이 되길 맹세했거니(墨客盟深傾蓋友)

다른 해 서울에서 서로 붙어 다니리(他年京洛也相隨)

숭 승려가 수행했던 속리산을 찾았던 듯하다. 그러기에 숭 승려는 그가 찾아오자 산문의 풍미인 누워서 휴식하는 것을 포기한 채 속인을 위해 머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나눈 살가웠던 우정의 향기는 숭 승려가 보낸 먹에서도 묻어났으리라. 이에 화답하여 늘 꿈속에서 천리 밖에 있을 그대를 생각했던 김극성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사귐은 유불의 경계를 허물고 속내 깊은 뜻을 공유했던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들은 분명 경개의 벗(傾蓋友)이었던 것이다. 경개란 원래 양산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는 수레 위의 일산(日傘)을 말한다. 경개의 벗이란 잠시 만났더라도 오래 만났던 사람처럼 친하다는 의미로 이들의 교유의 깊이를 바로 드러낸 말이다. 이뿐 아니다. 그가 숭 승려에게 보인 속리산 숭 승려에게 보이다(俗離山 示崇上人)라는 시엔 그가 불교의 원리에도 상통했던 관료였음을 드러내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바쁜 홍진 속 나그네 길 분주한데(紅塵客路忙)

아름다운 경치 더듬어 산당에 이르렀네(爲探佳景到山堂)

낭떠러지 위태로운 돌, 떨어질 듯하고(懸崖巨石危將墜)

산꼭대기 나이 든 노송, 넘어지지 않네(絶頂孤松老不)

홍진의 객, 선승에게 법주를 들으니(入塵對禪聞法住)

문을 나와 문장대를 바라보네(出門矯首望文藏)

산중에 좋은 것, 산승이 다 말하지만(山僧說盡山中好)

환하고 기이한 전기, 정말로 상서롭구나(灼灼奇傳信可詳)

그가 찾은 속리산엔 문장대가 있다. 홍진 속에 분분했던 그가 아름다운 산경(山景)을 더듬어 암자에 올랐던 것. 하지만 암자로 가는 길은 낭떠러지 위태로운 돌, 떨어질 듯하고/ 산꼭대기 늙은 노송, 넘어지지 않는숨 막힐 듯 아름다운 승경지였다. 더구나 세속의 미몽(迷夢)을 헤매던 그가 숨을 몰아쉬며 올랐던 산당(山堂)에서 들은던 법주(法住)란 바로 진여(眞如)의 미묘(微妙)한 이치가 반드시 일체 만유 가운데 있다는 소식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와 알고 지냈던 학연이란 승려는 효행이 돈독했던 듯하다. 이런 사실은 승려에게 주다(贈僧)’에서 드러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절에도 드물게 효를 숭상하는 이가 있으니(寺有扁崇孝)

승려의 호는 학연이라(居僧號學然)

배움은 도를 밝히는 것이고(學所以明道)

효는 능히 이치에 이르게 하네(孝能爲格天)

삼천대천세계, 석장을 날리며(飛錫三千界)

40년의 헛됨을 면했구나(逃空四十年)

명을 생각하고 이에 의를 살피니(顧名斯顧義)

어찌 시든 선을 할 수 있으랴(何用作枯禪)

기실 효행은 사람의 기본 도리이다. 효는 출가 승려들에겐 강조되는 윤리관이 아니다. 하지만 학연은 효를 실천했던 승려였다. 효를 중하게 여긴 김극성은 학문은 도를 밝히는 일이며 궁극의 이치에 도달한 삶은 효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학연의 40년 수행이 헛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울러 학연은 명과 이를 살핀 승려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선, 살아있는 선을 실현했던 승려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밖에도 설과 준 승려(雪俊師)에게 남긴 증설준사(贈雪俊師)’에 그가 불교의 이치에 어두웠던 것이 아님을 드러냈는데 5() 중에 제4수와 5수를 살펴보면 이렇다.

탑을 세우는 건, 승려의 지엽적인 일이고(建塔僧之末)

벽곡은 행실 중에 작은 일이라(穀行之小)

두 승려, 법을 전하니(兩僧傳一法)

석종에 이묘를 감췄네(石鐘藏二妙) (4)

 

다른 사람의 반나절 한가함을 훔쳐서(偸他半日閒)

모든 불장을 보았네(得見諸佛場)

더러운 옷 털지 않아도(衣塵未拂去)

텅 빈 하늘, 코로 향기를 맡누나

(空聞鼻觀香) (5)

그의 말처럼 탑을 세우거나 벽곡을 하는 건 지엽적인 일이다. 특히 그에게 법을 전해 준 이는 설 승려와 준 승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한가함을 훔쳐 모든 불장을 보았으며 속진을 떨지 않고도 온 천지에 퍼져있는 불향(佛香)을 맡았으니 그는 승속불이(僧俗不二)의 경계를 보인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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