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칠장사 오불회괘불탱

칠장사 오불회괘불탱. 삼베에 채색. 불교우주관을 바탕으로 상,중,하 삼단 구도로 법계우주를 표현했다.
법신-보신-화신은 삼위일체불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三身佛)의 세계관은 대승불교시대의 산물이다. 선종의 십불명(十佛名)에서 밝힌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로 연화장세계의 우주법계를 구현했다.

현존하는 오불회괘불탱은 3점뿐
보신 노사나불은 보관 쓴 보살형
중생-보살-부처의 수직상승 구도
평민 시주로 왕실발원 화풍 계승

법신(法身)은 우주만유의 근본원리이고, 보신(報身)은 근본기운이 생명력에 미치는 시방삼세의 보편적인 양상, 화신(化身)은 특정한 시공간에 중생구제를 위해 역사적으로 나투신 불신이다. 만유의 실상은 연기법에 의한 삼신불의 세계관으로 화엄의 연화장세계를 이룬다. 삼신불은 중생에 대한 자비력으로 하나의 몸이고, 일체 중생은 스스로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 곧 여래장으로 법신과 일체가 된다. 그것이 화엄경 법성게에서 말하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화엄세계일 것이다. 그래서 이 삼신불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불교장엄의 근본적인 바탕이자 원형질이 될 수 밖에 없다. 불상조형에서, 혹은 후불탱, 괘불탱 등의 불화에서 한 공간에 수용하든지, 아니면 특정 전각에 따로 독립해서 봉안하는 차이를 가질 뿐이다. 삼신불은 삼위일체불이니 한 분만으로도 세 분 모두를 포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점은 보신불과 화신의 다양한 변화신이다. 법신은 광명편조의 진리(=법) 그 자체로서 진리의 인격화다. 보신은 십바라밀 수행과 대원의 실천으로 이상화 된, 완전하고도 원만한 부처님의 몸이다. 대원과 실천적 수행에 따라 다양한 몸으로 나투신다. 48대원의 아미타부처님과 12대원의 약사여래가 대표적인 보신불이다. 보신불은 진리의 자내증으로 삼매에 계신 자수용신(自受用身)과 중생구제와 교화의 대원을 실천하는 타력신앙의 타수용신(他受用身)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노사나불이 자수용신이라면,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는 타수용신이라 할 수 있다. 즉 보신불에는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이 통일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불은 무상정등각을 증득해서 법신 비로자나불과 일체가 된 까닭에 노사나불 대신 석가모니불을 모셔, 아미타여래, 약사여래와 함께 조선시대 삼불(三佛) 도상의 전형으로 발전해나갔다. 법신-보신-화신의 삼신불 구도가 수직적, 심층적이라면, 아미타여래-석가모니불-약사여래의 삼불 구도는 수평적이며 분화적인 개념에 가깝다. 삼신불과 삼불을 한 화면에 모시면 석가모니불은 중첩적으로 표현되어 오불회도의 개념이 성립한다. 거기에다 대자대비의 화신인 관음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과 성문의 수행자들, 수호신중들, 여래장을 지닌 일체중생을 한 화면에 구성하면 삼천대천의 불국토이자 통불교 형식의 거대한 법계우주로 현현한다. 안성 칠장사 오불회괘불탱(1628년)이 그 희유의 불국토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용이 휘감고 있는 세상의 중심 수미산과 도솔천궁 세부.
법형비구 한 사람이 그린 불화
현존하는 오불회 괘불탱은 세 점으로 알려진다. 일본 주린지(十輪寺) 소장 오불회도(조선전기), 안성 칠장사 오불회괘불탱, 영주 부석사 오불회괘불탱(1745년) 등의 셋이다.

괘불탱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독창적인 대형불화이다. 현존하는 90여점의 괘불탱 대부분이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잇따른 전쟁과 살육의 시대상황의 종교적 산물로 나타난 것이다. 전쟁과 기근 등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의 피해는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 수륙재 등 야외 의식불교가 성행하고, 그에 따라 대형 괘불탱 조성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신앙형태와 불보살의 세계에 따라 세분화 되었던 건축과 불화는 하나의 중심 불전, 하나의 화폭에 봉안하는 통합적인 양식으로 빈번히 전개했다. 오불회괘불탱은 그러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종교회화의 부응으로 대두 되었다. 괘불탱에는 망자에 대한 천도의식과 극락정토 왕생발원, 현세구복의 마음작용이 담긴, 한 시대상황의 깊은 고민이 투영되어 있다.

칠장사 오불회괘불탱은 정묘호란(1627) 1년 후에 화원 법형(法泂)비구 한 사람이 두 달에 걸쳐 그린 불화다. 세로 656cm, 가로 404cm 크기의 삼베 위에 채색한 괘불이다. 화면의 구도는 오색 구름을 이용해서 상, 중, 하 삼단으로 나눠 조성했다. 화면의 2/3를 차지하는 상단은 오불의 부처님 세계다. 일본 주린지 소장본과 부석사 오불회괘불이 수직과 수평의 구도를 취하는데 반해 칠장사 괘불은 두 행의 수평구도를 경영하고 있다. 상단의 윗줄은 화신 석가모니불-법신 비로자나불-보신 노사나불의 삼신불을 배치하고, 아랫줄에는 아미타여래-약사여래를 모셨다.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는 각각 대세지보살-관세음보살, 일광보살-월광보살을 좌우 협시보살로 배치해서 삼존불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불전 건물로 비유하자면 삼신불의 대적광전과 아미타여래-석가모니불-약사여래의 삼불을 모신 대웅보전을 한 곳에 경영한 것과 다름없다.

각 부처님의 세계는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이다.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은 그리스도교의 성령, 성부, 성자의 삼위일체와 마찬가지로 삼신즉일신관(三身卽一身觀)으로 하나의 몸인 까닭이다. 상단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보신 노사나불의 장엄이다. 설법인의 수인을 취한 노사나불은 부처의 위계임에도 보관을 쓴 보살의 형태로 화려하게 장엄했다. 수덕사나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에서도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 여래를 보살로 표현한 이유가 의문으로 남는다.

원만보신 노사나불. 부처의 위계임에도 보살로 표현했다.

세상의 중심 수미산과 도솔천궁 표현
중단은 보살의 세계를 펼쳐 놓았다. 지장보살-미륵보살-관세음보살의 구도로 각각 독립된 병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보살이면서 부처이신 미륵보살의 경우 존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솔천궁의 건축 상징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기(畵記)에서 괘불탱의 도상적 성격을 미륵하생도의 ‘용화회’라 밝히고 있는 점을 감안해보면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도솔천궁의 바로 위 보살 한 분이 미륵보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용이 휘감아 신성하게 수호하고 있는 수미산 정상 도솔천의 표현은 대단히 희귀하고 독창적이어서 주목을 끈다.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장면은 그 자체가 형식적 완결성을 갖춘 수월관음도, 지장탱에 가깝다. 하나의 화폭에 대적광전의 삼신불후불탱, 대웅전의 삼존불후불탱, 원통전의 수월관음도, 명부전의 지장보살탱화를 담고 있는 불보살의 만다라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맨 아래 하단은 24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육도중생계다. 면류관을 쓴 왕과 왕비를 비롯해서 고관, 평민, 아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무릎을 꿇고 합장하거나 공양물을 올리는 모습이다. 왕과 왕비의 모습은 최상단의 오색광명의 서기가 뻗치는 공간에서도 등장한다. 왕실발원의 괘불제작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칠장사를 영창대군의 원혼을 달래는 원찰로 삼은 점도 왕실발원을 뒷받침 한다. 그런데 화기의 시주질 명단에는 평민층 부부들의 시주가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어 단정 짓기 어렵다. 화기에는 평민 서른 한 가정, 혹은 개인 명단이 등장한다. 고려시대 시주자의 중심이 왕족과 귀족 중심이라면,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는 상공업의 발달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시주의 중심이 평민층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감안 대상이다. 그럼에도 금니로 쓴 화기 등을 고려할 때 왕실발원의 화풍이 계승되고 있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화기에 13가지 색채안료 목록
화기에 나타나는 시주의 내용도 특별하다. 삼베 포를 비롯해서 공양, 황금, 장식품인 둥근 거울(원경) 등속이 목록에 올라 있다. 시주목록에서 가장 특별한 대목은 13가지 색채안료와 아교다. 안료는 주홍, 대청, 중청, 수토황, 당하엽, 연지, 진분, 삼록, 황단 등으로 다양하다. 여러 괘불탱 화기의 시주질 안료 목록 중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가 등장하는 사례다. 그 목록은 전통색채를 연구하고 복원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안료에 점성을 부여해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 아교의 시주도 눈길을 끈다. 시주로 올린 아교는 쇠가죽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물고기 부레로 만든 어교(魚膠)다. 이 세세한 시주목록은 당시 시대상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한 시대의 거울상이기도 하다.

화기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當來龍華會中隨喜等盡同受記者也(미래의 용화회에 함께 기뻐하면서 모두 수기를 받을 것이다.)” 오불회괘불탱은 그 화기의 발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중심으로 〈구사론〉에서 정립한 불교우주관을 표현하고 있다. 용화회의 미륵보살 대신 수미산 정상의 도솔천궁을 그려 넣은 뜻도 그제서야 풀린다.

전체적으로는 지상 중생계의 욕계, 보살의 색계, 부처의 무색계로 이어지는 수직구도로 화엄의 우주법계를 짜임새와 공간감 있게 거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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