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회 이사장 혜총 스님

조계사 일요법회불교는 인과응보

태자 싯타르타의 삶은 출가 후 부처가 되기 전까지 매순간 의심과 정진의 연속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뒤엔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며 스스로 올바른 마음을 확고히 할 것을 당부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할까? 대각회 이사장 혜총 스님은 87일 봉은사 일요법회서 원을 세우고 그 원을 이루고자 정진하되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해선 안 된다. 하나만 성취하면 삼라만상을 다 갖는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리=이승희 수습기자

▲ 혜총 스님은… 1953년 통도사에서 보경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6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3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ㆍ범어사승가대학과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조계종 포교원장, 사회복지법인 불국토 대표이사,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 총재 등을 역임했다.

일념 없이는 성취 없다
마음 따라 결과 달라져
무언가 이루고자 한다면
절박함으로 정진하라

一念으로 정진한 부처님
불교는 한마디로 인과응보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인과응보를 아는 것이야말로 참 지혜입니다. 가만히 명상에 들어 생각해보면,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들이 유일하고 위대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뿐인 마음은 하루에 5만 가지 생각을 지으며 작용합니다. 지금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도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데, 불교에선 이것을 번뇌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이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한 생각에 몰두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면 몰입하지 않고 성취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이루어집니다. 부처님도 6년간 목숨을 내놓고 고행한 뒤 부처가 됐습니다. 그냥 태어나자마자 부처님이 된 것이 아닙니다. 잡념을 떨쳐내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한 생각에 일념(一念)하니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쇠는 용광로에 들어가 뜨겁게 단련되지 않으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쇠붙이가 되지 못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용광로에 한 번 들어갔다 와야 사람이 됩니다. 노력한 자만이 쟁취할 수 있고, 쟁취한 자만이 누릴 수 있고, 사람들 앞에서 자유를 선서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대통령이 조언을 구하기에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명예, , 사랑을 가질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를 다 가지려 하면 망한다고요. 만약 명예 하나만 가지려고 한다면 나머지가 따라옵니다. 돈만 가지려 노력해도 나머지가 따라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구하는 사람이 돈만 생각해야지 명예와 사랑까지 욕심내는 것은 마음이 일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만 성취하면 삼라만상을 다 갖는다는 것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셔야 합니다. 중생의 마음은 이것저것 다 갖고자 하지만 사실 하나의 일만 완수해도 다른 모든 문제들이 풀립니다. 마치 사람의 윗옷을 끌어당기면 그 사람 전체가 당겨오고, 그물을 잡으면 그물 속 고기들이 다 딸려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생에서 근본적인 하나를 완수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것은 마음인데, 이 마음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좋은 마음, 또 하나는 좋지 않은 마음입니다. 부처님 표현이 참 부드럽고 좋습니다. ‘나쁜 마음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좋지 않은 마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듣기 좋은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좋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말이 부드러워집니다. 입에서 상대방에 이익이 되는 말이 나옵니다. 몸짓과 행동도 봉사하는 좋은 몸짓이 나오게 됩니다. 마음이 좋으니까 말이 좋게 되고, 말이 좋으니까 행동이 좋게 됩니다. 이 점을 알아차리는 게 불교 공부입니다.

만약 나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험담과 같은 나쁜 말이 나옵니다. 험담이 나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짓도 나쁘게 나옵니다. 요즘 공중화장실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없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사건들이 이런 나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본분에 정념하지 않고 잡념이 들어 다른 행동을 하는 것도 나쁜 행동입니다. 신문을 보니 대낮에 버스운전기사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운전대를 놓은 사이 버스가 미끄러져 1명이 죽고 5명이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운전기사는 죽어도 핸들을 놓으면 안 되는데 자신이 볼 일이 급하다고 중간에 차를 세워 사고가 났습니다.

자기만 앞세워 길거리에 차를 아무렇게나 세워두는 행동은 나쁜 마음이 지은 나쁜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을 했다면 그 결과를 주시해야 합니다. 결국 나에게도 해롭고 상대방에게도 해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해로운 행동은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허무맹랑한 논리를 펼치신 게 아닙니다.

선택한 결과는 내 몫
이런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어떤 마음을 선택할지는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좋은 마음을 택하니 이번 생이 좋아지고, 집안 식구들과 주변 이웃들도 행복해집니다. 자연스럽게 좋은 다음 생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만약 나쁜 마음을 선택한다면 이번 생도 해롭고, 내 가족과 이웃도 해로워 결국 다음 생에 더 나쁜 운명이 닥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 점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불교신자입니다.

이런 점들을 깨달으면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게 됩니다. 혼자 염불을 외고, 참회를 하고, 참선을 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홀로 수행이 가능합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두고 코뿔소의 뿔과 같이 혼자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들을 두루 경험한 뒤 확실한 입지가 섰을 때 그 길을 혼자 가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참된 생각을 품은 이와 동행한다면 더 기쁘고 좋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확실한 마음을 잘 세워야 합니다. 어떤 마음도 허투로 내지 말고 작은 행동 하나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싶지 않아도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개미를 밟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생명체는 똑같이 평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마음먹고, 말하고, 몸짓하는 차이에 따라 현상세계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나타난 현상이 달라도 그 안에 자리한 불성은 모두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우리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모든 사물을 볼 때 그냥 보고만 있지 말고 존재 자체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 도적떼가 한 스님의 물건을 빼앗고 스님을 풀잎에 묶어 두고 달아났습니다. 길을 걷다 스님을 발견한 사람이 왜 꼼짝도 않고 있습니까하고 묻자 스님이 내가 일어나면 풀이 뽑혀 죽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라고 답했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님이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바보가 아닙니다. 모든 존재를 부처님처럼 여기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고 있는 스님입니다.

너도, 나도 불성을 지녔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이 <법화경>입니다. 불교신자라면 모든 존재는 다만 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런 존재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 존재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의심을 해야 하는 종교입니다. 의심이 없었다면 부처님도 깨달을 수 없었을 겁니다. 모든 존재는 태어났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는데 역사상 이 같은 인생을 벗어나려 고민해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하는 의심에 몰입한 부처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밥상을 대할 때 접시 위 음식이 우리와 똑같은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요리를 해준 상대방에게 감사와 칭찬의 말을 아끼지 마십시오. 생명이 희생해 밥상으로 왔기 때문에 모든 생명을 한 젓가락씩 먹을 때마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내고 먹으면 그 생명체가 먹는 이에게 복을 짓고 죽게 되는 겁니다. 그 복을 받아서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불교는 인과응보란 사실을 확실히 깨달으십시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입니다. 착한 마음을 내면 결과가 좋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아쇼카 대왕의 교훈
더불어서 우리는 깨달음을 향한 절박한 마음도 내야 합니다. 머리에 불이 난 사람이 돈이나 명예를 떠올릴까요? 오직 살겠다는 생각뿐일 겁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면 살게 된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떠올려보십시오.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란 물질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인도제국을 통일한 아쇼카왕을 교화한 니그로다 사미는 당시 고작 12살이었습니다. 사미의 절제된 걸음걸이에 매료된 아쇼카왕은 기꺼이 공양을 올리고 불법을 청했습니다. 니그로다는 어떤 생각을 품었든 결과를 보고 행동하라고 설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불법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은 자가 스승입니다. 어린이라도 불법을 얻었다면 절하고 가르침을 청해야 합니다. 일찍 태어난 사람이 왜 선배고 어른이 됩니까. 우린 모두 똑같이 평등한 존재입니다.

사실 아쇼카 대왕은 전생에 소년의 모습으로 부처님께 모래를 공양 올린 적이 있습니다. 친구와 소꿉놀이를 하던 전생의 아쇼카 대왕은 길을 지나던 부처님에게 가장 소중했던 모래 케이크를 공양 올립니다. 그리고 다음 생에 왕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받아보시고는 빙긋 웃으며 내가 열반한지 100년째에 이 소년은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공양의 공덕으로 우주를 밝히는 성왕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쇼카 대왕의 이야기처럼 원을 세우고 보시하는 공덕의 결과는 매우 큽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도 세우지 않고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서 벌어지는 문제가 많습니다. 꾸준한 원력을 통해 달성하려 하지 않고 삿된 길을 통해 이루고자 하니까 문제가 발생하고, 정신이 점점 황폐해지니 업장이 쌓이고 또 그 업장이 다른 업장을 만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을 세우고 그 원을 이루고자 정진하는 자세야말로 불자의 바른 자세라는 사실을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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