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요? 필요한 건 情이에요”
“돈이요? 필요한 건 情이에요”
  • 윤호섭 기자
  • 승인 2016.10.10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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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 아래 작은 통일 〈1〉탈북민불자가 전하는 소박한 바람

生死 경계 목숨걸고 넘어
우여곡절 끝 국내 안착
불교 만나 사회적응 원활

부처님께 절 올리다보면
이유 없이 눈물 쏟아져
탈북민 편견 걱정 가득

그래, 저기만 건너면 된다.’

고작 강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다리가 달달 떨렸다. 두만강. 남한에서는 그저 고향을 그리는 노랫말의 일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20년 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소녀였던 나에게 눈앞의 두만강은 생사(生死)의 경계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 벽을 넘고자 마음먹고 왔지만 문득 강을 건너다 죽어나간 이들의 소식이 떠올라 두려워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두려움이라는 족쇄는 점차 발목을 조여 왔다.

에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족쇄가 다 채워지기 전에 냅다 뛰었다. 어느 초소의 총부리가 등을 겨누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건 무의미했다.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이다. 신발이 벗겨지고 강 속 돌부리에 발가락을 찧었을 땐 정신이 아득했다. 그래도 살려는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둔치에 손이 닿았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둔치에 올라 황망한 가슴을 쓸어내리자 발가락에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

아바이. 내레 피난 왔시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가 생각났다. 가슴팍에 훈장 달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당에 모든 걸 바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돌아온 건 역적질을 한 반역자라는 멍에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떠나라고 했다. 먼발치서 눈물 흘리며 아버지의 공개처형식을 지켜본 뒤 함경도 꼭대기를 넘었다.

나는 두만강 연선도로를 지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무작정 달렸다. 다행히 택시기사가 조선족이었다. 내 행색을 본 기사는 이해한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강물에 젖은 돈을 건네고 내린 곳은 한 여관이었다. 그곳에서 며칠 묵고 연길 시가지로 나갔다. 연길 어느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인근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기에 교회를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한 남자와 친해져 동거를 하게 됐다.

10년쯤 지났을까. 애는 낳지 않았지만 동거남과 이별했다. 불법월경자인 나의 신분적 한계는 분명했고, 그 남자 역시 순탄치 못한 생활에 지쳤다. 그때부터 나는 한국에 가기 위해 준비했다. 한국에 들어간 다른 탈북자들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선망했다. 1년쯤 지나 브로커를 만나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힘들게 모은 돈을 건네주고 태국을 거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 그림 강병호.

 

탈북자들의 사회적응을 돕는 하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삶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곳으로 오는구나하는 마음도 들었다. 딱히 종교가 있던 건 아니지만 나는 이곳에서 불교를 택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중국에서 커다란 절에 갔을 때 느꼈던 웅장함 때문이었다.

매주 일요일, 하나원 법당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가 그동안 먹어보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과 생필품을 항상 선물로 가져다줬다.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의심이 들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걸 주는 걸까? 가진 게 정말 많은 사람들인가?’

그때만 해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것을 남에게 나눠주다니. 얼마나 많은 걸 가져야 가능한 일인지 궁금했다.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한 봉사자에게 이 같은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내 옹졸함을 무너뜨리는 철퇴가 됐다.

많이 가져야만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은 돈에 집착하기 때문에 드는 거예요. 그런 생각에 매달리면 나중에 충분히 가졌다고 느끼기도 어렵고, 그렇게 느낀다고 해도 나눌 마음이 들지 않을 겁니다. 지금 내가 나눌 수 있는 걸 나누는 일, 그게 보시고 불교의 첫걸음이죠.”

생각이 많아지는 대답이었다. 나는 과연 이걸 받아도 되는 존재인지 궁금해졌지만 더 물어보진 않았다.

하나원에 몇 달 머물면서 나는 불교를 통해 가정체험과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사회적응의 일환이기도 한 가정체험은 천안에 거주하는 어느 불자 노부부댁에서 했다.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대인관계가 그리 넓지 않았던 나는 모르는 사람과의 첫 대면에 큰 불편을 느끼는 편이다. 그런데 이분들에겐 그런 불편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요?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네요. 인연 따라 이곳까지 왔으니 이제는 쉬어요.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말이에요.”

가정체험 첫날밤을 어르신들과 눈물로 지새웠다. 가슴 속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 자리,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들만 있다면 무척 행복하겠다는 꿈을 꿔봤다. 나는 이 집에서 한국문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이는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템플스테이 때는 가정체험과는 또 다른 배움이 있었다. 바로 하나원에서 봉사자들의 친절을 접하며 가졌던 궁금증에 대한 답이었다. 108배를 하고 포행을 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이 차분해질 즘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저는 요즘 받고만 삽니다. 제가 받아도 되는 사람일까요?”

스님은 말없이 빙긋 웃었다. 그리곤 몇 걸음 더 걸었을 때 스님이 입을 열었다.

받아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 어리석은 고민만 하고 있었다.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더 나은 길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받은 만큼 잘 일어서 나 역시도 나누겠다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12일간의 템플스테이는 온갖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소중한 기회였다.

하나원을 수료한 뒤 나는 빠른 속도로 한국사회에 적응했다. 컴퓨터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구인구직사이트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면접을 통과했을 때는 세상 무엇보다 뿌듯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자 생활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거에 했던 다짐을 하나씩 지켜나갔다.

하나원 법당을 찾아 봉사하는 분들에게 내가 번 돈의 일부를 전해드렸다. 그 분들은 극구 사양했지만 나는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간절히 말했다. 그것이 나를 더 당당하게 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 잡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얼마 뒤, 그 돈으로 떡을 해서 하나원 법당에 잘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즐거웠다. 그 이후로는 사찰에 보시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잘 생활하다가도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은 견뎌내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걸 느꼈다. 하나원에서처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할 사람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그저 하나원에 있을 때 인연이 닿은 몇몇 분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얼굴을 보는 정도다.

그래서 외롭고 마음이 복잡해질 땐 집에서 가까운 사찰을 찾아갔다.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다보면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마음 터놓을 곳 없어 법당에 홀로 앉아있으면 한결 편안해졌다. 다만 그 절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일은 만들지 않았다. 탈북민이라는 굴레가 어떤 편견으로 작용할지 두려웠던 것이다. 부처님의 절절한 가르침도 배우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절이 있을까?

내가 탈북민이란 걸 새롭게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생활하는데 돈이 많이 부족하지 않아요?”

물론 나를 위한 걱정이란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바라는 건 돈이 아니다. 어차피 재정적 자립은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응이 아닌 의존밖에 되지 않으니까. 다만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 즉 사람냄새를 맡는 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로 함께 벽을 낮출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북민불자들은 그 장소가 법당이길 서원한다.

 

위 내용은 탈북민불자들과 나눈 대화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성명과 나이 등은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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