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차례 및 사찰 프로그램

한 사찰에서 불교식 차례를 지내는 모습. 최근 사찰에서는 합동차례와 함께 소외계층 나눔행사 등 명절의 의미를 되짚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현대불교=노덕현 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추석을 맞아 사찰 등 불교계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사찰이 추석에 가장 많이 진행하는 행사는 합동차례다. 추석을 맞아 차례를 모시기에 고민이 된다면 가족들과 사찰로 발길을 옮겨보는 것도 좋다.

달라지는 풍속, 신문화 정착
탈북민·소외계층 돕기 눈길
비용 저렴, 사전 접수 필요

서울 조계사는 9월 15일 합동차례를 전후로 14일부터 16일까지 한가위 3일기도를 진행한다. 단순한 합동차례에 그치지 않고, 신심이 증강되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02)768-8600

서울 봉은사 경우 전국사찰 중 유일하게 단독차례를 진행하고 있다. 120가구에 한정해 모집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접수 이틀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합동차례와 달리 봉은사의 각 전각 특색에 맞춰 가족이 개별로 진행하는 차례다. 가격은 40만원 선. (02)3218-4800

서울 국제선센터 추석 당일인 9월 15일 북한이탈주민을 초청해 합동차례와 전통문화 교육 및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북한이탈주민의 향수를 덜어주고자 마련된 이번 법회는 새터민 110명과 고향에 가지 못하는 양천구 지역주민 150여명이 참석한다. 차례가 끝난 후에는 전통한복입기, 송편빚기, 투호놀이 등 명절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02)2650-2200

진안 마이산 탑사와 쌍봉사는 9월 1일 추석 차례 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비의 연탄 나눔행사를 가졌다. 진안지역은 해발 500m 이상의 산간지역이다. 일교차가 크고 추위가 일찍 찾아오기 때문에 추석 무렵부터 연탄을 필요로 하는 소외계층이 많은 실정. 탑사와 쌍봉사는 추석 차례에 이어 동참 대중들이 모은 기금으로 마련한 3만장의 연탄을 관내 100가구에 전달한다. (063)433-0012

광주 무각사는 추석차례와 함께 재활용 나눔장터인 보물섬을 추석연휴기간 동안 개최한다. 추석기간 벼룩시장 형태로 운영되는 보물섬은 지난 2009년, 무각사 주지인 청학 스님의 제안에 따라 광주지역 4대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사회운동으로, 올해로 개장 8년째를 맞고 있다. 보물섬은 지난 한 해동안 모두 26차례 장터를 열어, 상설매장 기부금과 토요장터 판매를 통해 모아진 700여 만원을 유엔 아동협력기금인 유니세프에 전달했다. 물품은 도서, 의류, 신발, 가방에서부터 가전·주방·아동용품 등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판매 가능한 중고품 그리고 개인 창작품이면 무엇이나 가능하다. 여름 피서철인 7,8월과 겨울 혹한기인 1,2월을 제외하고 매주 토요일에 열리며, 물품 판매를 희망하는 경우 매주 토요일 오전 9시까지 접수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062)383-0108

순천 송광사는 추석 당일인 15일 사중 스님들과 신도들이 함께 동참하는 추석송편빚기행사를 진행한다. 빚은 송편은 소외계층에게 전달된다. (061)755-0107

올 추석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함께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속에 비친 불교 차례문화

〈입당구법기〉, ‘사찰서 명절 지내’
고려·조선 지배층, 기제사 사찰서
“불교와 제사는 오랜 전통”

일본의 승려 원인(圓仁)이 9세기에 당나라를 10년 가까이 여행하면서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보면, 추석이 오직 신라에만 있는 명절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당나라에는 신라인의 왕래가 많은 지역에 신라인 집단거주지인 신라방(新羅坊)이 있어 이곳의 사찰을 신라원(新羅院)이라 하였다. 원인은 당나라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절에서 수제비와 떡을 장만하고 8월 보름 명절을 지냈다. 다른 나라에는 이 명절이 없고 유독 신라에만 있는 명절이다. 노승들의 말에 의하면, 신라가 옛날 발해와 전쟁을 할 때 이 날 승리하여 명절로 정하고 즐거운 음악과 춤을 즐기던 것이 오래도록 이어져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날 온갖 음식을 마련하여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즐기며 밤낮으로 사흘을 쉰다. 이곳 적산원(赤山院)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늘 이렇게 명절을 치렀다.’
기록에 따르면 사찰에서도 수제비와 떡 등 음식을 마련하고 사찰에서 춤 등으로 명절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설과 추석 등 명절에 치르는 차례를 사찰에서 합동차례로 치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차례도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차례(茶禮)라는 말이 ‘차를 올리는 예’이건만 유교제사에서는 실제 차 대신 술을 쓰고 있다. 차는 이 땅에 전래되면서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수행자들이 심신을 닦는 방편이자 부처님께 올리는 주된 공양물이 되어왔다. 고대의 불상과 탑ㆍ부도에 차를 공양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듯이, 불전에 차를 올리는 헌다의식은 이른 시기부터 정착되어 향ㆍ등ㆍ꽃ㆍ과일ㆍ쌀과 함께 육법공양물의 하나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고려 때는 왕실과 지배층에도 차가 널리 유행하여 중요한 국가행사에 진다의식(進茶儀式)이 빠짐없이 등장하였고, 궁중에는 차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다방(茶房)을 두었으며 민간에는 차를 재배하여 사찰에 공급하는 다촌(茶村)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차를 불교의 산물로 봄에 따라 차문화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이러한 정책기조와 달리 고려의 진다에 해당하는 의식이 다례(茶禮)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여전히 활발하게 행해졌다.
특히 제사에서 차를 사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삼국유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수로왕을 외가 쪽 15대 시조로 밝히면서, 수로왕의 사당을 종묘에 합하여 제사를 계속 지내도록 하였다. 매년 세시마다 지내는 이 제사에 술ㆍ감주ㆍ떡ㆍ밥ㆍ차ㆍ과일 등을 차렸는데 이는 종묘에 차를 올린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되고 있다.
조선 초에 술과 차를 함께 또는 선택적으로 사용한 과도기를 거쳐, 점차 ‘헌다’라는 용어는 그대로 두면서 물을 쓰게됐다. 이때 국을 내리고 물을 올려 밥을 조금 말아놓는 것은 곧 숭늉을 의미한다. 이율곡은 “국속(國俗)에는 차를 썼지만 지금은 물로 대신 한다”면서, 기제와 시제에서는 차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제사에 술은 남고 차는 사라졌다는 사실에서, 차를 불교의 산물로 여겼던 이념적 이유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술은 금지의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빈부와 무관하게 점차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술문화가 발달되어왔다는 점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상변통고>에는 ‘기제사에서 소찬을 사용하는 잘못(忌祭用素饌之非)’이라는 글에서 여러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였다. 이황은 제사에 고기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제주가 근신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여 제상에도 올리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탄식하였다.
그런데 이수광과 왕씨는 이러한 풍습이 단지 제주의 행소 관례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사찰제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곧 왕씨는 사찰에서 제사를 지냄으로써 선대가 혈식(血食)을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하였고, 이수광은 사찰에서 기신재를 열던 풍습으로 인해 사대부 집안에서는 고기를 쓰지만 국가의 기신제에는 오히려 소찬(素饌)을 쓰게 되었다고 하였다.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사찰에서 기제사를 지내다보니 제사음식으로 술과 고기를 쓰지 않게 되면서, 유교식 제사를 지낼 때조차 이러한 풍습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찰에서 치른 기제사와 차례는 조상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종교적 바람을 반영하는 것이었기에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왕실과 지배층에서 널리 행해졌던 것이다.
사찰제사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줄어들었다가, 근래에는 사찰에서 치르는 기제사가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명절의 합동제사 또한 점차 늘고 있어 ‘불교와 제사’의 오랜 전통이 현대적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듯하다. 


                                                                                                              구미래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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