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일 위원의 佛母列傳 - 운혜(雲惠) 스님

1650년 제작된 전남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17세기 중반에 불교 조각계를 대표하는 조각승은 승일 스님, 무염 스님, 계훈 스님, 명준 스님, 사인 스님 등으로 30여명에 이른다. 이 시기에 많은 조각승이 활동한 것은 그만큼 사찰 내에 전각의 건립과 중건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승들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스승을 따라 불상 제작을 배운 후, 스승의 계보를 잇는 스님들로, 대표적인 조각승이 운혜(雲惠, 雲慧, 云惠) 스님이다.

조각승 영철 스님과 선후배 관계
공주 마곡사 거주, 전국을 무대로 활동
判事와 大禪師의 지위에 오름
순천 송광사 사적비 건립에 참여

운혜 스님은 수연 스님과 불상을 같이 제작한 영철 스님과 활동하는데, 수연 스님과 직접 불상을 작업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1650년대에 충남 공주 마곡사에 주지를 맡은 것으로 보아서 1640년대 활동이 밝혀진다면 수연 스님과 관련성이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까지 운혜 스님이 수화승으로 참여한 불상은 7건 40여 점이 조사되었다.

운혜(雲惠) 스님은 생몰년이라든가, 그가 승려장인(僧侶匠人)이 된 배경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스님이 제작한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發願文)과 사찰의 연혁을 적은 사적비(寺蹟碑)를 통하여 활동시기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운혜 스님은 1649년에 영철 스님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황해도 배천 강서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현재 서울 화계사 봉안) 제작에 참여한 12명 가운데 4번째로 적혀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1650년에 수화승으로 전남 해남 서동사 대웅전 목조석가삼세불좌상을 제작하였고, 1650년에서 1659년 사이에 전판사(前判事) 승연(勝衍) 스님, 운익(雲益) 스님, 운일(雲日) 스님 등과 번갈아 가며 공주 마곡사 주지를 맡았으며, 박야외(朴野外) 거사(居士)와 각순(覺淳) 스님이 재산을 시주하여 탁일(卓一) 스님 등과 함께 묘수장사(竗手匠師)로 추대되어 승당(僧堂)을 건립하였다.

1667년경 제작된 전남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좌상.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이후 운혜 스님은 수화승으로 1661년에 전남 장성 백양사 약사암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아미타불만 제주 월계사 봉안), 1665년에 전남 곡성 도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을, 1667년에 전남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을, 1672년에 전남 순천 동화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을, 1675년에 고흥 능가사 불상(조성발원문만 존재)을 제작하였다. 당시 능가사 불상 조성은 중창주인 벽천정현(碧川正玄) 스님이 공주 출신(公州錦江子)이라 그 인연으로 운혜 스님이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전남 고흥까지 내려와 불상을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운혜 스님은 1678년에 영철 스님 등과 전남 순천 송광사 사적비 건립에 후원인으로 참여하였다. 스님이 만든 마지막 불상은 1680년에 도림사 목조보살좌상이다.

운혜 스님은 1654년에 마곡사에 조성된 범종의 명문에 산인(山人)으로 언급되어 충남 공주 태화산(泰華山)에 거주한 스님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675년에 고흥 능가사 불상을 제작할 때, 대선사(大禪師)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운혜 스님은 1620년 이전에 태어나 1640년을 전후하여 불상 제작의 수련기를 거친 후, 1650년대 후반에 충청 공주 마곡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전라남도 해남, 화순, 고흥, 곡성 등의 사찰에 불상을 조성하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운혜 스님의 활동 시기는 1649년부터 1680년까지 약 30여 년 동안으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불상을 조성하였다. 운혜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태전(太顚, -1600-1615-) → 수연(守衍, -1615-1639-) → 영철(靈哲, -1623-1649-), 운혜(雲惠, -1649-1680-), 운익(雲益, -1650-1684-), 승균(勝鈞, -1672-1675-), 경림(敬琳, -1665-1680-) → 인성(印性, -1660-1747-), 삼안(三眼, -1678-1740-), 묘경(妙瓊, -1665-1672-) 등으로 이어진다.

운혜 스님이 만든 대표적인 불상은 전남 해남 화원면 사동(寺洞) 마을에 있는 서동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삼세불좌상이다. 불상은 높이 120㎝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배치된 목조삼세불좌상이다.
머리는 뾰족한 나발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로 표현되고, 육계 밑에는 반원형의 긴 중간계주와 원통형의 낮은 정상계주가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갸름하고, 이목구비(耳目口鼻)에서 풍기는 인상은 부드럽고, 목에 자연스럽게 삼도가 새겨져 있다. 본존의 착의 방식은 대의 안쪽에 편삼(扁衫)을 입지 않고, 양 협시불은 편삼을 입어 다르게 나타난다. 본존의 오른쪽 어깨의 대의자락은 겨드랑이가 보일 정도로 짧게 늘어져 세 번 접히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수직으로 내려와 하반신을 덮어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착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는 1650년에 운혜 스님을 수화승으로 운익(雲益) 스님, 보인(寶印) 스님, 학헌(學軒) 스님, 민준(敏俊) 스님, 의상(義尙) 스님, 의호(義浩) 스님, 정률(淨律) 스님, 묘현(妙玄) 스님 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운혜 스님은 1667년경에 화순 쌍봉사 명부전(冥府殿)에 불상을 조성하였다. 이 불상은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배치하고, 향 좌측에 세 분의 대왕과 판관을, 향 우측에 일곱 분의 대왕과 사자 등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높이가 104㎝로, 민머리의 성문비구형이다.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여 얼굴과 앉은키는 대략 1:3.2의 신체비례를 보인다. 이는 고려와 조선전기에 제작된 불좌상(佛坐像)이 1:3.5 이상의 신체비례를 가진 것에 비해 조선후기 불상이 얼굴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형의 얼굴에 이목구비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상을 따르지만, 턱이 약간 뾰족하고, 인중이 다른 불상에 비하여 넓으며, 목에 난 삼도(三道)가 거의 수평으로 처리되어 있다. 따로 제작된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바깥에 걸친 두꺼운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서 가슴까지 내려와 두 겹 접힌 후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의 대의는 세 겹으로 접혀 수직으로 내려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펼쳐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는 중앙에 두께가 일정한 주름을 중심으로 파도가 출렁이듯 펼쳐져 있고, 반대쪽 주름은 한 가닥 넓게 펼쳐져 있다. 특히, 하반신의 대의 처리에서 가장 큰 특징은 복부에서 가운데로 흘러내린 주름의 끝이 부메랑같이 표현된 점이다. 이 하반신의 대의 자락 표현은 조선후기 다른 조각승이 제작한 불상에서 볼 수 없는 요소이다. 이러한 특징은 20년 정도 늦게 활동한 색난(色難, 色蘭) 스님이 1694년 제작한 화순 쌍봉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의 하반신을 덮은 대의가 잔잔한 물결처럼 곡선을 그리는 것과 비교된다. 또한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 표현에서도, 색난 스님이 제작한 불상은 조선후기 전형적인 불상과 마찬가지로 앙련형(仰蓮形)의 승각기 상단을 가진 것에 비하여 운혜 스님의 불상에서는 둥근 상단에 양쪽 끝이 날카롭게 접힌 도끼날 같은 부형(斧形)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외에도 목조지장보살좌상의 왼쪽 측면에 보이는 대의자락이 두 가닥 수직으로 내려오다 Y자로 접힌 표현은 특이하다.

1650년에 제작한 해남 서동사 목조여래좌상과 1667년에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을 비교하면, 복부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던 가운데 대의자락이 옆으로 뻗어 복주머니 같고, 협시불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와 목조약사여래좌상의 하반신 대의 처리도 차이가 있다. 이는 1667년에 만들어진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의 하반신을 덮은 대의처리의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운혜가 제작한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인 대의 끝단이 부메랑같이 표현된 주름을 중심으로 파도가 출렁이듯 접혀있는 표현의 초기 형태이다. 또한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상단을 한 번 말아 도톰한 앙련형으로 표현되었는데, 17년 뒤에 제작한 1667년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좌상에서는 어깨를 덮은 대의 간격이 좁아지고, 승각기 상단의 표현이 도끼 날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불상의 왼쪽 측면에 대의자락이 두 가닥 수직으로 내려오다 Y자를 이루는 표현은 이후에도 볼 수 있다.

1672년 전남 순천 동화사 목조지장보살좌상.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운혜 스님과 같이 활동한 경림 스님은 1678년에 전남 강진 백련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삼존좌상(목포 달성사 봉안) 조성 시 수화승으로 활동하고, 운혜 스님이 제작한 1680년 도림사 목조협시보살좌상과 1678년 강진 백련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의 세부 형태가 비슷한 것은 운혜 스님이 1680년까지 살았지만, 이 시기 실제적인 불상 조성은 경림 스님이 주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운혜 스님과 경림 스님이 제작한 불상의 시기별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는 방형의 얼굴에 턱이 약간 뾰족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강한 인상을 주며, 여래상은 이마에 넓고 길쭉한 타원형의 계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승각기 상단의 주름은 처음에 조선후기 불상의 일반형인 앙련형에서 1665년경에 도끼날 같은 부형(斧形)으로 바뀌고, 다시 경림에 이르러서 상단의 중앙 주름이 원통형으로 바뀌고 뾰족하게 변하고 있다. 셋째는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이 가운데 주름의 끝이 부메랑 같이 표현되고, 옆으로 두 번 접힌 주름이 이후에 한 번으로 줄어든다. 넷째는 불상의 왼쪽 측면에 늘어진 대의 주름은 수직으로 두 가닥 내려오다 Y자로 접힌 표현이 운혜와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이 제작한 불상들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요소이다.
1650년 제작된 전남 해남 서동사 목조불상 발견 조성발원문 일부.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운혜 스님과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이 17세기 후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년명(無紀年銘) 불상은 전남 강진 백련사 명부전 불상, 충남 예산 향천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전남 순천 정혜사 지장전 불상 등 호남 지역에 주로 산재하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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