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홍룡사

홍룡사 관음전 옆 폭포가 세속의 번뇌를 모두 씻어버릴 듯 흐르고 있다. 양산 8경 중 4경으로 물이 많을 때는 물보라가 무지개를 만든다.
수많은 불교설화가 있는 천성산엔
한줄기 폭포 품은 사찰 홍룡사가
임란 당시 전소… 1910년 중창돼

양산 8경 중 4경 홍룡폭포 ‘매료’
무지개 타고 하늘 오른 天龍은
물이 많은 날엔 무지개를 만든다

 

“부채질하기도 나른하여 / 푸른 숲속에서 웃옷 벗고 / 두건도 벗어 바위에 걸쳐두니 / 드러난 이마를 솔바람이 씻어낸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하일산중(夏日山中)’이다. 시인은 더위를 잊기 위해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더위가 시작된 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문명의 발달로 간단히 더위를 잊을 수 있게 된 오늘날이지만 더위를 잊기 위해 자연을 찾는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땀을 흘리며 자연을 찾아간다. 육체의 땀을 흘려서라도 기어이 푸른 숲을 찾는 것은 육체에 쌓인 더위와 아울러 마음에도 더위가 쌓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더위는 문명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속의 더위를 끊어내야 한다면 눈앞에 죽비가 걸려있고, 길목마다 향 내음 가득한 산사로 가자.

 

계곡속에 웅장함을 보여주는 흥룡사 대웅전의 모습.
폭포가 있는 홍룡사
경상남도 양산시 천성산 기슭.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해지는 관음전 불단 위에선 맑은 향이 타오르고 문밖으로 날아간 향 연기 끝엔 한줄기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홍룡폭포가 있는 홍룡사다.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는 길에 정자가 하나 있다. 1918년에 가선 대부 석은 이재영과 죽우 권순도가 함께 세운 가홍정(駕虹亭)이다. 원래의 건물은 아니고 1970년대에 복원한 건물이다. 당시 이재영은 한가한 자리를 찾아 자취를 끊고 이름을 숨기고자 했다. 그가 찾은 은거지가 지금의 가홍정이다. 이재영이 저술한 <가홍정원병서>에 시가 한 수 있다.

“천성산 그림 같고 골짜기는 푸른데 / 한 물결 무지개 폭포 신령한 구역을 깎아냈네 / 특별한 곳에 우레 울리니 맑은 낮에 비가 오고 / 위태한 바위에 꽃이 피니 저녁 구름이 가리네 / 몇 칸 엉성한 건물 누가 될 법하지만 / 반세상 찌든 근심 일깨워 줄 만하다 / 고마워라 동남지방 지나가는 과객들 / 올라오는 패옥 소리 모두가 난초향기로다.”
정자에 앉아 지친 무릎 위로 시 한 수를 떠올리면, 시원한 바람이 구름을 몰고 지나간다. 가홍정 옆으로 아담한 쉼터가 있다. 벤치에 앉으면 작은 숲과 마주하게 된다. 나무는 매순간 자라고, 나뭇가지로 몸을 가린 산새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짧은 생이 아쉬운 매미들은 나무 등에 업혀 쉴 새 없이 운다. 산다는 것은 쉴 틈이 없는 것이며, 쉴 새 없이 누군가를 불러야 하는 것이며, 하루하루를 아쉬워하며 울어야 하는 것이리라. 한 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음이다.

숲을 지나면 대웅전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부처님이 계시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두 손을 모으면 이마가 지고 온 땀방울은 비로소 뜻을 가지게 되고, 힘겨웠던 두 다리는 비로소 읽힐 수 있는 문자로 남는다.
법당 옆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앞서 말한 관음전과 홍룡폭포가 나온다. 벼랑 끝에서 시원하게 폭포수가 흘러내리고 쌓인 물 위에는 관음전이 있다. 원래 홍롱(虹瀧)폭포였던 홍룡폭포는 천룡(天龍)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무지개 ‘홍’자를 쓰는 홍룡폭포는 물이 많을 때 물보라가 무지개를 만든다고 한다.

홍룡사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元曉ㆍ617~686) 스님이 세운 절이다. 원효 스님이 세운 많은 절이 있지만 홍룡사는 조금 특별한 불사다. 스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당나라에서 건너 온 천 명의 대중을 위해 지어진 절이다.

원효 스님이 지금의 부산시 기장군 불광산에 자리한 척판암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저녁 공양 때 스님은 혜안으로 당나라의 태화사를 보게 된다. 절은 곧 산사태로 매몰될 지경이다. 마침 태화사는 천 명의 대중이 저녁 공양 중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대중 모두가 죽게 될 판이었다. 원효 스님은 공양 중이던 밥상의 그릇을 모두 내려놓고 상다리를 접어 밥상을 태화사를 향해 던진다. 태화사 허공에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신이한 소리가 도량에 퍼져나간다. 바람 소리를 따라 마당으로 나온 대중은 허공에 맴돌고 있는 밥상을 보게 된다. 대중이 밥상을 따라 절 밖으로 모두 나오자 산이 무너지고 태화사는 매몰된다. 절은 매몰됐지만 대중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 원효 스님의 밥상이 땅에 내려앉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태화사 대중이 땅에 떨어진 밥상을 들어보니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擲板救衆ㆍ신라의 원효가 판을 던져 대중을 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대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신라를 향해 절을 한다. 원효 스님의 밥상이 다시 허공으로 솟아올라 신라로 향하니 태화사 대중이 그 밥상을 따라 신라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천 명의 대중은 원효 스님의 제자가 된다. 원효 스님은 천 명의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천성산에 89암자를 짓는다. 그 중 하나가 홍룡사이다. 당시 스님은 화엄벌이라 불리는 벌판에서 <화엄경>을 설했는데, 제자들은 원효 스님의 설법을 듣기 전에 홍룡폭포에서 몸을 씻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낙수사(落水寺)라 했다. 천 명의 제자들은 모두 성불한다. 천성산의 본래 이름은 원적산이었으나 이때 천 명의 제자들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으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송고승전〉에서 전한다. 홍룡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절터만 있다가 1910년대에 법화 스님이 중창했다. 1970년대 말 우광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아담한 쉼터가 있다. 산행 중 흐른 땀을 식힐 수 있다.
천성산과 내원사, 원효암까지
홍룡폭포는 양산 8경 중의 4경이다. 그리고 홍룡폭포와 홍룡사를 품고 있는 천성산 역시 양산 팔경 중의 하나다. 홍룡사에 간다면 천성산도 함께 다녀오는 것이 좋다. 천성산 산행은 홍룡사 입구를 출발해 삼거리, 쉼터바위, 화엄늪 삼거리, 원효암 삼거리, 천성산 제2봉, 원효암, 전망대, 쉼터바위 편백숲을 거쳐 다시 홍룡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약 10km의 산행으로 소요 시간은 약 4시간 정도다.
높이 922m의 천성산은 많은 계곡과 폭포 등 수려한 풍경으로 인해 예로부터 소금강산(小金剛山)이라 불린다. 제2봉의 북서쪽 사면(하북면 용연리)에는 내원사(內院寺)가 있다. 희귀한 꽃과 식물ㆍ곤충들의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화엄늪과 밀밭늪은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가을에는 울창한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산 정상은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내원사 계곡 역시 양산 8경 중의 하나다.
원효암에서 홍룡사쪽으로 15분 정도 내려가면 천성산 절경 중의 하나인 편백숲을 볼 수 있다. 홍룡사에 가면 천성산과 원효암, 내원사까지 함께 다녀올 수 있다.

쉼터에서 보이는 대나무 숲이다. 여름철 대나무 소리는 청량하다 못해 시리다.

홍룡사의 유물
홍룡폭포의 폭포수는 그 옛날 설법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화엄벌을 지나왔다. 아득한 사연으로 패인 골짜기의 단면을 흐르며 그 시절이 남긴 설법의 메아리를 실어 나른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물소리엔 아득한 문자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옛날의 흔적을 읽어주는 홍룡폭포는 진정한 유물이다. 폭포수에서 들려오는 오래 된 문자의 메아리를 듣고, 숲에 깃든 삶의 이야기를 읽고, 다시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이제 등에 지고 온 땀방울이 비로소 뜻을 가지게 된다. 끊어낸 땀방울이 법당에 가득하다.
글ㆍ사진=박재완 여행작가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양산 IC로 나가 통도사 방면 35번 국도로 진행한다. 고려제강 양산공장 옆길로 우회전해서 대석리 마을 저수지를 지나면 홍룡사, 홍룡폭포로 가는 길이다.
1.5㎞ 정도 가면 공영 주차장이 있고, 800m 전방에도 주차장이 있다.
<주변 가볼 만한 곳>
▲배내골 양산시 원동면 대리, 선리
영남알프스라고 하는 가지산 고봉들이 감싸고 있으며,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맑은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이천동(梨川洞), 우리말로 배내골 이라한다.

▲내원사 양산시 하북면 내원로 207
천성산 기슭에 위치한 내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6.25때 불탄 것을 1958년 수옥 스님이 중건했다. 절 아래 4km정도 뻗어있는 계곡은 소금강이라 불리울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원효암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산6-1번지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원적산에 있는 암자다. 646년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 1905년 효은 스님이 중창했다. 내원사 부속 암자다. 원효 스님의 89암자 중 하나다.


박재완 작가는
서울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현대불교신문사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8년과 2010년 한국불교기자상(사진영상 보도부문)을 수상했다. 2012년 〈에세이스트〉에 수필로 등단했고, 2016년 5월 산문집 〈산사로 가는길〉을 출간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여행작가 및 전문사진 작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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