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띠(念) ③

초기불교 명상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두 축은 그침/몰입유형의 명상(사마타)살펴봄/이해유형의 명상(위빠사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니까야><아함경>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명상들이 등장할 때면, 어느 한쪽에 속하는 명상 수행을 설명하거나 닦을 것을 안내하는 서술 형태가 많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한역에서 지관(止觀)으로 부르는 용어에서 드러나듯이, 처음부터 짝을 이루어 그침/몰입유형과 살펴봄/이해유형의 명상을 동시에 강조하는 형태도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방식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띠(sati)’가 이들 명상과 매우 긴밀한 연관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설정은 사띠의 힘을 토대로 그침/몰입유형에 속하는 명상의 길을 택하거나 살펴봄/이해유형에 속하는 명상의 길을 지향해가는 하나의 구조화·체계화로써 불교명상의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하나의 시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띠를 일으켜 그 힘을 그침/몰입의 명상을 전개하는 데 쓰거나, ‘살펴봄/이해의 명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최적의 상태를 만드는 데 쓴다는 구도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띠의 힘이 그침/몰입또는 살펴봄/이해중의 어느 한쪽을 지향함으로써 특정한 하나의 명상법이 구체화되는 구조에서 바로 사띠의 세 번째 의미가 드러난다. , 사마타/위빠사나의 토대로써의 기능과 역할이 바로 사띠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띠가 하나의 발전기로써 그침/몰입또는 살펴봄/이해의 명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한다는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 그림 나은영.

승용차를 운전할 때를 비유로 들어보자. 목적지와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차는 이런 저런 경로를 따라 진행과 멈춤을 반복하며 목적지로 향할 것이다. 여기서 어떤 길로 가야 바람직한가는 목적지와 운전할 당시의 상황에 따라 최적의 길을 선택해야겠지만, 진행 자체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엔진의 존재가 토대가 될 것이다. 또 차체, 바퀴, 거울, 전등 등 어느 하나라도 쓰임새가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엔진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띠 명상이 사마타/위빠사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타나게 될 때의 사띠의 의미와 역할은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띠가 갖가지 명상법과 연관성을 갖추고 있는 경우로 나타날 때의 의미에는 그침/몰입/알아차림/살펴봄이 그때그때 최적화의 상태로 진행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는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게 된다. 기존의 번역어 중에서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말은 주의 깊음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 ‘주의 깊음의 안정적인 힘을 바탕으로 하여 사마타적인 명상인 그침/몰입을 지향하거나, 위빠사나적 명상인 알아차림/살펴 봄을 지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띠의 위상과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 당대에서부터 불교해석의 시대인 아비달마에 이르기까지 명상 실천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갖가지 명상법을 불교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도 땅에는 이미 요가라는 대단히 체계화된 명상의 방법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불교 명상법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이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사띠의 세 번째 의미를 주의 깊음으로 이해하는 독법에는 사마타/위빠사나를 최적화시키는 힘 또는 발휘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주의 깊음의 운용은 사마타/위빠사나명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특정 수행법의 지속적인 챙김으로 기능하고 있는 측면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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