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병원에는 경찰가족과 젊은 의경들이 많이 입원해 있다. 그 중에서 오래 전에 입원했던 한 전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 청년은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경과가 호전되면서 일반병실로 옮겨왔다. 병실을 순회하다가 만난 그는 시위를 진압하다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쓰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청년이 휠체어를 타고 병원법당을 찾아왔다. 그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큰 아픔을 겪게 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스님, 저는 앞으로 하반신 불구 장애인으로 살 것 같습니다. 의사선생님 소견이 그렇거든요.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듭니다.”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해요. 우리 모두는 자기 근본인 불성을 갖고 있어요. 물론 지금은 무척 마음이 아프겠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이 청년과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당장 누구보다 심적으로 고통 받고 있을 그가 안쓰러워 힘이 될 만한 이야기와 부처님 가르침을 들려주었다.

▲ 그림 박구원.

그러자 의기소침해있던 청년의 눈이 반짝이는 듯했다. 그때부터 그는 좌절감을 떨쳐내고 자신의 불성을 믿어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매일 밤마다 혼자 힘으로 침대에서 굴러내려 화장실을 기어 다니며 힘을 길렀다. 또 휠체어를 직접 잡고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병실 복도를 조금씩 걷는 연습을 하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이런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 줄 알았는데 기적처럼 조금씩 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퇴원 이후 장애진단을 받아 부대로 복귀하지 못한 채 제대해 고향인 충청도에 내려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을 때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다리를 다쳤던 그 청년이었다.

스님! 지금 밖에 잠시 나와 보세요!”

들뜬 목소리로 다급하게 나를 찾기에 전화를 끊고 병원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청년은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리는데 두 다리로 멀쩡히 걸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축하해요! 건강을 되찾아서 다행이에요!”

이게 다 스님 덕분이에요.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제게 큰 힘이 됐어요.”

그에게 그동안 얼마나 힘든 재활과정을 거쳤는지 얘기를 들었다. 그는 제대 후 자신의 불성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재활에 임했다고 한다. 무척 지난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예전의 건강을 되찾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을 기특히 여겨 새 차를 선물해줬다고 했다.

청년과의 반가운 재회를 마치고, 얼마 뒤 다시 전화를 받았다.

스님, 저 태권도 사범이 됐어요. 이제는 미국에 도장을 차려서 태권도를 알리려 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굳건한 의지를 바탕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한 그에게 나 역시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앞으로도 지금처럼 바른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길 당부했다.

오늘도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환자분들이 많다. 간병하고 있는 가족들의 고충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부디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이겨낼 수 있길 서원해본다.

-성범 스님(서울 경찰병원 경승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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