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장난이 아니다. 더워도 너무 덥다. 우리만 더운 것이 아니다. 지구촌 전체가 더위와의 전쟁이다. 세계기상기구는 올해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로 예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중동과 인도가 50(쿠웨이트가 54), 중국이 40도이고, 일본·미국·우리나라도 32도에서 38도이다. 기상청은 연일 전국 폭염특보를 내리고, 내일이 더위의 절정이라고 한다. 어제 대구는 36도를 기록했다.

도심 상가는 문을 열고 냉방문을 닫아두면 외국인 관광객이 기웃거리다 그냥 가버린다고 한다.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좋지 않아 어려운데 최악의 상태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나 슈퍼 엘리뇨를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또 내년에도 더위는 계속될 것이고 새로운 기록을 갱신할 것이다. 모든 종교가 지옥에 대한 묘사를 뜨거운 불속에서 받는 고통으로 묘사하고 있다. 초열지옥, 화탕지옥, 폭염지옥이다.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지 않고 석유와 석탄으로 오염시킨 인과응보이요, 자승자박이다.

우리 집안에 불길 속에서 연꽃이 피는 도리가 있다는 말을 생각하며 어제 한낮에 건대전철역 앞을 지나가는데, 젊은 청년이 전자기타를 켜고 팝송을 부르는데 그 모습이 무아지경이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젊은 놈이 더위를 먹고 저러나라고 생각했다가 저 청년이 10년 후에 방송국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20년 전 산동성 제남시 산동대학교 기숙사에서 7, 8월 한 달 동안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서 자신의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고비를 잘 극복하면 인생이 성공하고 실패하면 무너진다.

대학박사생전형위원회에서 나를 박사연구생으로 특별입학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회의를 하는데 한 달 동안 진행하였다. 그 동안 주래상 박사도사교수가 준 중국 문예미학책을 읽고 요약하면서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제남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4대 가마솥(난징·충칭·우창·제남)이다. 우리나라 대구처럼 분지이기 때문에 밤낮없이 끓는다. 열대야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자다가 일어나 하루 밤에 4번 샤워를 해야 했다. 한 달 만에 10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빠졌다. 당시 전력 사정이 열악하여 냉방이 있는 곳은 호텔뿐이다.

나에게 40도의 더위를 견뎌내는 일은 하루하루가 한계상황이요, 고행이요 수행이다. 아내와 두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서 이대로 물러나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두려움과 무기력에 빠지게 될 때마다 금강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전신인 인욕선인(忍辱仙人)의 가르침으로 버텨내고 기다렸고 이겨냈다.

가마솥처럼 끓는 제남에도 피서정토가 있었다. 천불산 만불동 동굴이다. 중국 4대동굴의 불상을 재현해 놓은 거대한 동굴이다. 노나라와 제나라 때 전쟁용 동굴이라고 한다. 동국 입구를 철문으로 닫으면 수소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는 요새동굴이다. 나는 이곳을 알게 된 후에는 매일 아침에 택시를 타고 와서 아무도 없는 동굴 법당서 목탁에 맞춰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앉아서 명상을 했다. 앉아서 선정 모양만 했지 만 가지 상념이 머리속에서 교차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인욕 공능(功能)의 힘은 제남에서의 40도 폭염 속에서 한 달 동안 체험한 중국 문예미학의 독서와 만불동 법당에서 했던 참선 수행의 공덕이다. 필자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다.

폭염을 피해서 신선으로 사는 길은 가족과 함께 도심을 떠나 산사를 찾는 템플스테이이다. 더위도 피하고 마음도 다스리는 일석이조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역시 여름 독서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시원한 가을에는 책을 별로 읽지 않고, 더운 여름에 집에 틀어박혀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한다. 감옥에서 독서도 있고, 폭염을 피하는 독서가 있다. 밖으로 날뛰면 더위에 맞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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