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그 형상을 거의 모두 사라지게 했지만 바위에는 분명 부처가 새겨져 있었다. 일부 남아 있는 옷의 주름과 수인, 광배가 흐릿한 윤곽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절집에 있는 오래된 석물과 마애불을 좋아한다. 특히 폐사지에 남은 석불은 남아 그 자리의 시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의 얼굴이 거의 남지 않은 마애불, 흐릿한 연꽃문양, 날개의 일부가 남은 비천상 등을 보면서 그 자리에 있었을 과거의 시간을 상상하고, 내 마음대로 그 빈자리를 그려 넣는다.

마애불 아래 절을 올리는 젊은 스님의 뒷모습에서 문득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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