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학회, 7월 29일 ‘만해 한용운과 영암’ 주제 세미나

[현대불교= 신성민 기자] 조영암(趙靈巖, 1918~2001?)은 건봉사 출신 시인으로 매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다. 관련된 몇몇 행적을 찾아보면 기이함이 있다. 하지만, 그는 매우 개성 넘치는 선시를 썼고, 종군작가로 활동했다. 말년에는 참선 수행에 매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봉사서 출가, 백초월에게 수학
만해 영향으로 시 창작 계보이어
만해 서술, 조지훈보다 5년 빨라
관음사상 수용, 말년엔 참선 수행

시인으로서의 조영암이 만해 스님의 문학적 계보를 계승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광식 동국대 교수는 7월 29일 열린 만해학회 제16회 학술세미나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조영암 연구, 서설(序說)’ 주제의 논문에서 조영암의 불교사상과 불교 행적, 문학 계보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영암은 1918년 5월 27일 강원도 회양군에서 출생해 15세 때인 1932년 건봉사로 출가했다. 출가의 길을 가던 그는 건봉사가 운영한 신식학교인 봉명학교에서 공부했고, 여기서 신학문을 배우면서 문학도의 꿈을 키운다.

실제, 조영암과 함께 수학한 박설산의 회고록에는 당시 소년회 문예부장을 맡고 있던 조영암이 건봉사를 찾아온 만해 스님에게 시와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장면이 있다. 봉명학교는 1936년 일제의 외압으로 문을 닫게 되지만, 조영암은 종비 장학생으로 1941년 혜화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입학한다.

김 교수는 “조영암은 혜화전문에서 문학의 꿈을 키웠고, 그는 건봉사 출신 문인이면서 동국문학과도 연계된다”고 봤다.

이어 “조영암은 건봉사 시절, 만해 스님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아 시인이 됐다”면서 “이는 건봉사 출신 문학인들의 탐구 만해학, 만해문학의 계보에서 결코 배제될 수 없다. 그럼에도 조영암이 만해문학의 계보에 주목되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만해 선양 연구 1세대로 조지훈을 꼽는 것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이의를 제기했다. 조영암이 먼저 만해 스님에 대한 글을 썼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영암이 <죽순>11집에 쓴 ‘哭 한용운 스승님:伍周忌를 當하야’를 해방공간인 1949년에 썼다. 이는 조지훈보다 5년이 빠르다”면서 “만해 연구에 있어서 조영암의 글도 기본자료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영암의 불교사상에 대해 김 교수는 “조영암은 신앙, 수행, 사상적 측면에서 관음사상을 철저히 수용했다. 그러면서도 말년에는 간화선에 매진했다”면서 “향후 그의 불교사상을 보편적 시각에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날 세미나에서는 △박옥실 아주대 교수의 ‘만해 한용운과 시적계보 탐색’ △이경호 서울교대 교수의 ‘전쟁문학에 나타난 조국애의 성격’ △백원기 동방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조영암의 선시 세계’ △한명환 순천향대 교수의 ‘조영암의 <신 임꺽정 전> 연구’ 등이 발표됐다. 토론자로는 김익균(성균관대), 전기철(숭의여대), 오태환(고려대), 장영우(동국대)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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