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대의 SOS

댄 윌리스 지음|김성훈 옮김|불광 펴냄|1만 5천원
소방관, 구급대원, 군인들 현주소
최초대처자 정신건강 유지의 두 축
직장 동료와 가족 지원의 중요성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국가적 재난이나 일상 중에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생명을 보호하고 구조하는 사람을 일컬어 최초대처자(first responder)라 부른다. 이들이 하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 가지 직업 중 하나일 뿐이지만, 여기에는 다른 직업과 달리 특별히 요구되는 자질이 있다. 바로 희생정신이다. 그들은 자기보다 남을 위해 일한다. 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건다.

우리가 매일 안전에 대한 별다른 걱정이나 불안 없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또 어떠한 위기 상황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모두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 덕분이다. 이들은 우리 생명을 지켜주는 익명의 보호자이다. 〈구조대의 SOS〉는 최초대처자들이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 쓰였다. 그들이 직업병처럼 겪는 정신적 외상 문제에 대비하는 법과 치료법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담았다. 이는 현장에 근무하는 최초대처자와 그들의 가족뿐 아니라, 사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한다. 최초대처자들이 건강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찰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매년 200건에 가까운 자살 사건이 일어나며, 은퇴한 경찰관의 자살률은 현직 경찰관의 10배에 이른다. 비단 경찰뿐만 아니라 소방관, 구급대원, 전·현직 군인 등 모든 최초대처자 직군서 유사한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직업상 겪게 되는 각종 심리적 스트레스와 정신적 외상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최초대처자 직군서 심각한 정신건강상의 문제들이 발생한다. 2012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직 경찰관 중 80% 이상이 업무 중 외상 사건을 경험하며, 그중 37%가 높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요인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2,000여 명의 경찰관들이 심리 상담 및 치료를 위해 경찰트라우마센터를 찾았다는 기록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경찰관들이 정신적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소방관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전국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소방관 중 40%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심각한 트라우마 증상을 보인 소방관 비율도 6.3%나 됐다. 이는 일반인의 10배에 해당한다. 알코올 남용이나 수면 장애를 겪는 비율도 일반인에 비해 몇 배 더 높은 수치를 보였으며, 이러한 심리적·정신적 문제들로 인해 우리나라 소방관의 평균 수명이 일반인보다 20년이나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갈수록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소방관 수가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최근 5년간 매년 5명 안팎의 소방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지난해는 자살한 소방관의 수가 순직한 소방관 수보다 무려 6배나 많았다. 이밖에도 총기 사고나 자살 사건 등에 심심찮게 노출되는 국군 장교와 장병들, 매일 응급 환자들을 돌보며 수시로 죽음을 목격하는 구급대원들 또한 정신건강의 사각지대서 남몰래 고통받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최초대처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보아왔다. 최초대처자인 누군가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거나 그로 인해 삶이 피폐해졌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최초대처자로서 그 사람의 역량이 부족했음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직업상 폭력, 죽음에 자주 노출되는 최초대처자들은 정신적 외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허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된다. 그들은 누구보다 건강하고 강인한 몸과 정신을 가졌기에 최초대처자로 선택된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도 한 명의 인간이기에 반복되는 슬픔, 두려움, 공포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영혼이 병들고 만다.

최초대처자는 천하무적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초대처자 직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최초대처자 직군에서는 대개 강인함과 자립심을 제일 덕목으로 가르친다. 그래서 대부분의 최초대처자들은 스스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어야지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약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아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 많은 최초대처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손 내밀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최초대처자로서의 삶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고, 그로써 우리 사회가 유능한 최초대처자를 잃게 만들 뿐이다. 진정한 강인함이란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고 그것을 해결 해 나갈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최초대처자들의 정신건강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일은 직장 동료와 가족의 지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동료와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개발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많은 최초대처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기 꺼려하는 상황서 그들의 아픔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그들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최초대처자 집단서 구성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동료지원팀을 꾸리고 운영하는 방법과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최초대처자인 배우자를 지원하고 보살피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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