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으로 했기 때문에 당신 혼자 한 게 아닙니다!

자기한테 가설이 돼 있으니
자기 스위치를 올릴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우리가 살림을 해 나가면서 도(道)를 구합시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부처님께서 “오신통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천안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천이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타심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숙명통을 한다 하더라도 한단 말을 하지 마라.” 하셨는데 이 뜻이 뭐냐? 듣고, 보고, 남의 속을 잘 알고, 남이 어디서 온 거를 알고,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온다 하더라도 이건 도가 아니니라 하는 뜻입니다. 컵을 만들어서 컵을 들고 물을 뜨고 이런다 하더라도 이건 도가 아니다 이거예요. 물을 떴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다 이거지요.

보세요. 심안으로 본다 하더라도 무효입니다. 심안으로 들었다 하더라도 무효, 보이지 않는 데 오고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무효, 어디서 온 거를 빤히 다 알아도, 남의 속을 다 알고 과거에 어디서 살다 어떻게 온 거를 알아도 무효예요. 왜냐하면 아무리 안다 하더라도 내가 먹을 수 없고 줄 수 없다면 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서로 목이 마른데 물을 떠서 줄 수 없다면, 떠서 먹을 수 없다면 도가 아니니라 이런 소리예요. 컵을 들고 물을 뜨고 자시고 해도 먹을 줄 모른다면 도가 아니니라 이거지요. 갈증을 면할 수가 없으니까요. 먹지 못하면 갈증을 면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주지 못하고 자기도 먹지 못하니 이건 무효다 이거지요. 아무리 물이 있는 걸 볼 수 있고, 가고 옴이 없이 물을 뜰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먹일 수 없고 먹을 수 없다면 이건 도가 아니고 무효니라.

여러분이 모두들 어떡하든지 그저 돈 벌어서 살 궁리만 하시는데…. “그럼 먹고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이러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이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얼른 쉽게 말해서 ‘허! 너 먹을 게 지금 없잖아. 먹을 게 있게 하는 것도 너밖에 없어. 나 혼자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너희들을 대신해서 내가 입도 빌리고 몸뚱이를 빌려서 다 심부름해 줄 뿐이지 너희들이 먹는 거니까 너희들이 먹고 싶은 거 알아서 해.’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이라야 된다 이겁니다.

예전에 말입니다, 한 20년, 25년 전만 하더라도 큰 다라이가, 생철로 되지 않은 다라이가 상당히 귀했습니다. 그래서 ‘다라이 하나를 얻어야 할 텐데….’ 하고 ‘이 집도, 다라이를 얻는 것도 모두 한울에서….’ 하늘에서가 아니에요. ‘한마음 울에서 집도 한 거니까 다라이도 거기에서 해결해. 사람들이 각자 와서 모두 일하는데 다라이가 없으면 안 되니깐 너 알아서 해.’ 그래 버렸지요. 고것이 따지고 보면 자기가 자기를 부리는 법이지마는 자기가 자기를 부려서 그렇게 해 왔다면 자기가 신장이 될 때입니다, 고 찰나가. 그러니까 자기가 신장이 됐다 부처가 됐다 산신이 됐다, 독성이 됐다 용신이 됐다가 지신이 됐다가 조왕이 됐다 다 하는 거지요. 여러분이 다 그렇게 하고 가지 않습니까? 심안의 그 무심한 도리를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그렇게 하고 가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학생들 시험 볼 때가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내 한생각이라고 할 때…. ‘한’이 들어갈 때 전체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한마음 할 때도 ‘한’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자손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기 주인공을 믿고 자기 주인공에다 맡기라고 하십시오. ‘네 심부름을 하려면 네가 합격을 해야 될 거 아니냐!’ 하고 거기 맡기라고 하십시오. 왜냐하면 자기의 영혼의 뿌리는, 바로 자기의 마음의 씨는 보이지도 않고 쥘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마는 저런 나무도 뿌리가 있기 때문에 나무가 푸르르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똑같다는 것을 일러 주십시오.

알아야, 이해가 가야 자기를 진짜로 믿고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영원한 친구고 또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저 뿌리와 나무가 뿌리를 뗄래야 뗄 수 없고 나무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 영혼의 근본 뿌리 자체가 바로 주인공이니까요. 생명의 근본과 마음 내는 거와 육신이 움죽거리는 삼합이 한데 합쳐서 이 세상을 살아나가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바로 주인공이라고 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아이고,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 이러고 ‘주인공! 되게 해 주시오. 주인공! 합격되게 해 주시오.’ 이렇게 하는 것도 기복입니다. 이렇게 해도 될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 이렇게 해 가지곤 도저히 힘들어요. ‘너만이 할 수 있다!’라야지요. 그리고 그렇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분인 것을 알아야 진짜로 믿을 수가 있는 거죠. 자기를 지금 누가 끌고 다니는데요? 자기 운전수가 없으면 차는 그냥 그만이에요. 한 부분만 고장이 나도, 파워를 일으켜도 자기 육신은 쓰러져요. 그런데 자기라고 그렇게 내세울 게 뭐 있어요? 아니, 간장 공장만 파워를 일으켜도 그냥 쓰러지는 사람들이 자기라고 그럴 게 뭐 있느냐고요? 간장 공장만 그런 게 아니라 에너지 피 공장에서도 고장이 나면 백혈병이라 그럽디다. 그러니까 모든 병 자체가 바로 업식 속에서 파워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업식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자기 뿌리에서 흡수해서 나무로 올려 보내는 거와 같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자기의 뿌리인 주인공에서만이 할 수 있죠. 병고도 그렇고 들이고 내는 모든 것이 재료니까, 시험 합격 하는 것도 반드시 거기에 놓고 ‘너만이 합격하게 할 수가 있다. 합격하게 할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네 심부름 하게 하려면 합격되게 해.’ 하고 진실히 그렇게 믿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사람” 이러는 거는 “부처님” 이러는 거와 같아서, 전체 한데 합쳐진 것이 ‘사람’입니다. 개별적으로 하나가 있는 게 사람이 아니고 한데 모여서 형성된 형체를 바로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라 가정에서 침체해서 돌아가는 거라든가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거라든가,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마음을 잡아야 육체가 잡아지는 법입니다. 자식들이 어떠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부모자식지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내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달이 돼서 같이 의합하게 돌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화목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몸을 잡는 법이니까요. 자기한테 가설이 돼 있으니 자기 스위치를 올릴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우리가 살림을 해 나가면서 도를 구합시다.

도를 구하는 건 여러분이 마음으로 그렇게 실천을 해 나가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거기다가 맡겨서 스위치를 올려서 불을 켠다고 해서 거기다가만 그렇게 하고 말은 막 하고 막 악을 쓰고 막 신경질을 부리고 속을 북북 긁어 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관한다고 하면서도 만약에 자식들이 나가서 자고 들어온다거나 공부를 안 한다거나 마구 딴 짓을 한다거나 이런다고 “너 이놈의 새끼, 뭐 어쩌고 어쩌고….” 하면서 도로 뛰쳐나갈 수 있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맡겨 놓고 ‘이거는 모든 게 내 탓이로다. 상대방의 탓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낳고, 내가 인연을 맺었고, 또 부모로부터 내가 나와서 이렇게 형성이 되었으니까, 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나하고 부딪침이 있고 나하고 인연이 된 거지 내가 없는데 어찌 인연이 됐겠나. 그러니 모든 게 내 탓이로다.’ 그러고선 ‘모두 저렇게 안 되도록 하는 것도 너밖에 없다.’ 하고 자기한테 다 놓고 부드러운 말을 해 주면서, 부드러운 행을 해 주면서, 증오하지 말고 미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마음속으로 그렇게 행한다면 그쪽까지도 불이 들어옴으로써 그쪽까지도 나한테 조건 없이 사랑을 할 수 있는 화합심이 생기고 자식들도 그 마음이 바뀌어서 아주 출중한 효자 효녀들이 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겁니다.

우리 생활 떠나서 부처님 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없이 부처님이 어디 있으며 불법이 어디 있으며, 생활이 없이 어떻게 부처님 법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 법이란 부처님이 따로 있고 우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부처고, 부처님도 마음이 부처이기 때문에 그 마음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같이 공생·공용·공체·공식화 하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처님과 더불어 같이 마음을 한데 합한 것이 부처님이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부처님이죠. 여러분도 부처님인데 자기의 몸속에 들어 있는 그 자생중생들을 다스리질 못하기 때문에 중생이다 부처다 하는 거죠. 그러니까 중생 부처가 같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고거를 잘 다스려서 한군데서 나오는 거 한군데다 놓고 돌아간다면 바로 부처가 되고 법신이 되고 응신이 되고 보현이 되고 관세음이 되고 지장이 되고 칠성이 되고, 자동적으로 자유껏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것이 여러분입니다.
이제 질문하실 분 있으면 질문하십시오.

질문자1(남) 먼저 큰스님을 모시고 질문드리게 됨을 제 자신의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시장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업상 조금 의문 되는 점이 있기 때문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자기에게 닥쳐오는 모든 경계를 주인공에 믿고 놓으라고 항상 저희에게 가르치십니다. 저희는 사회에서 온갖 경쟁 속에 분초를 다툴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쟁 입찰이나 공매 등 이권이 있을 적에 내가 이득을 취하면 상대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니 자리이타의 행위에 어긋날 수도 있으며, 주인공에 믿고 놓아 욕심을 내지 않자니 사회 활동에 소극적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하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수행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활용 불법에 대하여 설하여 주십시오.

큰스님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다 놓으라고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욕심도 부려야 하는데 어떻게 다 놓겠습니까?” 하는 소리죠?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도 얘기했죠. 내 몸속에 내가 얼마나 많은데 나 혼자 하는 거냐. 여러분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몸속의 생명들을 끌어낸 겁니다. 보십시오. 혼자 한 겁니까? 심부름한 거지요. 돈을 버는 것도 그 생명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심부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을 못 벌게 해서 너를 굶주리게 하는 것도 너고, 돈을 잘 벌어서 너를 잘 먹이게 하는 것도 너다 이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자기가 한 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49년을 설하실 때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착하게 그냥 목석처럼 가만히 있어라.” 이러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착한 일을 하되 함이 없이 해라. 네가 한 게 아니라 진짜 네가 한 거니라.” 그랬죠? 네가 한 게 아니라 네가 한 거니라. 그렇다면 개별적인 네가 한 게 아니라 포괄적인 네가 한 거다 이 소립니다. 포괄적으로 했기 때문에 당신 혼자 한 게 아닙니다. 살 양으로, 혼자 먹으려고 혼자 누리려고 한 게 아니고 공동으로 포괄적으로 한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했다’ 하지 말고 ‘한마음 속의 주인공이 하는 거니까 나는 심부름만 이렇게 해 준다’ 한다면 그렇게 남한테 아주 악의적으로 사기질을 안 해도 되고, 또 사기질 하지도 않을 것이요 또는 버리지도 않을 것이요, 잘 아주 규모 있게, 즉 말하자면 중도에서 잘 이끌어 나갈 겁니다. 그래서 ‘함이 없이 하시라’ 이거지 ‘꼼짝 않고 목석처럼 가만히 있어라’ 이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한마음이 하는 거니까요. 당신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한마음이 하는 거니까 주인공이 하는 거다.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주인공이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이래도 알아듣지 못하시겠습니까? 이 물을 먹으면서도 먹은 사이가 없다. 내가 혼자 먹은 사이가 없다, 여럿이 먹었기 때문에. 보세요. 내가 물 한 모금을 먹어도 혼자 먹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냥 여럿이서 다 먹고 있죠, 지금. 그리고 여럿이만 먹습니까? 내가 먹어서 똥 누고 오줌 눈 거를 또 다들 먹고 또 내놔요. 내놓으면 또 수증기가 돼서 올라가서 또다시 내려와서 또 먹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먹으면 나오고 나오면 서로 먹고, 서로 다 같이 먹습니다.

이 미묘한 도리를 알아서 챙긴다면 ‘모두 함이 없이, 내가 하는 바가 없이 하는 것이고 내가 심부름을 하는 것이고 관리인이고 집합소다. 난 집일 뿐이야. 그러니까 생명들이 살고 있는 이 집이 망가져도 너희들이 고쳐. 너희들이 고쳐서 살아.’ 이런 거나 한가지죠. ‘주인공! 너 알아서 해! 고쳐!’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이치에 닿나 안 닿나 좀 보세요. 우리가 이 집을 지어 가지고 사는데 만약에 집이 헐어졌다면 이 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고치지 집이 집을 고칩니까? 네? 자기네 몸뚱이가 자기네 몸뚱이 속에 있는 생명체들의 집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네들이 들어 있기 위해 형성을 시켰으니 고장이 나면 그 집에 들어 있는 자기 주인들이 고쳐야지 아니, 집이 집을 고칠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모든 것을 거기다 맡겨라 이런 소립니다.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큰스님 그러니 벌이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지 말라는 소리도 아닙니다. 하되 자기가 했단 말을 하지 말라 이거죠. 하하하….

질문자2(여) 큰스님, 감사한 말씀 드리려고 왔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데요, 안양 선원에 나간 지는 4개월 됐습니다. 근데 몸이 아파서 늘 고달프다가 요즈음은 건강해졌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 여쭙고 싶은 거는 한 한 달쯤 전이에요. 선원에 나가려고 지하철역에 나갔는데요, 그때 갑자기 ‘아, 그렇다. 아, 당신이야! 정말 맞아!’ 이렇게 하면서 자문자답을 했어요. 근데 그 후로부터는 그만 깜깜해요. 그건 어떻게 돼서 그런 건지요.

큰스님 수행의 길이, 즉 말하자면 시발점에서는 차를 타고 잘 갔는데 종점에서 내리니까 까맣더라 이런 거나 같죠. 그럼 다시 올라타야죠.

질문자2(여) 그럴 땐 어떻게 하면 됩니까?

큰스님 하하하…. 그 깜깜하게 된 것도, 바로 그놈이 차를 타고 가다 내렸으니까 차를 또 되타고 본고장으로 오는 것도 바로 그놈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놈한테 다 맡기고 ‘어, 내리게 한 것도 그놈이고 다시 올라타게 하는 놈도 그놈이구나.’ 이걸 아셔야죠.

질문자2(여) 네. 알겠습니다.

질문자3(남) 먼저 큰스님께 질문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한마음 공부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 다 생각해 본 사항이기에 제가 오늘 스님께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들은 열심히 실행을 해 볼 양으로 온갖 세상일에 한마음을 일으켜 봅니다. 비가 많이 오면 비가 그치도록, 태풍이 심하면 바람이 자도록, 가난한 이를 보면 복을 받도록, 병든 이를 보면 병이 낫도록, 한마음 공부 하는 사람이면 다 누구나 그런 마음을 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의치가 못합니다. 부처님이나 도인 스님의 마음 씀은 곧 법이 되어 그대로 이루어지는데, 주처에 믿고 맡겨진 무심의 한생각으로 그런 법력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저희들은 무엇이 부족하여 잘 되지 않는지, 그 차이점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큰스님 그럽시다. 본래는 말입니다, 깨친 역대의 조사들이나 부처님들은 곳곳마다 살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공부하시면서 언젠가는 땅을 치고 울 때가 있고 하늘을 보고 기가 막혀서 웃을 때가 있을 겁니다. 다들 공부하시다 보면 그럴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러냐? 즉 말하자면 “마음을 공부해서 증득했다. 그런데 증득한 것도 없다.” 이런 도리는, 마음은 체가 없어서 마음의 씨를 아무리 많이, 헤아릴 수 없이 내놔도 내놓은 사이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물에 가면 용신이 돼 버리고, 지금 부처님들 그 모두가 용신이 돼서 살고 있고 지신이 돼서 살고 있고, 각계각층의 곳곳마다, 혹성마다, 태양계도 그렇고 어디든 다 직결이 돼 있고 어디든 살고 있는 겁니다. 뜨겁다고 하는 혹성에도 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내 한마음이 탁 일어났다 하면 그냥 내가 용신이기 때문에, 하하하…, 예를 들어서 우산을 받쳐 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비가 오면 안 될 때에는 그 근방만 안 오게끔 우산을 받쳐 줄 수 있죠, 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도 그 무명을 벗겨 주는 데는 가다가 보고 들었으면 그냥 그냥입니다. ‘그거를 해 주시오’ 뭐, 이러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대로 건져집니다. 그러니까 그런 소나 돼지는 도살장에 끌려가서도 아픈 걸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명이 벗겨집니다. 왜냐? 그 의식을 빼냈기 때문이죠. 마취한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건진다고 하는 것이 그냥 무명을 벗겨 주는 것만이 아니라 무명을 벗겨 주었으면 사람으로, 사람으로 해 줬으면 아예 한마음 도리를 알게끔 해 주는 것이 옳죠. 그렇기 때문에 “마음공부를 해라” 이러는 겁니다.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 그렇게 되는데 사람들이 모두 “왜 나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느냐?” 이러죠. 그런데 자기가 해 준다고 하니까 안 되죠. 내가 여직껏 얘기했지 않습니까?

내 몸뚱이 속에 내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해 준다’가 있습니까. 나라는 게 간장 공장에도 있고 방광 공장에도 있고 척수 공장에도 있고 척추 공장에도 있고 심장 공장에도 있고 콩팥 공장에도 있고 식도 공장에도 있고 전부 공장마다 내가 있는데, 내가 했다고 ‘내가 이거는 꼭 해 줘야겠다. 이런 마음을 내 줘야지.’ 하니까 안 되죠. 한마음으로 들어 줘야 되는 건데 말입니다. 우주 전체가 들어져야 되거든요. 그런데 자기 혼자만 들고 있으니 그게 될 일이 있어요? 네? 그래서 나를 빼놓고 해라. 나를 빼고 더불어 같이 해야 된다. 나라는 게 있으면, 나 혼자 개별적으로 뭐를 하려면 절대로 되지가 않는다. 내 한마음이 듬뿍 들려야 우주간 법계에 한마음으로 되는 것이고, 산천초목도 전체가 한마음이 돼야만이 된다 이겁니다.

그럼 여러분과 약속할 것은요, 여러분이 진짜로 어항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계기를 마련하려면 아주 반드시 ‘마음은 체가 없구나. 마음이 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됐다 저게 됐다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구나.’ 하는 거를 느끼고 알아서 실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정 빼놓고 내 몸 빼놓고 무슨 종교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출중하고 여러분의 가정이 화목하고 또는 병고가 없고 애고가 없고 그래야만이 나도 편안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뭐, 기도한다고 집을 비우거나 해서 애들 밥을 지어 주지 않는다거나 또는 남편 음식을 소홀히 생각한다거나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집안 가사를 잘못한다든가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가정을 빼놓고 종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사시는 데 좀 더 너그럽고 화합해서, 또 애고가 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이 마음공부를 하는 거니까요.

※위 법문은 1993년 8월 15일 광명선원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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