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법문

중현 지음|아름다운 인연 펴냄|1만 5천원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지극히 소소한 일상과 수행 시간 넘나드는 그 길은 나 자신서 출발해 내 바깥을 돌아 온전한 나로 이르는 먼 여정.

숲이나 주변 등산로를 거닐다 한번쯤 마주치는 동물 중 하나가 고양이다. 물론 요즘은 애완용으로도 많이 키운다. 한 곳을 가만히 응시하는 그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면 우주처럼 깊고 은하처럼 빛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의 본질을 그 밑바닥까지 꿰뚫어보려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대상으로부터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고 만다. 세상을 다 깨달은 듯 무심한 현자의 표정을 짓다가도 어느 때는 도통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비록 이 가혹한 생존의 길 위에서 힘겹게 삶을 버텨 나가느라 털은 엉클어져 있지만, 제 삶의 느린 걸음 속도를 당당히 유지하는 길고양이들의 자태는 우아하기 그지없다.

길을 가다 문득 마주치는 대상을 잠시 응시하고 이내 모습을 감춰 버리는 길고양이는 그저 자신에게 충실한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쩌면 깨달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깨달음은 특별한 시간과 특별한 공간서 아주 거대한 사건으로 벼락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길고양이처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문득 그 빛나는 눈을 우리와 마주친다. 무심한 기적의 순간이다.

평범한 일상서 발견한 깨달음의 지혜
그러한 기적의 순간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단지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는 일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바삐 지나칠 뿐이다. 불교잡지 〈송광사〉 편집장을 지낸 중현 스님이 송광사보에 연재한 글과 페이스북에 올린 일상 법문을 모아 엮은 이 책은 평범한 일상서 마주치는 귀한 깨달음의 순간들을 따뜻하고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포착해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전남 화순의 고즈넉한 사찰, 용암사 주지 중현 스님은 어느 날 절을 찾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며 인연을 맺는다.

길고양이들은 오란다고 오지 않고 가란다고 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사람의 기대를 쉬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그러니 애초에 먼저 바라지도 않게 된다. 중현 스님은 길고양이들을 지켜보며 문득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즉 집착 없이 베푸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깨닫는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의 바깥, 길 위의 현실은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가혹한 생존의 현장이다. 아파트 경비원이 부당 해고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 세월호 분향소에서 자원 봉사 하던 이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모습, 허망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가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국회의원 앞에 무릎을 꿇는 세태, 극심한 취업난을 겪으며 더 이상 꿈꾸기를 포기해 버린 청년들의 비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과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고달픈 직장인들의 형상은 수행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 속으로만 침잠하는 수행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연대와 공감, 대자비심의 마음을 환기시킨다.

중현 스님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숱한 마음들을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내 바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아프면 남의 마음도 아프고, 남이 고통스러워하면 내 마음도 고통스럽다. 다른 이들이 괴로운데 나만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은 마음과 세상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깨끗이 하는 일이라고 여긴 중현 스님은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뜨겁고 치열하게 세상을 껴안은 삶을 살았다. 1985년 5월 23일, 대학생 83명이 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72시간 동안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 대학생 83명 가운데 23명이 구속됐는데, 당시 고려대 행정학과 3학년 생인 중현 스님(속명 오태헌)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86년 석방된 이후 91년까지 노동 운동을 계속한 스님은 진보적 이론이 개인적인 고뇌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1998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한꺼번에 드러낸 재작년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남을 위해 헌신하겠다’던 젊은 시절 치기 어린 마음을 다시 갖기를, 남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을 잊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온전한 나에게로 이르는 먼 여정
너무나 익숙해서 한 번도 애써 눈여겨본 적 없는 길 위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놓여 있으면 늘 그냥 지나친 그 풍경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에게로만 향한 시선이 세상을 향해 열리는 지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서 이렇게 말한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에 빠져든다.” 걷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나를 열어젖히고, 거대한 자연 풍광서부터 아주 작은 생명까지 세상 만물을 내 몸과 마음으로 환기시키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세갈렌, 랭보,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산책을 즐긴 이유다. 중현 스님 또한 이 책에서 내 마음과 마음 바깥의 소소한 일상, 그 일상 바깥의 복잡한 세상일들을 산책자처럼 거닐며 보물과도 같은 값진 깨달음의 순간들을 독자들의 마음에 던져 놓는다. 긴 여행과 짧은 산책, 지극히 소소한 일상과 깊은 수행의 시간들을 넘나드는 그 길은 나 자신에게서 출발해 내 바깥을 돌아 온전한 나에게로 이르는 먼 여정이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일상을 새로 바라 볼 수 있다면, 그 말없는 풍경은 우리 삶에 무엇보다도 귀한 법문을 들려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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