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집의 빛 - 통도사 영산전 견보탑품도

다보여래와 석가모니불께서 칠보탑 가운데를 반으로 나누어 앉으셨다. 저 장면을 탑으로 구현한 조형이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이다.
통도사 11곳 전각에 550여점 벽화
고색창연한 사찰벽화의 빛을 간직하고 있는 절집이 전국의 곳곳에 분포한다. 양산 통도사와 강진 무위사, 공주 마곡사, 고창 선운사, 양산 신흥사, 파주 보광사, 보성 대원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 중 양산 통도사는 우리나라 사찰벽화의 소재와 모티프를 집대성한 보고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벽화와 수준 높은 벽화를 간직하고 있다. 영산전, 약사전, 대웅전, 용화전, 명부전을 비롯해서 안양암 북극전까지 11곳의 전각에 걸쳐 550여점의 방대한 벽화가 현존한다. 18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장엄한 성보들로, 오래된 것은 300여년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한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사찰벽화의
보고이고, 특히 ‘견보탑품도’는
불교미술사에서 세계사적 가치를
지닌 유일무이한 희소성의 벽화

벽화의 개체 수만큼이나 소재도 풍부하다. 통도사 말사인 신흥사 대광전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사찰벽화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가 통도사 전각에 집대성 돼 있다고 봐도 지나침이 없다. 영산회상도의 모티프는 물론이고, 견보탑품도, 석가모니 삼존도, 약사여래 삼존도, 아미타 내영도, 비로자나불도, 팔상도, 수월관음도, 지장보살 삼존도, 반야용선도, 고승과 나한도, 고사인물도, 금강역사도, 석가모니 행적도, 주악비천도, 서수도, 화조도 등, 심지어는 〈서유기〉와 〈삼국지〉의 내용도 소재로 삼았다. 과히 사찰벽화의 향연이다. 그 중 영산전의 벽화들은 일괄적으로 2011년 보물로 지정 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배경에는 영산전 내부 서쪽 벽면에 장엄한 견보탑품도(見寶塔品圖)의 희소성과 세계 불교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가치에 주요한 바탕이 되었다. 통도사 영산전의 견보탑품도는 무위사 아미타삼존벽화, 선운사 대웅보전 삼불벽화와 함께 우리나라 사찰벽화의 정수이자,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견보탑품도는 불교미술사에서 유일무이한 희소적 가치에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라 그 중요도가 각별하다.

다보사 대웅전에도 견보탑품도 현존
견보탑품도는 〈묘법연화경〉의 제11품 ‘견보탑품’의 경전 내용을 담은 변상도다. 석가모니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무렵, 땅에서 홀연히 솟아오른 큰 보배 탑을 여러 사부대중과 청중들이 경이롭게 예경하는 장면을 모티프로 삼은 벽화다. 그런데 견보탑품의 내용을 담은 벽화는 여러 언론기사, 책, 학술보고서에서 언급하듯이 통도사에만 국내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초 장엄인 통도사 영산전의 견보탑품에 비해 시대가 떨어지는 20세기 초의 작품이 하나 더 존재한다. 나주 다보사 대웅전 좌우 외벽에도 견보탑품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까닭이다. 특히 사찰명도 다보사이니 다보탑 벽화 장엄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그 역시 법화경의 경전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이 탑 옆의 여백에 벽화의 내용을 암시하는 〈법화경〉 제11품 ‘견보탑품’ 문장을 아예 적어서 그 뜻을 명확히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물론 벽화의 규모면이나 붓질의 수준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가지지만, 경전 구절과 변상도를 나란히 함께 한 화면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와 고증의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영산전 견본탑품도 벽화. 〈법화경〉 제11품 ‘견보탑품’의 경전내용을 모티프로 그린 변상도다.
〈법화경〉 ‘견보탑품’의 환상적 서사
법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은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이다. 소설이나 서사극의 플롯처럼 기승전결의 짜임이 매력적이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인도 왕사성의 영축산이다. 석가모니불께서 정좌해 계시고, 1만 2천 사부대중과 8만 보살, 천인, 신중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자 모였다. 그런데 부처님 앞의 허공에 큰 보배탑이 머물러 있다. 어떤 인연으로 땅에서 솟아난 칠보탑이다. 칠보탑은 말 그대로 가지가지 보물과 보배 영락, 보배 방울을 장식하고 있고, 5천의 난간과 천만의 방이 있는 엄청난 크기의 탑이다. 높이가 500유순이고, 폭은 그 절반이다. 1유순을 대략 15km로 잡더라도 실감키 어려운 크기임을 알 수 있다. 현실로 비유하자면 히말라야산맥의 에베레스트산 만한 셈이다. 경전에서는 탑의 꼭대기가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궁에까지 이른다고 밝혔다. 그 웅장함에다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천신은 하늘의 만다라꽃을 비 내리듯 공양하고, 천, 용, 건달바, 아수라 등 천룡팔부(天龍八部)들 역시 온갖 꽃과 향, 음악을 공양 올린다. 탑의 사방에는 그윽한 전단향 향기가 가득한 그야말로 지극한 환타지의 장면이다. 그 때 탑 속에서 부처님의 법화경 설법을 찬탄하는 큰 소리가 들린다. “거룩하시고 거룩하시도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평등한 큰 지혜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시며, 부처님께서 보호하는 〈묘법연화경〉을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석가모니 세존께서 하시는 말씀은 모두 진실이니라.”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 이 미증유의 경이로운 장면에 모두가 놀라워하며 동요한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시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한결같이 그 의문을 갖는 것이다. 그때 대요설이라 불리는 보살마하살이 일체 세간의 청중들의 한결 같은 의심을 알고 부처님께 여쭙는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저 칠보탑이 땅에서 솟아났으며, 또 탑 속에서 저와 같은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까?” 석가모니불께서 그 인연을 말씀하신다.

“이 보배탑 가운데는 여래의 전신이 계신다. 오랜 과거에 동방 천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서 보정(寶淨)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에 부처님이 계셨다. 그 부처님 존명이 다보불(多寶佛)이시다. 다보불께서 보살도를 행할 때 큰 서원을 세웠는데, ‘내가 만일 성불하여 멸도한 후 시방 국토에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법화경을 듣기 위하여 하나의 큰 탑으로 몸을 일으켜 그 앞에 나타나 설법의 참을 증명하고, 거룩하시다고 찬양하리라’고 하셨느니라. 지금 이 다보여래의 탑도 법화경을 들으려고 땅으로부터 솟아나서는 거룩하다고 찬탄하고 있는 것이니라.”

칠보로 된 보배탑은 곧 다보여래탑이고, 법화경이 완전한 진리임을 증명하는 탑임을 밝힌 것이다.

우주를 재편하는 천지창조의 장면
일체대중의 궁금증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처님께 다보여래의 전신을 뵙고 예경 올릴 수 있도록 간청한다. 그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사부대중들에게 탑 속의 다보여래 전신을 나타내 보이려면 시방세계에 흩어져 있는 석가모니불의 분신인 모든 부처님을 이 회중에 설법으로 다 모이게 하셔야 하는 까닭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의 구법(求法)순례 서사만큼이나 재미있고, 극적이다. 부처님께서 선뜻 나서신다. 시방으로 백호의 광명을 놓아 분신불을 영산회의 회중으로 불러 모으신다. 그런데 항하사의 모래알 개수보다 많은 부처님 분신을 다 앉힐 자리가 문제다. 석가모니불께서 그 모든 분신 부처님을 앉게 하려고 8방의 국토를 모두 청정케 하신다. 불국사 석가탑 주위에 있는 팔방 연화좌가 그 청정의 자리를 상징하는 조형적 산물이다. 국토를 청정케 하는 대목이 기막히다. 공간이동을 하시는데, 우주 전체를 재배치하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신다. 쉽게 비유하자면 사단장 순시가 있다고 영내 청소하고, 화분 갖다 놓고, 눈에 거슬리는 거 치우고 하듯이 육도세계를 재편하신다. 사바세계를 청정케 하고,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의 세계는 없어지고, 모든 천과 인간은 다른 공간으로 옮긴 후, 강과 산을 없애고 보배나무 보배꽃, 보배 휘장 등으로 새로이 불국토로 장엄한 것이다. 평행우주로 재편한 놀라운 능력을 보이신 것이다. 새로운 천지창조의 순간이다. 준비는 끝났다.

칠보탑의 상륜부 세부.
이제 시방의 불국토 분신 부처님들이 8방의 보배나무 아래 사자좌에 앉아 부처님께 문안을 드린 후 모두가 보배탑 속의 다보불을 보시기를 간구한다. 서사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석가모니불께서 홀연히 허공 가운데 머무신다. 모두가 일심으로 합장하며 경배를 올린다. 석가모니불께서 마침내 오른손가락으로 칠보탑의 문을 여신다. 드디어 천만억 겁의 오랜 과거에 멸도하신 다보여래께서 석가모니불과 법화경을 찬탄하며 찬란히 나투신다. 하늘에서 숱한 보배꽃이 흩어져 내린다. 그 때 다보불께서 탑 가운데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석가모니불께서 앉으시기를 권하신다. “부처님께서 이 자리에 앉으소서.” 그러자 석가모니불께서 탑 가운데로 가시어 반으로 나눈 자리에 결가부좌 하신다. 석가모니불께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일체대중을 신통력으로 허공 가운데로 이끌어 올리신 후 사자후를 토하신다. “지금이 바로 〈묘법연화경〉을 설할 때 이니라.” 모두가 법화경의 법비에 젖을 때 서사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대단하고 대단한 서사다. 막이 내린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자리를 뜰 수 없는 깊은 감격과 환희지의 여운이 남는다. 통도사 영산전의 견보탑품도 벽화는 그 경전 내용의 클라이막스를 절묘하게 포착했다. 경전 내용을 이렇게 훌륭하게 표현한 벽화는 또 없을 것이다. 경전을 빌려 찬할 뿐이다. 선재 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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