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내한한 세계적 불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현대불교=신성민 기자] 16세의 소녀는 목말랐다. 그토록 소원했던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최연소 입학’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신을 다잡고 싶었다. 그러던 중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법륜 스님의 수련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명상 수행을 하며 접한 불교는 자신이 그렇게 갈급했던 ‘무언가’를 채워줬다.

평소 어머니가 들려주신 ‘천하의 양귀비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늙으면 아무 소용없다. 아름다움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자신이 추구했던 내면의 아름다움, 영혼의 울림을 불교를 통해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행복과 소유, 경쟁 등이 모두 덧없었다. 물러설 수 없었다. 당장 출가해 스님이 되고 싶었다. 수행을 지도했던 유수 스님에게 출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만류했다. “당신의 재능이면 얼마든지 세상에 공헌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은 음악적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소녀는 다시 고민했다. 그러면서 ‘진리를 찾기 위해 음악을 떠나 종교에 귀의한다면 다시 수단에 집착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9월 예정대로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해 건반 앞에 섰다. 그리고 3년 만에 ‘최연소 조기 수석 졸업’을 거머쥔다.

오는 30일 비로자나국제선원
10주년 음악회서 특별 공연

‘영혼의 자유’위해 출가 결심도
음악·영성은 연결… 수행과 같아
“오롯이 자신만의 음악을 할 뿐”

사찰 행사서 첫 공연 “영광이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이를 찾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그래서 불가(佛家)에 귀의하려고 까지 했던 소녀가 바로 세계적 피아니스트 임현정이다. 그녀는 최근 내한해 DMC 페스티벌에서 클래식 공연, 서울 백병원 환우들을 위한 음악회 등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 먼저 선보였던 자신의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 한국어판을 10월초 발간하기도 했다.

이번 내한에서 임 피아니스트는 뜻 깊은 불교행사에도 참여한다. 오는 10월 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공연장에서 열리는 비로자나국제선원(주지 자우) 창건 10주년 음악회서 특별 독주회를 갖기 때문이다. 그녀는 음악회서 밀양아리랑을 테마로 직접 작곡한 ‘아리랑 판타지’와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를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 사찰 행사는 처음 참여해요. 불자들에게 제 연주를 들려드리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기쁩니다. 영광스러운 일이죠.”

비로자나국제선원의 기념행사에 참여한 것은 스위스 법계사 주지 무진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무진 스님이 한국 사찰에서 행사가 있는 데 참여가 가능한지를 물었고, 임 피아니스트는 한번에 ‘오케이’라고 답했다.

“무진 스님 말씀이면 저는 망설임없이 해요. 무진 스님이 칼 같은 성격이시라 칭찬을 잘 안하시는데 유독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자우 스님에 대해서는 늘 칭찬하셔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공연을 수락하고 보니 자우 스님의 사찰이더군요. 인연이라는 게 정말 있나봐요.”

성담 스님의 짓소리와 ‘콜라보’
임 피아니스트는 영성과의 만남을 중요시 한다. 이는 지난 4월 부산에서 사대산인 성담 스님과 함께 한 ‘어둠에서 빛으로’ 공연에서 잘 나타난다. 불교와 클래식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공연에서 그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등을 연주했고, 연주 사이마다 성담 스님이 짓소리를 했다.

임 피아니스트와 성담 스님의 이 같은 ‘콜라보’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둘의 ‘콜라보’는 2015년 더블린 피아노 페스티벌에 초청돼 연주된 바 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지구환경을 위한 ‘COP21 24시간 명상프로젝트’ 행사에도 상연돼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현지 언론은 “동서양의 만남, 음양의 조화” 등 공연에 대해 극찬했다. 

“음악 스승님 중 마예스트로 라비노비치가 계셔요. 이분에게 성담 스님의 짓소리 영상을 보여드렸더니 ‘이것은 큰 보물이다. 외국에도 알려야 한다’고 했어요. 서양음악은 열정, 환희, 슬픔, 기쁨들을 표현한다면 동양음악은 침묵의 자리에서 빛으로 화현되는 영성이 담겨 있습니다. 음과 양의 조화를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피아노는 수행과 같아”
임 피아니스트가 말하는 ‘영성’은 곧 자신의 영혼이 가진 에센스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불성(佛性)’이다. 실제 그녀는 피아노를 “영혼의 에센스를 찾기 위한 사공”이라고 말한다. 베토벤,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악보뿐만 아니라 작곡가의 인생, 사상 등을 미친 듯이 공부하는 것은 그녀에게는 구도와 같다. 우리도 부처님의 생애를 배우고 가르침을 공부하며 부처가 되기 위해 부단히 수행하지 않는가. 

임 피아니스트가 추구하는 음악적 경지도 작곡가들과의 ‘일체됨’이다. 작곡가가 남긴 악보를 해석하고 실행하는 것을 넘어서 작곡가와 하나를 이뤄 자신만의 소리를 내는 것이다.

완벽히 자신만의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왔던 그녀는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세계적 레코드사인 EMI에서 데뷔음반으로 발매했고, 이를 통해 미국 빌보드 차트와 아이튠즈 클래식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피아니스트의 목표는 성공에 맞춰져 있지 않다. 오로지 지금 여기, 어떠한 걸림이 없이 자신만의 연주를 하는 것이다.  

“음악과 영성은 연결돼 있어요. 예를 들어 베토벤을 공부하다보면 그의 가장 깊은 내면을 만납니다. 여기서 더욱 몰입하면 그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음악으로 하나됨을 느낍니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하던 상관없어요. 오로지 자신만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해요. 바로 내가 추구하는 절대적 음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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