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시작으로 조계종 사회노동 실천위원으로 위촉된 스무 분 스님들의 첫인사는 지난 겨울 차가운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노동개혁안,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그동안 뉴스에서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사회적 이슈를 적은 플래카드들이 서울시청광장에 휘날리고 있었다. 엄청난 군중과 고함소리, 결사적인 눈빛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분노의 울부짖음은 시청역 출구를 막 나온 두 발을 잠시 묶어두었다.

스님도 이런 곳에 오셨어요?”

지나가는 거사님 한 분의 질문에 정신을 가다듬고 멋지게 자기소개를 하려는 순간, “스님은 절에서 수행 하시는 분 아닌가요?” “이런 곳에 오셔도 되나요?” “저리 비키세요!” 등 많은 말을 들으며 거친 손에 두루마기 자락이 당겨져 몸이 숙여졌다. 머릿속에서 준비한 대답 으음. 그것은.’이라는 말은 입 안에 맴돌았고 큰 고함소리와 밀려드는 인파 사이에서 한쪽으로 밀려났다. 옷깃을 조심스레 가다듬었을 즈음 그 거사님은 이미 군중 속으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잠시 어리둥절하게 서 있다가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저 멀리 몇 분의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짧은 눈인사를 나누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집회가 끝나고 모임이 해산하면서 정리와 청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목적으로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플래카드와 구호용지들을 몇 장 주우며 광장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모은 구호들과 카드 자료들을 다시 보며 그날을 떠올린다. 그날 집회에서 만난 거사님의 질문이 귓속에 맴돈다. 스님들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 거사님도 궁금했을 것이다.

▲ 그림 박구원.

그동안 드물지만 면면히 스님들의 사회참여가 있었다. 천성산 도롱뇽, 평화순례108, 4대강 소신공양 등 주로 자연과 환경, 생명과 생태에 관한 논의들이 큰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노동에서부터 사회전반의 이슈에 대한 조계종의 공식적인 사회기구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모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 낯설고 조심스럽지만 희망적이다. 모교인 동국대학교 지도교수님의 수업에서 공업(共業)’에 대한 심도 있는 가르침과 승가가 대사회적 실천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관심 있게 배운 적이 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지만, 많은 이들이 나라고 하는 틀에 갇혀 나와 나 아님을 나누고 집착해 탐진치의 번뇌를 일으켜 고통 받는 삶을 살아간다. 이제는 나라는 굴레를 벗어나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인해 온전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에 나와 다른 이들의 고통과 아픔에 귀 기울여 위로하고 새로운 대안을 고민해 함께 실천해보자.’

수업 당시 그 푸른 마음을 되새겨본다. 사실 이러한 조계종 사회 실천모임도 지도교수님 소개로 알게 되었으니 다른 이의 도움과 은혜에 대한 보답과 감사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자신의 목표성취의 한쪽 면만 고집하고 있었던 그동안의 삶을 반성했다. 절은 세속의 도피처나 은신처가 아니라 잠시 벗어나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이치를 깨우치는 곳이다.

이제는 그 이치대로 실천해보려 한다. 혹 그 거사님을 다시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제가 광장집회에 온 이유는 내 안의 고통을 이해하고 확인하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광장에서 만난 거사님의 고맙고 감사한 질문은 앞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내내 나의 화두가 될 듯하다. 개인수행과 공동의 사회적 실천의 조화를 위해 내딛는 오늘의 한걸음. 어둡지만 밝다. ! 일어나자. 그리고 행동하자!

-고금 스님(조계종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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