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교수 해주 스님 퇴임강연회

의상 스님의 법성성기(法性性起) 사상과 전승

동국대 역사상 첫 비구니 정각원장 소임을 맡고, 180여 명의 석박사 제자를 배출한 동국대 교수 해주 스님이 정년퇴임했다. 스님은 831일 동국대 학명세미나실서 퇴임강연회를 열고 의상 스님의 법성성기 사상과 전승이라는 주제로 특강했다. 스님의 강의요지를 지면에 싣는다. 정리=윤호섭 기자

▲ 해주 스님은… 1977년 3월 동학사 전문강원을 졸업하고, 1982년 동국대 불교대학 승가학과, 1984년과 87년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을 각각 수료했다. 1990년 화엄학 전공으로 비구니 스님 최초의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가 됐다. 조계종 제11대ㆍ12대 종회의원, 조계종 기초교육개혁위원, 전국비구니회 계단위원, 동학사 승가대학장, 비구니 최초 동국대 정각원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부터 24년간 한국불교학회 이사를 맡았으며, 불교학연구회 초대, 제2대 회장, 한국불교학결집대회1ㆍ2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 수미정사 주지, 승가학원 이사, 전국비구니회 부회장으로 있다.

연기가 성기, 보살도가 불세계
부처 성품은 수미산이자 1
깨달음 의지 닦아 보현행 이뤄

한국의 화엄사상과 수행 전통은 의상(625~702)에게서 비롯된 의상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은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의상 스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자기의 오척(五尺)되는 몸과 마음인 십불(十佛)을 바로 보고, 본래자리인 법성가(法性家)에 돌아갈 것을 가르쳤죠. 바꿔 말하면 우리는 이미 온전한 존재임을 바로 보아서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상 스님의 법성성기 사상과 수증방편이 제자법손들에게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의상 화엄의 사상적 배경
화엄경은 경전명인 대방광불화엄경의 불(대방광불)과 보살(화엄)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살도 또한 부처님의 본생보살의 길이면서 우리 성불의 길로써 불세계 장엄행입니다.

그러한 화엄세계인 법계를 화엄사상의 2대 측면인 연기(緣起)와 성기(性起)의 연성이기(緣性二起)로 일단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성기는 화엄법계가 여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여래성기이고, 연기는 법계의 존재가 연 따라 일어난 법계연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세계는 부처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성기이고, 보살세계는 연생연멸(緣生緣滅)의 연기인 겁니다. 또 불보살의 인과세계는 연기이고, 보살도로 불세계에 이르므로 연기의 구극이 성기입니다. 또한 화엄보살도가 불세계 장엄이라서 연기가 성기이며, 보살이 다 지정각세간이므로 성기가 연기이기도 하죠.

이러한 화엄경성기품의 성기 교설에 대하여 제일 먼저 주목한 화엄조사는 지엄입니다. 지엄의 연기와 성기사상은 의상과 법장에게 이어지고 재해석되죠. 의상은 특히 지엄의 성기설을 이어받아 법성성기로 발달시켜 갑니다.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과 수증법
의상은 지엄의 성기설에 영향을 입어 연기의 구극이 성기이며 연기가 곧 성기인 수연행을 수용하면서도, 지엄이 정법연기에 성기를 포섭시킨 것과 달리 오히려 성기가 연기를 포섭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상의 화엄사상은 일승법계도(668년 저술)와 스님의 강설에 담겨 전해지고 있는데요. 일승법계도의 일승은 화엄경을 뜻하고, 화엄경의 세계가 법계이며, 그 법계를 반시로 그려 보인 것이 일승법계도입니다. 따라서 의상의 화엄경관은 크게 일승, 법계, 법성이라는 세 용어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하겠으며, 또 법성으로 일승법계를 담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법성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법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법성성기입니다. 법계 제법은 법성의 성이 그대로 일어난 것이라는 법성성기가 의상의 화엄일승법계 이해의 핵심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의상은 성기란 일어남이 없음[無起]이 성()이고 일어나지 않음[不起]이 기()이니, 기란 곧 법성이 분별을 여읜 보리심 가운데 현전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법의 본성과 같기 때문에 기라 이름할 뿐, 일어나는 모습이 있는 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상은 화엄경으로 안목을 삼아서 오오척법성인 십불을 바로 보는 수증법(修證法)을 강조했습니다. 십불은 여래의 지혜성품인 여래성이 그대로 현현한 성기법성이니, 십불을 바로 본다는 것은 증분법성의 십불로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의상은 연기제법의 근원, 근본을 모든 연의 근본은 나이며, 일체법의 근원은 마음이며, 말은 매우 중요한 근본이니, 진실한 선지식이다4구게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4구게는 표훈진정 등 10여인이 부동오신이 법신 그 자체임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입니다. 4구게에 이어서 의상은 그대들은 마땅히 마음을 잘 써야 한다고 분부했는데요. 금일 오척범부신이 삼제에 칭합하여 부동인 것이 무주이며, 법신자체인 그 도리를, 의상은 4구게로 보여주면서 마음을 잘 써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마음은 여래성기심입니다.

의상 법성성기 사상의 전승
의상에게는 한 번 강의에 3000명이나 모여들만큼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뛰어난 제자로 10대 제자4대 의영등당도오자(登堂覩奧者) 등이 회자되었습니다. 특히 표훈과 진정은 의상의 4구게에 대해 오관석(五觀釋)과 삼문석(三門釋) 등을 지어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표훈진정지통도신상원 등의 직제자를 거쳐, 상원의 제자인 신림, 그리고 신림의 제자인 법융 등 신라 하대에 이르기까지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과 이에 입각한 성기관법이 이어지고 발전했습니다.

의상의 4세법손이 활동한 시기인 9세기 신라말에 이르기까지 전승되어간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은, 총수록에 수록된 삼대기와 고기등에 담겨 널리 전해집니다. 법융기〉ㆍ〈대기〉ㆍ〈진수기등의 삼대기는 일승법계도를 수문석한 것입니다.

삼대기에서는 오척법성의 성기심에 의해 나타난 해인삼매 경계가 망상해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승법계도제목을 3중의 오중해인으로 거듭 해석하고, 일체법계를 망상해인 즉 깨달음의 증분세계로 포섭시켜서, 일승법계도전체를 상을 여읜 망상해인으로 거두고 있는 것인데요.

그리하여 증분법성의 법은 내 몸과 마음이고, 성은 법이 원융한 것입니다. 원융법성이란 미진법성이고 수미산법성이고 일척법성이며 오척법성입니다. 금일 오척법성에 근거하면, 미진법성과 수미산법성 등이 자신의 지위를 움직이지 않고 오척에 알맞게 이루어집니다. 오직 오척인 까닭이죠. 또 제법부동이란 무주법성이며, 다만 오척법성일 뿐 곁에 다른 물건이 없는 까닭에 본래적입니다. 이러한 법성원융은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이니, 일체가 끊어진 이 일승 경계는 반정견처(反情見處, 망정을 돌이켜 보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상과 같은 의상의 화엄사상과 수행전통은 부석사를 본찰로 한 화엄십찰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신라말고려초에 이르면 화엄이 남악과 북악 양파로 갈라지고, 중국에서 조사선을 배워온 선사들에 의해 구산선문이 개산되어 선과 교가 갈등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균여가 북악의 입장에서 화엄교단을 통합시켰습니다. 균여는 의상의 법계관을 근간으로 주측법계관을 세웠고, 균여가 도문(圖文)을 연설한(958) 것이 후에 일승법계도원통기로 유통되었습니다.

일승법계도원통기에서는 3종세간이 본래 하나인데 석가불해인으로 나타낸 것은 망진심징(妄盡心澄)의 뜻에 근거한 것이니, ()은 망분별을 쉬어 삼세간을 나타내고 해인중에 나타나기도 하니 곧 자기라고 합니다. ()이 있는 자는 모두 불지를 갖추고 있으나, 중생은 다만 망상전도에 덮인바 되어 자기해인 삼매가 본래 스스로 원명하여 불과 다르지 않은 줄 알지 못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균여는 또한 일승법계도의 중도설에 주목했습니다. 균여는 의상의 중도설을 법성중도의 7중으로 파악하고, 이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와 집자 미상의 총수록을 통해 의상화엄은 다시 고려시대에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중기 이후로는 의상의 일승법계도가 선사들에 의해 선적으로도 이해되고 주석되어 갔습니다. 먼저 구산선문이 개산될 때부터 당시까지 갈등관계였던 선과 교가 서로 다르지 아니함을 확인한 보조지눌이 선교겸수정혜쌍수돈오점수의 선풍을 선양함에 일승법계도의 의상사상을 수용한 것입니다.

지눌의 돈오후 점수인 오후목우행(悟後牧牛行)은 단이무단 수이무수(斷而無斷 修而無修)의 진수진단(眞修眞斷)이며, 이를 화엄교의 측면에서 돈오 후의 원수(圓修)라 한다. 돈오원수의 돈오점수는 화엄성기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눌은 불심인 선과 불어(佛語)인 교가 서로 다르지 아니함을 여래출현품의 여래심 교설에서 확인하였으며, 신화엄경론에서 선교일원인 화엄교의 오입문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원돈성불론을 짓고 원돈신해문을 시설한 것이죠.

원돈성불론에서는 신화엄경론불동지불(不動智佛)’설을 의용하여 수심인은 먼저 자심의 일용무명분별의 종자로써 제불의 부동지를 삼은 후에 의성수선(依性修禪)하는 것이 묘()하다고 강조합니다. 지눌은 신화엄경론에 의거한 이러한 수행을 성기문으로 보았습니다. 초심범부가 자기 마음의 근본보광명지를 깨닫고, 이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서 결국에는 보현행을 이룬다는 것이 원돈신해문의 돈오원수입니다. 이는 의상이 누누이 강조한, 오오척신이 구래 십불 그 자체임을 바로 보아 십불로 출현케 한 것과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의상의 특징적인 증분법성의 성기사상이 보조선의 돈오점수설에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아울러 지눌이 의상의 일승법계도설을 인용하여 해설한 내용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원돈성불론:2, 절요:3).

선과 화엄의 교섭이 이루어지는 수행가풍 속에서 조선시대 설잠(雪岑)법성게를 선적으로 주석함으로써, 화엄과 선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잠은 법성에 초점을 맞추어 법성게를 주석했으니,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1476)입니다. 설잠은 서문에서 의상이 처음 일승법계도를 만든 법성원융의 본래면목이 교망(敎網)으로 인해 상실되었다고 개탄하고, 그 개요인 210자의 종지를 법성으로 파악하고 그 소식을 간명하게 드러내고자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법성게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등의 증분4구로써 대화엄의 중중무진법계를 다 설해 마친 것인데, 의상법사가 자비심으로 연기분을 시설하였다고 하며, 법성 외에 따로 일단 진성이 있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법에는 심천이 없으나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기 때문에 중생이 증득할 수 있도록 방편으로 진성을 가작한 것이지 법성을 따로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후 선수행자의 교과서처럼 중시된 선가귀감에서, 서산은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조사선을 펴고 있지만, 교의 수행방편 또한 선수행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행가풍 속에서 법성게는 그 독송만으로도 공덕이 한량없음을 믿어 널리 유통되었습니다.

일승법계도는 조선시대에 또 한 번의 주석이 이루어졌으니, 도봉유문(道峯有聞)법성게과주(1789년 이전 저술)입니다. 유문은 법성무이상(法性無二相)’ ‘이사무분별(理事無分別)’로 법계를 원증(圓證)하도록 한 것이 의상의 종안(宗眼)이라고 피력합니다. 그리고 법성게전체를 연기적 실천의 입장에서 의상의 법성을 드러내려는 해설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참선간경염불의 삼문수업과 참선간경(경학)염불송주가람수호 등 오종의 수행가풍 속에서, 의상계 화엄전통은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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