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아직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인연들을 위해 배를 타고 사고해역 근처로 나가 법회를 본 날이다. 지금껏 기억에 또 기억을 더했지만, 지금부터는 하나씩 덜어내 본다. ‘기억의 무게로 인해 물속에 잠긴 배가 뜨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이후, 수많은 이들의 무지와 탐욕으로 가라앉은 배이기에 조속히 해결되길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도 혹시나 욕심으로 바뀌어 무게를 더하지는 않을까 염려됐다. 사실 이런 마음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실이 물위로 떠오를 것이다.

사고해역에서 열리는 해상법회는 처음이다. 인양작업에 관심과 힘이 되기 위해 팽목항에서 스무 명 정도 탈 수 있는 배를 빌렸다. 처음엔 더 많은 이들이 타려했지만, “규정입니다라는 해경의 말을 듣고 나머지 인원은 마음만 싣기로 했다. ‘그래, 세월호도 그렇게 규정대로 했으면 좋았으련만.’

뱃고동소리와 함께 수많은 물음을 싣고, 깊은 침묵으로 잠자고 있는 세월호의 대답을 들으러 일렁이는 파도를 넘었다. 배 한편에 실린 그물코에는 아직 수습되지 못한 얼굴들이 밟힌다.

1시간쯤 달려왔을까? 드디어 저만치 세월호를 인양하려는 바지선이 보였다. 기도소리가 파도소리보다 커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물이 맑으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물빛은 뿌옇기만 하다. ‘여기 이쯤이겠지.’

▲ 그림 박구원.

선장님은 더 이상 갈 수 없단다. 배가 멈추자 세상이 고요해졌다.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멈춘 상태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기에 주변에 가득한 슬픔이 눈에 닿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다들 숙연해졌다. 눈을 감아 조속하고 원만한 인양을 위해 마음을 모았다. 바다가 쓰레기와 죽은 것들을 육지로 보내는 것처럼 거짓과 위선들도 이제 돌려보낼 때가 왔다. 썩고 부패한 것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호는 아직 죽지 않았기에 그렇게 돌려보내지 않았는가보다. 2년이 넘게 그 차갑고 거친 물속에서도 탐욕의 불이 식지 않았다. 거대한 욕망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렇게 북소리에 맞춰 부르기만 하면 대답할 것 같았고 해결해주실 거라 믿었다. 파도가 거칠수록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세월호까지 닿을 기세로 힘차게! 하지만 대답이 없다. 망망대해에 오직 부르는 이만 있을 뿐!

각자 부르는 이와 한참을 마주하니 파도가 잔잔해진다. 이렇게 파도가 잦아지고 맑아져서 인양이 원만하게 마무리되길 간절히 두 손 모아 기원했다. 그러려면 우리 먼저 물을 흐리지 말아야 되겠다. 다시 바람이 분다. ‘그래 이제 나가자.’

검은 바다는 우리들을 먼저 육지로 돌려보내려 하는 것 같았다. 세월호 인양선 주위를 감싸며 뱃머리를 돌린다. 기도 내내 대답하시느라 지친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희망을 맞을 준비하러 팽목항으로 돌아갔다.

만일 큰 물속에 떠내려가게 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닿게 되느니라.”(관세음보살보문품 )

2014416일은 수요일이었다. 그 이후 나는 수요일이 될 때마다 오늘은 욕심의 불을 지혜의 물로 끄기 위한 날이라고 스스로 정해두었다. 이제는 진짜 愁了日(수요일: 근심을 마치는 날)을 맞고 싶다. 서둘러 준비하자. 우리는 세월호의 민낯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사실 그 욕망들도 우리들이 만든 것임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기억하자. 잊지 말자대신 오늘은 욕망과 진실사이에서 이렇게 외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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