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종 통리원장 회정 정사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전 세계 50개국 250개 불교단체로 구성된 가장 큰 불교협의체인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WFB) 제 28차 서울 총회가 대한불교진각종 주최로 9월 26∼30일 서울서 열리고 있다. 주제는 진각종 수행 모토인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이다.
WFB는 불교 종파를 초월해 국제사회에서의 불교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1950년 스리랑카에서 창립됐으며, 2년마다 총회를 개최해 서로 우의를 다지며 각종 현안을 논의해왔다. WFB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1990년, 2012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대회를 이끌고 있는 공동대회장인 제 29대 진각종 통리원장 회정 정사는 “부처님 가르침이 사찰과 경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있다는 진각종 개종 이념이 이번 총회를 통해 널리 홍포되길 바란다”며 “아울러 북한 핵실험 등으로 갈등의 최고조에 직면한 한반도 더 나아가 세계평화는 물론 한국불교 세계화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10월 31일 제 29대 진각종 통리원장 임기를 마치는 회정 정사에게 그동안의 소회와 진각종의 미래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해외포교의 닻을 올리다

현지인 교육후 재파견 성공 비결
네팔, 신불교운동 현지서 큰 호응
스리랑카, 법인 설립 등 17년간 포교


진각종 대사회화 운동에 진력

1990년 청정국토 가꾸기 운동 시발점
남북통일 위한 대북지원 사업도 펼쳐
사회복지법인설립 후 50여곳 시설 운영

▲제 27대와 29대 원장을 지냈는데, 27대를 전반기로 29대를 후반기로 나눠봤을 때 각각의 성과를 평하신다면요?

-27대는 진각문화전승원을 시작하겠단 발원을 한 시기입니다. 2005년부터 원을 세워 2007년 첫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대한불교진각문화전승원과 진각복지센터를 완성한 것이 전반기 의 대표적 성과입니다. 이후 4년을 쉬고 29대 후반기엔 국제불교문화체험관과 교육관 공사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간의 조경 공사와 뒷마무리 작업만 남은 상태입니다. 통리원장 두 번의 재임동안 진각종 총인원 불사와 성역불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어 기쁩니다.

▲외형적인 불사의 성과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종단 내적인 성과는 어떤가요?

-진각종 3대 종책이 포교, 교육, 복지입니다. 27대 때 종책 관련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포교와 관련해선 국내 교도들의 신행을 더욱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교육적으론 대학교, 중·고등학교, 어린이집 및 유치원 교육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복지는 진각복지재단을 통해 청소년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후반기인 29대 때엔 제가 항상 강조하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기 위해 진력했습니다. 가령 ‘한국밀교문화총람’을 편찬하는 등 월곡동 총인원을 한국밀교문화 집대성지로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해외 포교도 일찍부터 관심 갖고 추진하신걸로 아는데 이에 대한 성과도 설명해 주세요.

-전반기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의 해외 포교였다면 후반기엔 활성화에 주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리랑카와 네팔 포교 사례가 있습니다. 처음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직접 포교를 했는데 성과가 미미했습니다. 그러다 추천받은 현지인들이 중심이 돼 활동하니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은 셈이죠. 현지인들을 진각종 종립대학인 위덕대서 학부와 대학원, 박사 과정까지 밟게 후원한 뒤 각각 본국으로 다시 보내 스리랑카와 네팔 포교소를 설립하게 했습니다. 현재 이들이 활발한 활동중입니다. 특히 10월 중순에는 네팔 포교 활성화를 위한 법회에 초청돼 반야포교소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회정 정사는… 1980년 진각종에 입교한 회정 정사는 향가심인당 주교를 시작으로 전법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부터 95년까지 대한불교 진각종 제 8대와 9대 종의회 의원을, 97년에는 진각종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98년에는 학교법인 회당학원 이사를, 2005년에는 27대 통리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제 29대 통리원장으로 있으며,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부회장, 사회복지법인 진각복지재단 대표이사,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이사장과 탑주심인당 주교, 〈밀교신문〉 발행인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힘들죠? 함께해요> 등이 있다.
▲시행 착오 이후 현지화 전략이 성공한 셈인데, 국내 불교계가 해외 포교 사업을 펼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장점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요?

-일단 현지인들이 우리나라서 박사학위를 따는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문화와 진각종 교리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나는 현지인들이 해당 지역서 ‘신불교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습니다. 이유는 자국의 문화적 이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스리랑카와 네팔 불교는 상좌부 불교로 생활화 되지 못한 채 허례가 많습니다. 이들 불교가 변화해 우리 생활 속에서 부처님이 살아 숨 쉬는 불교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네팔 일요법회에는 20명 남짓 참여하던 것이 1년도 채 안돼 200여 명이 모여 진각종식 밀교 법회를 열 정도로 참여도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해외 포교 거점지로 네팔과 스리랑카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1998년 당시 진각종 총무부장으로 있을 때 스리랑카로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 캔디시 중앙공원서 우연히 유치원생들을 데리고 소풍온 한국 수녀님을 만났지요. 수녀님 말씀이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기 때문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모님 사랑을 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기독교에 뒤쳐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우리도 유치원생 교육의 원을 세우고 1999년 스리랑카 정부에 정식 요청해 6천여평을 지원받고 학교를 지은 것이 첫 계기였습니다. 이후로 현재까지 17년째 교육불사 중입니다. 더욱이 지난해 12월엔 스리랑카 국제회당학원 재단 법인도 설립했습니다. 현재는 학교 시설유지 및 보수, 학용품, 현지 직원 임금 등 일부분을 지원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왕래하며 한국어 교육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복지쪽으로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종단 원로 스승님들의 노후복지를 담당하는 기로원 활동은 어떤가요?

-대구 비산동 기로원을 올해 경북 청도로 옮겼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스승님들도 공동생활보다는 개인적 삶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시설을 현대식으로 보수해 옮긴 것입니다.
물론 기로원 밖에 나가서 생활하는 스승님들에게는 종단서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진각종은 스승님들의 노후 복지를 창종 초부터 고민해 왔습니다. 이 점이 다른 불교 종단과는 차별화 된 부분입니다. 현직에 있는 스승님 220명 중 현재 65세 정년 이상 스승님은 약 80여 명 정도가 계십니다. 이 분들에게 이러한 복지 혜택을 드리고 있습니다.

▲ 앞서 전반기 성과를 포교로 말하셨는데 현재까지 어떤 성과를 이뤘나요?

-진각종 수행의 가시적 효과는 기복 불교가 아니라 스스로 이루는 ‘행동하는 불교’ 문화를 정착했단 점입니다. 진각행복디자이너 단체 JVC를 조직해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단적인 예입니다. 교도분들이 수행을 늘 즐겁고 신바람나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한 목적 때문에 하는 수행은 그 자체로 어렵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진각종은 아직까지도 예외없이 월초불공을 7일씩 하는데요, 그래서 수행이 힘들다는 얘기가 종종 들립니다. 과거의 수행 전통을 현대에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신가요?

-우리가 생각하는 불공이 꼭 한 자리서 모여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 날 때마다, 다른 장소서 하는 불공을 가리켜 ‘시시불공 처처불공’이라 하지 않습니까? 법당에 나오지 않아도 진각종 신도들은 언제나 희사불공, 계행불공, 하심불공, 용맹불공 등 여러 수행법을 실천합니다. 흔히 진각종서 공부를 많이 시킨다고 하는데 어쩌면 우리 불교가 발전 못하는 이유가 그만큼 치열한 불공이 없다는데 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는 일요일에 빠지지 않고 예배하러 갑니다. 그런데 불자들에겐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내키는 대로 왔다갔다하니 단체 화합이나 구심점이 생기지 못하고 힘 없는 종교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진각종은 자성일(일요일) 오전 10시, 저녁 6~7시 매번 공식불사를 진행합니다. 또 스승님들이 불사를 매일 집전하죠. 교도분들이 정해진 형식 속에서 수행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수행과 정진이 진각종을 이어온 큰 힘입니다.

▲다른 종단은 출가자 감소 때문에 비상입니다만 진각종은 어떤 대책이 있으신지요?

-진각종은 출가자 제도가 아닙니다. 신도들은 재가 종무원으로 열심히 종무에 임하면서 교육 받고 있으며, 진각대학원 과정까지 7년을 공부합니다. 이후 본인 뜻에 따라 교화 활동의 길로 나갑니다. .재가 불교 종단이기 때문에 언제든 종무원으로 활동하다 교육 과정을 이수한 후 스승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아직까지 인원부족으로 곤란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출산율 감소는 우리도 고민해야 합니다. 진각종은 여러 대안을 강구중입니다. 예를 불교학과를 아예 진각종학과 혹은 심학과라고 바꿔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할까 고민중입니다. 질 높은 교육자를 양성하기 위해섭니다.
전국에 심인당이 약 120여개 있습니다. 300여 스승님들이 2인(정사, 전수)씩 1개의 심인당을 운영하기에 교화활동을 하는데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올해로 창종 70주년을 맞았는데 대사회적 성과를 꼽는다면요?

-1990년대 들어서 진각종이 대사회화운동을 본격적으로 관심갖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처음 ‘청정국토가꾸기운동’을 시작해 각 지역 환경 정화 및 지역주의 타파 등을 펼쳤습니다.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남북통일을 위한 대북 지원사업을 이끌었습니다. 법타 스님과 함께 사리원에 국수공장을 설립하고 지원했습니다. 1998년 9월 추석에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 어린이 분유 및 아스피린 보내기 운동’을 하자 북한 불교계서 초청을 하기도 했죠. 이후 사회복지법인도 설립해 현재 50여 곳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 중입니다. 또한 비로자나청소년협회를 설립해 청소년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사회적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 28차 WFB 서울 총회가 열립니다. 행사 개최 계기와 의의를 말씀해 주십시오.

-세계불교도우의회(WFB)는 1950년 스리랑카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진각종 종조 회당대종사가 1958년 태국 방콕 총회 때 동산 스님, 청담 스님 등과 함께 처음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제가 총무부장으로 있을때 당시 WFB 한국본부를 관리한 박동기 박사가 미국서 운명하셨습니다. 이후 임선교 부회장이 회장을 맡다가 재정 사정이 어렵다며 저에게 본부 운영을 부탁했습니다. 그때부터 WFB 한국본부를 제가 운영했습니다. 이후 대만, 일본, 중국 총회 때마다 참석하면서 태국에 있는 사무총장과 자주 만남을 갖다보니 작년에 나에게 28차 대회를 진각종이 맡아줬으면 하고 부탁해 성역화 불사도 보여줄 겸 수락했습니다.

▲이번 행사서 예상하는 성과는 어떤 것인지요?

-이번 총회 슬로건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입니다. 사실 불교는 속세를 떠난 종교를 지향하는 종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도우의회에 모인 많은 분들에 진각종의 대사회적 활동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또한 유일한 분단 국가로서 현 상황을 알리고 싶어 평화통일을 하나의 세션으로 따로 마련했습니다. 이후 29일 오후에 참가자들과 함께 JSA견학도 떠납니다. 아울러 연세대 손열 교수, 북한학 전공자인 선상신 불교방송 사장 등 3명이 논문을 발표하고 통일을 논의하는 자리도 있습니다. 마지막날엔 평화선언도 합니다. 남북이 경직된 현 상황서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제스쳐가 될 것입니다. 외국에서 350여 명 정도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 시대서 각 분야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용장(勇將)보다 지장(智將), 지장보다 덕장(德將)’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슴 넓은 리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리더가 자기 중심적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수용할 수 없다면 곤란합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뒤에서 오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데 획일적으로 생각하고, 내 뜻에 맞지 않으면 틀리단 생각을 하지 않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내 뜻과 다르지만 저런 뜻도 있었구나’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생각이 같은 사람만 찾고다보니 편가르기가 만연합니다. 그런데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어울리면 ‘생각의 만다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잘맞는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추종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발원이 있으시다면요?

-이제 개인 차원서 자유로운 봉사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암 투병 등 고통스런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환자들이 마음 편히 지낼 시설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지인이 폐암으로 투병하면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적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병원 진통제는 처음엔 효과적이지만 갈수록 효과가 없습니다. 그 분이 고통없이 죽을 수 있길 바라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호스피스 공동체를 마련해 서로 위로하는 시설을 마련하겠다고 원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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