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백화산 반야사

반야사 앞 반야호수에서 참선하는 불자들의 모습. 호수에서 눈을 감고, 자연을 음미해보자.
山에 안긴 작은 절, 운치 매력
이를 찾는 길은 절여행의 백미
고요·경건함에 머리 숙여진다

백화산 석천골에 감춰진 반야사
오솔길 걸으면 만나는 문수 설화
나에게 말을 거는 호젓한 시간

절은 혼자가야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한 여행의 로망을 품고 있는 당신이라면 꼭 작은 절을 찾아가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절에서 그저 천천히 나를 위로하다보면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던 깊고 진한 여운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나를 위한 힐링여행은 모두에게나 절실하다. 그러나 큰 맘 먹고 도시와 일터를 떠나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긴장과 스트레스에 부딪히기 마련. 여행지의 소란함에서 벗어나 그저 지칠대로 지친 내 어깨를 다독여주는 그런 곳은 없을까. 그렇게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진정한 힐링여행이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여행, 가능하다. 글·사진=유철상 여행작가

힐링여행은 생각보다 가까이
산자락 곳곳에 둥지를 튼 산사는 화사한 햇볕 한줌에 마음을 들뜨게 하는 힘이 있다. 절에 가면 차분해지고 내면을 반추하게 되는 것도 그런 연유다. 바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휴식처인 셈. 그렇게 본다면 수천 개의 절과 암자를 가진 우리는 행복한 여행자라 할 수 있다.
풍덩풍덩 물이 흐르는 계곡이 반야사 초입을 알린다. 미완성을 위한 변주곡처럼 조금은 휘청거리면서 계곡을 흐르는 물길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본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아가다가도 문득 놓쳤던 것들을 다시 살려내는 매력. 녹음이 무성한 오솔길을 느리게 걸으면서 슬며시 마음을 열어본다. 소리 없이 지나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곳들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더위를 피해 찾아간 반야사에는 작지만 특별한 선물이 있다.

문수전 앞 절경, 시원하게 흐르는 물이 가슴 속 묵은 때를 벗겨낸다.
반야사를, 나를 찾아가다
반야사는 혼자 가면 더욱 좋다. 혹 볼거리에 무게를 둔 여행일지라도 절에 들어섰을 때는 최대한 눈을 감고 자연을 음미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풍경 소리며, 바람 소리, 산새 우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꽃잎이 날리고 하늘 그림자 내려앉는 곳. 그런 곳이 있다면 아예 주저앉아 몇 시간을 보내도 좋다. 명찰, 대찰, 삼보 사찰보다는 작은 규모의 절이 더욱 운치 있게 마련. 그래서 작은 절을 찾는 길은 절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작은 절은 산문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산속에 콕 안긴 절이 많기 때문. 산 속 오솔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그 고요함과 경건함에 머리가 숙여지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런 절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구도의 여정인 셈이다. 절에 가서 스님에게 말 붙이기가 쉬운 건 아니지만, 작은 절에서는 자연스럽게 다가가기가 가능하다.

사색에 젖게 하는 굽이굽이 길
반야사의 아름다운 경치와 녹음이 동시에 내려앉는다. 구부러진 길처럼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굽어서 가거나 그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처럼 고요하기도 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백화산 석천계곡 굽이 지점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일주문을 지나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여름철 장마가 져서 계곡의 물이 불어나면 없어졌다가 장마가 지나가면 다시 아름다운 다리로 모습을 드러낸다한다. 그런 모습이 마치 내 마음 속에 부처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는 것과 비슷하게 보여 문득 관음전의 부처를 만나고 싶어지게 만든다.
반야사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약수를 찾게 된다. 약수터 한편에 “용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 한 모금 마시고 부디 성불하세요”라는 예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소박한 반야사 대웅전 모습. 대웅전 앞 푸른 잔디밭은 포행에 적합하다.
충청도 첩첩산중에 숨어 있는 절
소백산맥 줄기인 백화산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백화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가 태극 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꽃 모양의 지형을 이루는데, 영동의 깊은 산이 감싼 연꽃의 중심에 반야사가 위치하고 있다. 반야사는 법주사의 말사이다.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에 의상대사의 십대제자 상원 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문무왕 재위 기간인 661년에서 681년 사이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여러 가지 창건 설화가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무염국사가 황간 심묘사에 계실 때에 사미승 순인을 이곳에 보내 못의 악룡을 몰아내고 못을 매워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에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학조대사가 중수하였고, 조선 세종대왕 때에는 신미대사의 주청으로 절을 크게 중건 하였으니 문수보살과 세종대왕의 설화도 이때의 일이다. 한국전쟁 때 불탔던 것을 근래 2~30년 전부터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역대 반야사에서 수행했던 유명한 스님으로는 고려 충숙왕 때 무이국사가 이곳에서 출가를 했고 조선 초기 큰 도인이었던 벽계정심선사도 이곳에 주석했으며 또한 이곳 반야사를 배경으로 한 사명대사의 시도 전해 내려온다.

반야사는 도량이 넓은 것은 아니지만 문수전과 관음전이 떨어져 있어 전각까지 가는 길이 산책로이자 등산로가 된다. 산마루에 있는 문수전까지 가는 길은 사계절 내내 아름기로 유명하다. 절벽 아래에 흐르는 강이 제법 넓고 커다란 바위가 군데군데 평평하게 펼쳐져있다. 그리고 문수전은 절벽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문수전의 작은 불상들, 동전을 이불삼아 편히 쉬고 있다.

오솔길 따라 문수동자 만나다
반야사를 찾았다면 문수전은 꼭 봐야 한다. 문수전은 수십 미터 높이의 아찔한 절벽 위에 지어진 가람인데 정묵당 뒤로 개천(석천)을 따라 5분쯤 걸어가면 문수전으로 가는 계단이 나온다. 방생 장소로 유명한 수월대를 지나고, 넓은 반석에서 잠깐 숨을 고른 뒤 돌계단이 이어지는 벼랑길을 올라야 한다.

산꼭대기 절벽에 독수리가 둥지를 틀고 있는 것처럼 자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문수전이다. 석천계곡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월정사와 같이 세조가 대웅전에 참배를 하자 문수동자가 나타나 세조를 절 뒤쪽에 있는 망경대 영천으로 인도한 후 목욕을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세조가 목욕을 하자 문수동자는 왕의 불심이 지극하기에 부처의 자비가 따를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사자를 타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반야사 극락전에서 오솔길을 따라 약 300m 정도 걸어가면 평평한 바위가 나오고 그 바위 옆 우측으로 돌계단을 따라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보이기 시작하는 곳이다. 문수전에서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 소리가 청량하게 들리고 목탁 소리가 유독 청아하게 들린다. 계곡이 둘러싼 곳에 둥지를 틀어 소리가 모아져 목탁 소리가 더욱 청명해지는 것이다. 문수전에서 학이 울면 학소대라는 이름이 아름다운 바위와 어우러진 문수전은 쳐지고 지친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를 모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반야’라는 글이 포함하고 있는 상징성이 문수보살이다. 또한 백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지장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지명 덕에 관세음보살 혹은 지장보살이 머물고 있어 기도가 영험하다고 한다.

반야사를 둘러싼 녹음을 곁에 두고 오솔길을 걸으면 무거웠던 마음에 들어찬 고통이 서서히 씻겨 내려간다. 누군가의 위안을 바라기보다는 나를 위로해주고 내 마음에게 말을 걸게 하는 호젓한 시간이다. 반야사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위로해본다.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황간IC를 나와 마산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월류교를 지나 신촌리감서리에서 우회전 하면 반야사 이정표가 나온다.
주소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다. 043)742-7722

<주변 가볼만한 곳>
▲월류봉 첩첩산중인 영동은 그 첩첩마다 아름다운 경치들을 꼭꼭 숨겨두고 있다. 반야사에서 자동차로 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월류봉도 비경 중 하나. 금강으로 흘러드는 맑은 물줄기 가에 깎아 세운 듯 세모난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라는 뜻의 월류봉(月留峯)이란 이름처럼 달밤의 정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난계국악박물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난계 박연 선생의 고향이 영동이다. 박연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국악의 맥을 잇기 위해 230평 규모의 난계국악박물관과 난계국악기제작촌이 자리하고 있다. 난계실에서는 박연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비롯해 국악연표, 연주모습, 국악기 제작과정 등 국악 관련 자료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관이 있다.

 


유철상 작가는

〈광주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됐고,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다수의 잡지와 신문사서 여행전문기자로 일했고, KBS, EBS, YTN, BBS, 불교TV, MBC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 여행 패널로 참여해 구석구석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위한 사찰여행 55〉 〈천국보다 멋진 럭셔리여행〉 〈괌 사이판 셀프트래블〉 〈주말엔 서울여행〉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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