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열전- ⑮ 수연(守衍) 스님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으로 참전해
終戰 이후 불상 조성 불사 ‘활발’
왜구 침략 소실된 사찰 불상 조성
호남 거주·서해안 중심으로 활동

17세기 전반 수연 스님이 만든 대표작인 1619년 서천 봉서사 목조석가여래좌상(사진 왼쪽)과 1639년 예산 수덕사 봉안 목조석가여래좌상(사진 오른쪽)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에 소실된 사찰의 중창과 중수는 17세기 전반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시기 사찰의 복원은 명산대찰을 중심으로 주요 전각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사찰 내 전각은 종품(宗風)이나 승려와 신도들이 필요로 했던 신앙(信仰)의 대상부터 건립되었다. 전각 건립 후에는 불상, 불화, 범종 등이 봉안되면서 민중의 귀의처로서 역할을 했다.

1600년대부터 1630년대 불교 조각계는 십여 명의 조각승을 중심으로 불상의 제작이 이루어지는데, 그 가운데 서해안을 따라 불상을 만든 대표적인 조각승은 수연(守衍) 스님이다. 스님은 서천 봉서사 불상을 만들면서 증명으로 참여하거나 강화 전등사 불상 대좌에 “수취사대덕수연(首就師大德守衍)”으로 적혀 있어 당시 불교계에서 지혜와 덕망이 높은 승려로 존경받던 스님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수연 스님이 만든 불상은 8건 50여 점이 조사되었다.

조각승 수연 스님의 생애와 승려 장인이 된 배경에 대하여 알려진 바가 없지만 불상에서 발견된 문헌과 사찰의 연혁을 적은 사적기(寺蹟記)를 통해 활동 시기와 내용, 조각승 계보 등을 추정할 수 있다. 수연 스님은 1615년에 수화승 태전(太顚) 스님과 전북 김제 금산사 독성상을 조성하였다. 이 독성상 제작에 참여한 태전 스님, 응원(應元) 스님, 법령(法令) 스님, 인균(印均) 스님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들이다.

수연 스님은 수화승으로 만든 충남 서천 봉서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네 명의 조각승과 만드는데. 이 불상은 1618년 8월부터 1619년 정월까지 6개월이 소요되었다. 또한 수연 스님은 불상 조성 시 증명까지 맡은 것을 보면, 1610년대 후반 이미 상당한 지위와 실력을 갖춘 승려로 추정된다.

이후 스님은 1622년에 왕실에서 발원한 한양 도성 북쪽에 있던 내원당(內願堂)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할 11구의 불상을 당대 최고의 조각승인 현진 스님, 응원 스님, 법령 스님 등과 조성하였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이 서울 동대문 지장암에 봉안되어 있다.

또한 수연 스님은 1623년에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불상을 제작하였는데, 전등사를 중건한 지경(志敬) 스님과 불상 제작에 화주를 맡은 홍민(弘敏) 스님은 모두 부휴문도(浮休門徒)에 속하는 승려들이다. 화주인 홍민 스님은 1619년에 수연 스님이 제작한 서천 봉서사 목조삼존불좌상 제작 시 반두(飯頭, 식사를 담당하는 직책)로, 1639년에 청헌(淸憲) 스님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경남 하동 쌍계사 불상 제작 시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그의 영정(影幀)은 충북 보은 법주사 조사전에 봉안되어 있다.

수연 스님은 1625년에 전남 나주 쌍계사 목조석가오존상과 나한상 등(나주 다보사 봉안), 1634년에 전북 옥구 보천사 목조지장보살좌상와 시왕상(익산 숭림사 봉안), 1636년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좌상와 시왕상, 1639년에 남원 풍국사 목조삼세불좌상(예산 수덕사 봉안)을 제작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수연 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스님은 1570년대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의승군으로 활동한 뒤, 1615년 이전부터 불상 제작에 관여하였다. 스님이 불상을 제작한 사찰은 김제 금산사, 서천 봉서사, 서울 자수사와 인수사, 강화 전등사, 나주 쌍계사, 옥구 보천사, 남원 풍국사 등이라 서해안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수연 스님의 활동 시기는 1615년부터 1639년까지다.

수연 스님의 스승이나 선배로 추정되는 태전 스님은 1601년부터 1635년까지 수문(守文) 스님과 금산사를 중건하였다. 당시 금산사는 전북지역에서 의승군의 총본산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런 이유로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 등의 중창이 이루어졌다. 태전 스님이 수화승으로 만든 불상은 1612년에 전남 해남 대흥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을 조성하였다. 태전 스님은 김제 금산사 중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아 전북에 거주한 스님으로 보인다.

수연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태전(太顚, -1600-1615-) → 수연(守衍, -1615-1639-)→ 성옥(性玉, -1619-1625-), 영철(靈哲, -1623-1649-), 성민(省敏, -1634-1639-) → 운혜(雲惠, -1649-1680-), 경림(敬琳, -1665-1680-)→인성(印性, -1660-1753-), 삼안(三眼, -1678-1740-) 등으로 이어진다. 수연과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은 17세기 불교 조각계를 주도하던 작가들이다. 수연 스님이 만든 대표적인 불상은 서천 봉서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다. 불상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된 삼존불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96㎝의 중형불상이다.

불상은 약간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목이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머리는 뾰족한 나발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로 표현되고, 육계 밑에는 머리 정상부에 반원형의 중앙계주와 정수리 부위에 원통형의 정상계주가 있다.

타원형의 얼굴에 반쯤 뜬 눈은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갔고, 코는 콧날이 뾰족하며,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오른손과 왼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은 채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어 아미타수인(阿彌陀手印)을 취하고 있다. 대의자락은 오른쪽 어깨에서 가슴까지 사선으로 접힌 옷깃이 부채 살처럼 늘어지고, 나머지 대의자락은 오른쪽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은 대의자락은 복부에서 편삼과 접혀 U자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복부에서 직선으로 길게 늘어진 두 번째 옷주름이 가장 위쪽에 놓여 있고, 끝부분이 역삼각형(▽)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끝부분 처리는 현진(玄眞) 스님이 제작한 1626년 보은 법주사 불상과 1633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삼존불좌상 등에서 볼 수 있어 17세기 전반에 유행한 옷 주름 표현으로 보인다. 왼쪽 무릎을 덮은 소매 자락은 잎사귀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가슴까지 올려 끝부분이 대각선으로 접혀 있다. 불상의 측면은 어깨선을 따라 한 가닥의 옷 주름이 수직으로 내려와 끝부분이 ‘ㅈ자형’으로 마무리되었다.

협시보살은 신체와 의습 처리에서 본존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화려한 보관을 쓰고, 끝부분에 술을 매단 ‘X자형’의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은 수인이 대칭을 이루고, 왼쪽 팔뚝을 따라 한 가닥의 ‘옷 주름’이 사선(斜線)으로 내려와 끝부분이 꽃잎 모양으로 둥글게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 주름’ 표현은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불상에서 왼쪽 팔뚝에 수직으로 내려오던 옷자락이 옆으로 표현된 것이다. 또한 대의 안쪽에 입은 편삼이 대의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면서 넓게 펼쳐진 점이 가장 특이하다.수연 스님이 1639년에 만든 전북 남원 풍국사 목조삼세불좌상(예산 수덕사 봉안)은 본존이 높이가 155㎝이고, 협시불상은 145㎝인 중대형 불상이다. 이 불상은 서천 봉서사 불상, 강화 전등사 불상, 익산 숭림사 봉안 지장보살상과 전체적인 형태가 유사하다. 특히 서천 봉서사 불상보다 얼굴이 조금 작아지고, 몸이 가늘어진 것을 제외하면 신체 비례와 옷 주름 표현 등이 동일하다.

1623년 조성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여래좌상 대좌의 조성묵서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예를 들어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자락이 1619년 서천 봉서사 불상과 같으면서 끝부분이 U자형으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고, 1623년 강화 전등사 협시불과 달리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이 복부에서 수직으로 내려와 끝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었다.

수연 스님이 제작한 불상은 90~155㎝ 정도의 중형 목조불상을 주로 제작하였다. 그가 제작한 불상의 신체비례는 높이와 무릎 너비의 비율이 서천 봉서사 불상(1619년)보다 예산 수덕사 불상(1639년)이 줄어들었다.
서천 봉서사 불상은 인상(印象)이 넓은 이마에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얼굴 중앙으로 몰려 있고, 코는 짧고 뾰족한 편이다. 오른쪽 어깨에 짧게 걸친 대의자락의 형태는 서천 봉서사 불상과 강화 전등사 불상(1623년)이 대의 끝단이 동일한 위치에 펼쳐져 있고, 익산 숭림사 보살상(1634년)은 대의자락이 목에서 팔뚝까지 거의 45도로 완만하게 늘어져 있으며, 예산 수덕사 불상은 옷깃이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서천 봉서사 불상, 익산 숭림사 보살상, 예산 수덕사 불상이 배에서 가운데로 길게 늘어진 두 번째 옷자락이 가장 위에 펼쳐져 있고, 끝부분이 역삼각형, 사다리꼴형, 원형으로 처리되어 같은 시기에 제작된 불상의 옷주름 표현과 다르다.

그러나 왼쪽 무릎 위에 늘어진 소매 자락은 익산 숭림사 보살상에서 사선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끝이 뾰족한 반면 예산 수덕사 불상에서는 넓고 길게 펼쳐져 있다. 마지막으로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 표현은 강화 전등사 불상의 본존만 연판문(蓮瓣形)으로, 다른 불상은 수평이나 사선으로 접어 간단하게 표현하였다.

수연과 그 계보 조각승이 제작한 불상 양식을 바탕으로 전국 사찰 전각에 봉안된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불상 가운데 17세기 전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은 전남 장성 백양사 극락보전, 전북 정읍 내장사, 전북 군산 상주사, 전북 김제 문수사, 전북 완주 화암사 명부전, 경기 가평 현등사 극락전, 성남 봉국사 대웅전 등에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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