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초복·중복·말복을 거치며 개 식용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우희종 서울대 교수가 818일 열린 ‘2차 생명포럼 세미나서 인간 의식의 성숙에 따라 개 식용도 점차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주

최근 개식용의 식습관이 점차 혐오 시 되며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개식용 금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종종 접하는 개식용 찬성 논거는 우리 민족의 전통 식습관이다. 또는 개고기가 몸에 좋아서 환자들의 회복이나 원기 보충에 좋다는 이유 정도다. 경우에 따라선 농장동물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왜 개식용만 반대하느냐는 반응도 접하게 된다. 인류나 한반도 역사를 볼 때 기근 등의 자연재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극심한 심량 부족을 겪을 때가 많았고, 근대 산업화 이전엔 결코 식량이 풍부하지 못했다. 이처럼 기근 상황서 생존을 위한 개식용이라면 누구도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먹거리가 풍요로워져 만성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고기 식용을 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해 종교계나 정치권, 동물보건복지를 표방하는 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이 별로 없었다.

모피를 그토록 좋아하는 서구문화에서도 점차 모피를 입지 않는다. 또 스페인의 전통 스포츠이자 헤밍웨이가 그토록 좋아했다는 투우도 이제는 동물학대란 시각에 근거해 자체적으로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과거 인류에겐 노예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그것을 전통이라며 고집하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석게 보일 것인가. 인간 의식의 성숙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처럼 연동되어 변하는 것이고, 이제 개식용을 비롯한 육식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질 시점에 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이미 먹거리가 부족한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서구식 과도한 영양상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시대나 환경이 바뀔 때 우리의 인식과 전통도 그에 걸맞게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개식용이나 육식 논란에서 무엇보다 강조해야할 것은 생명체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Compassion)의 소중함이다.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가 약육강식의 형태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생존이 다른 생명체의 희생에 의존하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포장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과정서 발생하는 고통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고통에 대한 인식과 인간 존중 의식의 확장에 따라 노예제도가 사라졌듯 생명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의 확장은, 자연스레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며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반려동물인 개를 먹는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과의 공감능력이 가장 잘 이뤄지는 동물이 개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많은 부분 인간이 지닌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에 의한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소통능력이 우리사회를 풍요롭게 하며, 사람이 살만한 사회로 만든다는 것은 누구도 인정할 수 있다. 반려동물인 개마저 먹거리로 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삶에서 공감과 소통을 함께 할 대상 중의 하나를 갖지 못한단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비록 개보다는 인간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농장동물에 있어서도 생명의 고통에 대한 기본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반려동물 식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언젠가는 농장동물의 희생을 방지하는 육식반대 움직임으로 확대 발전될 필요가 있다. 생명이 지닌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에 따른 점차적 육식 극복의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이제 지구 생태계의 일원인 인류는 그 공감능력을 지구 생태계로 확장할 때가 되었다. 동물을 단지 인간의 먹거리로만 생각하던 문화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동물로 이뤄진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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