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현진(玄眞) 스님

임진왜란 기간 의승군 참전 추정
왜구 의해 소실된 사찰 불상 조성
1610~1630년대 불상 제작 주도
현진 스님은 전국을 무대로 활동

▲ 17세기 전반 현진 스님이 만든 대표작인 1612년 함양 상련대 목조보살좌상(사진 왼쪽)과 1626년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불좌상(사진 가운데) 및 1633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사진제공=송광사 성보박물관장 고경 스님·(재)불교문화재연구소·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7년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사찰의 중창과 중수에 따른 불상 제작은 1600년대부터 1630년대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전라도와 충청도의 명산대찰(名山大刹)은 부휴문도(浮休門徒)에 속하는 스님들이 중창과 중수를 주도하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승은 수연(守衍) 스님과 현진(玄眞) 스님이다. 이 스님들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은 17세기 동안 전국 사찰에 불상을 봉안하였다.

1610~30년대 전국을 무대로 불상을 만든 대표적인 조각승은 현진 스님이다. 1612년에 경남 진주 월명사 목조여래좌상과 함양 상련대 목조보살좌상을 만들 때 수화승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아 스님은 불교조각계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현진 스님이 만든 불상은 1018점이 조사되었다.

조각승 현진 스님의 생애와 승려 장인이 된 배경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불상에서 발견된 문헌과 사찰의 연혁을 적은 사적기(寺蹟記)를 통해 활동 시기와 내용, 조각승 계보 등을 추정할 수 있다.

현진 스님이 수화승으로 활동하며 제작한 진주 월명사 목조여래좌상과 함양 상련대 목조보살좌상은 네 명의 조각승과 함께 만들었다. 이때 같이 참여한 학문(學文) 스님, 명은(明隱) 스님, 의능(義能) 스님, 태훈(太訓) 스님은 아직까지 불상을 주도적으로 만든 기년명 불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조각승들이다.

현진 스님은 1614년에 전남 구례 천은사 목조보살좌상 2구를 만드는데, 본존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1622년에 왕실에서 발원한 한양 도성 북쪽에 있던 내원당(內願堂)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할 11구의 불상을 당대 최고의 조각승인 수연 스님, 응원 스님, 법령 스님 등과 조성하는데, 수연 스님보다 앞서 언급된 것을 보면, 연배나 지위가 수연 스님보다 앞서고 이 불사(佛事)를 주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성된 11구의 불상 가운데 현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이 서울 동대문 지장암에 봉안되어 있다.

또한 스님은 1626년에 수화승으로 충남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소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을 제작하였다. 이 삼신불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은 아미타불, 오른쪽은 석가불을 조성한 것으로, 참여 작가가 청헌(淸憲) 스님, 연묵() 스님, 회묵() 스님, 옥정(玉淨) 스님, 도형() 스님, 영색() 스님 등 17명이 참여한 대규모 불사이다. 특히, 1630년에 중관(中觀) 스님이 쓴 <속리산대법주사대웅대광명전불상기(俗離山大法住寺大雄大光明殿佛相記)>가 법주사에 전하고 있어 조성 당시의 현황을 알 수 있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1624년에 벽암각성 스님이 중창할 때 건립한 것으로, 120칸에 건평이 170, 높이가 61척에 달하는 대규모의 건물로 다포식(多包式) 중층건물이다. 이 건물은 부여 무량사(無量寺) 극락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佛殿)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전각과 불상 제작을 주도한 벽암각성(1575~1660)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승군(僧軍)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완성시켰으며, 사고(史庫)를 보호한 스님으로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의 제자이다.

현진 스님은 1629년에 경남 창녕 관룡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 1633년에 부여 무량사 극락전 소조아미타삼존불좌상, 1636년에 청도 적천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 1637년에 경북 성주 비슬산 명적암 목조아미타불좌상(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을 수화승으로서 제작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현진 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스님은 1570년대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의승군으로 활동한 뒤, 1612년 이전부터 불상 제작에 관여하였다. 스님이 불상을 제작한 사찰은 진주 월명사, 함양 상련대, 구례 천은사, 서울 자수사와 인수사, 보은 법주사, 창녕 관룡사, 부여 무량사, 청도 적천사. 성주 명적암 등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현진 스님의 활동 시기는 1612년부터 1637년까지이다.

▲ 1612년 함양 상련대 목조여래좌상 발견 조성발원문. <사진제공=함양 상련대>

현진 스님은 어느 스님 밑에서 불상 제작을 배웠는지 알 수 없고, 그 계보는 현진(玄眞, -1612-1637-)청헌(淸憲, -1626-1643-)승일(勝日, -1622-1670-)희장(熙藏, -1636-1666-)보해(寶海, -1646-1680-) 등으로 이어진다. 현진과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은 17세기 불교 조각계를 주도하던 작가들이다.

현진 스님이 만든 가장 빠른 작품인 함양 상련대 목조보살좌상은 높이 36.3, 조선후기에 제작된 소형으로, 얼굴을 약간 앞으로 숙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염문(火焰文)과 화문(花文)으로 장식된 높게 솟은 원통형 보관은 불상의 조성 당시에 제작된 것보다 후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은 각이 진 방형(方形)으로 눈꼬리는 약간 위로 올라가 있고, 코는 곧게 뻗은 삼각형이며, 작은 입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머리카락은 귀고리를 단 귓불 위를 지나 양쪽 어깨에서 팔뚝까지 길게 보주형(寶珠形)이 겹친 형태로 늘어져 있다. 따로 제작된 양손 가운데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맞댄 손가락에 정병이 끈으로 묶여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대의자락은 오른쪽 어깨에 거의 사선으로 접혀 짧게 늘어지면서 팔꿈치와 배 부분을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반대쪽 대의자락과 배 부분에서 U자형으로 겹쳐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배 부분에서 수직으로 대의자락이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걸친 승각기(僧脚崎)는 사선으로 접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그 후 스님이 1626년에 제작한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소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본존이 높이 509, 조선후기에 제작된 초대형 불상이다. 불상의 얼굴은 각이 지고, 지긋이 뜬 눈은 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가고, 코는 곧게 뻗은 원뿔형이며,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비로자나불이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자락은 1614년에 제작된 구례 천은사 목조보살좌상 같이 가장 안쪽 옷깃이 가슴까지 완만하게 접혀 늘어져 있다. 왼쪽 어깨에서 동일한 두께로 늘어진 대의자락은 끝부분이 n자형으로 처리되어 있다. 비로자나불은 대의 안쪽에 편삼을 착용하고 지권인을 결하여 대의자락이 좌우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양 협시불은 대의 안쪽에 편삼을 입지 않아 팔목이 노출되어 있다. 왼쪽 어깨 측면에는 대의자락이 양쪽으로 가늘고 짧게 늘어져 끝부분이 역삼각형으로 처리되고, 그 사이에 넓은 U자형의 대의자락이 늘어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배 부분에서 수직으로 한 가닥의 주름이 길게 늘어지고, 좌우에 몇 가닥의 주름과 무릎에 사선으로 2가닥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협시불은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를 가슴까지 끌어올려 끈으로 묶은 뒤 상단부분을 연판형(蓮瓣形)으로 처리하였다.

현진 스님이 1637년에 조성한 성주 명적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불상은 높이가 33.1인 소형으로, 상체를 약간 앞으로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따로 제작된 양 손은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댄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앞으로 숙인 머리에는 나발이 촘촘하고, 육계의 표현은 명확하지 않다. 정상부에 원통형의 낮은 정상계주와 이마 위에 중앙계주를 가지고 있다. 원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는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가 지긋이 뜬 눈, 원통형의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을 가지고 있다. 두꺼운 대의는 오른쪽 어깨의 일부를 덮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왼쪽 어깨의 측면에는 대의자락이 앞쪽에 가늘게 늘어져 끝부분이 둥글게 마무리되고, 그 뒤로 넓은 U자형의 대의자락이 표현되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배 부분에서 거의 수직으로 내려온 옷자락을 중심으로 나머지 자락이 사선으로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입은 편삼은 왼쪽 어깨를 덮은 대의자락과 배 부분에서 안으로 접혀 있고, 가슴까지 올려 접은 승각기는 수평으로 묶어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현재 조사된 현진 스님이 제작한 불상은 대형의 소조불과 중·소형의 목조불이다. 높이와 무릎 너비의 신체비율이 소조불은 1:0.74-0.79인 반면, 목조불은 1:0.63-0.66으로 줄어들었다. 얼굴표현에서 1612년과 1614년에 제작된 목조보살좌상은 넓은 이마에 이목구비가 안면 중앙으로 몰려 있고, 코는 짧고 뾰족하며, 작은 입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러나 현진 스님이 1629년에 제작한 관룡사 불상부터 방형의 얼굴에 원통형의 코, 얼굴에 비하여 작은 입을 가지고 있어 조형감각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목조불보다 소조불의 이목구비가 더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대의자락이 짧게 늘어져 있고, 안쪽 대의자락의 옷깃이 사선으로 반전(外反)되었다가 1628년에 만든 관룡사 불상에서 대의자락의 끝부분이 U자형으로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법주사 소조불상을 제외하고 배 부분에서 길게 늘어진 대의끝부분이 수직으로 한 번 접혀있고, 끝부분이 U자형으로 처리되고, 무릎에 2가닥의 옷주름이 수직으로 늘어진 것이 현진 스님이 제작한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의 표현은 대형소조불은 연판형으로, 목조불은 수평이나 사선으로 접어 처리하였다. 이 가운데 승각기 상단의 연판형 처리는 다른 조각승이 제작한 불상보다 실제 승각기를 묶었을 경우에 접히는 표현을 하고 있다.

현진과 그 계보 조각승이 제작한 불상 양식을 바탕으로, 그의 양식적인 특징이 반영된 경남 남해 용문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경남 진주 청곡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 경기 안양 청계사 목조보살좌상, 전남 구례 화엄사 지장암 목조관음보살좌상(200674일 도난) 등은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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