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과 현대미술 - 도널드 저드 (Donald Judd)

禪과 空사상 접하며 깊은 감명
수행으로 자신의 내면세계 변화
‘미니멀리즘’ 대표 작가로 성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게’
추상적 개념과 동어반복의 결합
반복 속에 무수한 변화 내재해

▲ 는 도널드 저드의 대표작이다. 미니멀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보여준다.
호흡하는 숨소리가 고요한 가운데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조용한 전시공간에 설치된 작품들은 호흡을 연상시키며 일정한 반복을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 1994, 미국)의 작품을 직접 본 필자의 느낌이다. 고요하나 성성한 적적성성(寂寂惺惺)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미니멀리즘 대표작가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들이다.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던 그에게 선사상의 영향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당시 그가 성장하던 미국 뉴욕의 미술은 유럽의 흐름을 계승하는 부분이 많았으며 일부의 작가들에 의해서 미국적인 특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저드는 모든 것이 이미 지나간 흐름이라는 것을 직시하며 자신만의 창의적인 예술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가 먼저 시도한 것은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었다. 화면을 비우는 것, 형태를 만들지 않는 것, 색을 칠하지 않는 것 등 기존의 가치나 질서들을 무너뜨리게 되는데 그러한 생각의 원류에 공(空)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그가 선사상을 접하면서 받았던 가장 큰 충격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었다. 보이는 것이 공하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상은 그에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도널드 저드는 작가가 무엇을 표현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과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관점이 필요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보고 인식하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명상을 하면서 조금씩 인지하게 되는 것이었다. 조용한 공간에 앉아 자신의 호흡을 관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는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며 고요할 때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호흡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호흡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인지한 그는 이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기 시작한다.

‘동어반복’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형상이나 색채, 물체 등을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였을 때 그 대상이 주는 느낌은 똑같지가 않고 변화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각각의 개체들은 동일한 크기, 동일한 색채, 동일한 재질 등 똑같아 보이는데 그것을 나열하였을 때에는 주변의 영향을 받아 각각의 특성들이 더욱 드러난다는 법칙을 깨달은 것이다.

회화에 미니멀리즘을 도입해 그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하며 개념을 정립한 사람이 도널드 저드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많은 명상과 독서, 관조 등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때문에 작품에 나타나는 특성들이 미세하게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것을 인지하기 위하여 관객 역시 고요하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Untitled, Kupfer, 10 Elemente, je 23x101.6x78.7cm, 1968>는 저드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자신의 예술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미니멀(Minimal, 최소의, 극소의)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구리로 만든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 조각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벽면에 설치되었을 때 각 개채의 특성은 약화되고 변화하는 관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세상은 매 순간 변화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감지하든 못하든 그것은 각 개인의 관점이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작품 앞에 관객이 서 있을 때와 관객이 옆에 서 있을 때, 또는 여러 사람이 서 있을 때 그 벽면에 설치된 구리로 된 사각형의 모습은 변화하며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구리로 된 사각형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그것을 보는 관점에 즉, 주변의 변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널드 저드는 색과 공이 동일하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는 형상은 곧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형상들이 나타나고 이러한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원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끝임 없이 변화하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면 자신은 변화하지 않고 주변의 것들만 변화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즉, 변화의 속도에 따라서 변화하는 형상이나 모습들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빠르게 돌고 있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인식의 변화가 없이는 그 어떠한 변화도 감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점이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믿었던 지동설이 어느 날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역시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변화하는 이치를 알아가는 것도 삶의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저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Untitled, Stahl, 6Elemente, Gesa-mtmass 300x50x25cm, 1989>이란 작품은 앞의 작품과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먼저 재질을 철로 하여 물체나 대상이 반사하지 않으며 또한 시간이 흐름으로 해서 조금씩 부식되어가며 스스로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의 작품은 외부의 다양한 변화에 의하여 작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자체의 변화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관객 스스로의 변화과정을 인지할 것을 요구하며 보다 성숙된 사고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진 저드는 자신의 작품에서도 공은 공 그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상대적 개념의 공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개체들 속에 존재하는 공들이 현재 존재하고 있음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과정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자신의 존재성도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 철로 만들어진 작품 은 시간이 갈수록 부식돼 스스로 변화함을 보여준다.
사라진다는 것은 다시 드러남을 암시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자연의 순환과 삶의 지혜, 정신의 깨달음을 동시에 추구한 저드는 예술가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 선문답을 하듯 자신의 인식들을 예술화하였다. 선문답은 서구인들에게는 비논리, 비합리적으로 인식되었다.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질문과 답변들을 보면서 그들의 합리적, 논리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기 되지 않았던 것이다. 논리를 떠나고 합리를 떠난 자리에 다시 가장 논리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인식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그들에게 저드의 작품은 좋은 수행의 도구가 되었다.

저드의 작품은 마치 선문답처럼 직심(直心)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직심은 지혜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라는 것을 보여주며 나아가서 그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고 호흡하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무엇이 존재하는가? 내가 없는데 무엇이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가? 하고 물으면 독자들은 무엇이라 답변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내가 존재하면 모든 것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가 있으면 모든 것을 올바르게 보고 듣고 말하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존재하든 하지 않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 다만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존재하는 것에 의하여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순간 깊은 호흡으로 자신의 존재를 느껴보자.

아주 작은 의미나 재료들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상의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 동안에 우리는 호흡을 몇 번이나 하며 살아가는가? 호흡은 계속되지만 같은 호흡은 없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이 호흡 하나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호흡을 통하여 인지한 것이다.

호흡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은 사라진다. 호흡이 멈추면 그동안 이어져 오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며 공의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다.

도널드 저드는 미니멀리즘을 예술에 접목시키며 스스로가 미학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하나의 형상, 하나의 크기, 하나의 색등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깊은 호흡이 변화할 때 색(色)의 세계가 공으로 간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동어반복’이라는 미학적, 철학적, 개념적 특성들을 스스로 구축하며 만들어낸 미니멀리즘은 예술의 방향과 개념들을 변화시켰으며 특히 선사상이 확산하는데 커다란 일조를 하였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변화과정에서 오랜시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니멀리즘은 일상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물질에 집착하던 사람들에게 물질은 공허하며 정신의 가치를 추구해야한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독일 베를린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 느껴지던 수행자의 모습이 순간 나의 호흡을 멈추게 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시공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 순간의 느낌이 지나고 다시 밀려오는 깊은 호흡의 숨소리가 전시 공간을 넘어서 인류의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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