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까만 조약돌

▲ 그림-강병호
화장실에 괴물 사는 거 아니?”

거짓말!”

민준이는 누나에게 말려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누나는 민준이를 놀리는 걸 좋아했다. 지난번엔 냉장고 괴물 얘기를 해서 민준이는 한 달 동안이나 혼자서 냉장고를 열지 못했다. 그릇 사이에 숨어있던 괴물이 손을 덥석 물어버릴 것 같았다. 엄마가 냉장고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서 아무것도 없다는 걸 보여주고 나서야 민준이는 안심할 수 있었다.

밤에 화장실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나는 건 괴물이 변기 물통 속의 물을 마시기 때문이래.”

본 적 있어?”

화장실 괴물은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

역시 거짓말이구나.”

민준이는 더는 듣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누나는 괴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누나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 던지면 민준이는 거기에 살을 더하고 옷을 입혀서 점점 구체적인 괴물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괴물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다. 머릿속의 괴물 때문에 오래도록 무서움에 떠는 건 민준이의 몫이었다.

하지만 물을 먹으면 엄청나게 커지지.”

젤리처럼?”

그래. 젤리처럼.”

초록색이야?”

아마도.”

물을 마셔서 커진 거라면 투명하고 미끈거리고 축축하겠네?”

그렇지.”

화장실 괴물은 물을 어떻게 마실까? 민준이의 머릿속은 이미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물컹물컹한 초록 괴물로 가득 찼다. 코끼리처럼 긴 코로 물을 쭉 빨아들일 거야.

전혀 무섭게 생기지 않았어. 그렇지?”

어쩌면. 하지만 귀엽게 생겼다고 우습게보면 안 돼. 화장실 괴물에 닿으면 금세 빨려 들어가 버린다고.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어. 질식해서 죽을 때까지.”

민지야!”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소리쳤다.

민준이를 놀리지 않기로 엄마랑 약속하지 않았니?”

민준이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씩씩한 열한 살 청소년이라고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일주일 동안 컴퓨터 못 쓰게 할 거야.”

누나는 입을 삐죽이다가 민준이를 향해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누나는 괴물이 무섭지 않아?”

그런 게 왜 무서워? 나타나면 돌려차기를 날려버리면 되지.”

누나는 태권도 선수였다. 초등학교 때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대회에 나가서 여러 번 우승을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선수 생활을 하게 되었다.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하다가 경호학과에 가서 경호원이 될 거라고 했다.

누나와 민준이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달랐다. 누나는 운동하는 걸 좋아하고, 활발하고 씩씩했다. 민준이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겁이 많았다.

어른들은 남매가 성격이 서로 바뀌면 딱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민준이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내아이가 소심하고 겁이 많다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아 괜히 움츠러들었다.

엄마는 그런 민준이에게 다정했다. 침대 밑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서, 베란다의 빨래 건조대에 누군가 빨래를 입고 걸려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움에 떨면 엄마는 불을 켜고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해 주었다.

괴물은 그렇게 나쁜 존재가 아닐지도 몰라. 토토로나 슈렉도 좋은 친구들이잖아. 이렇게 하면 어떨까. 혹시 괴물과 마주치면 인사를 해보는 거야. 안녕? 하고 말이야.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엄마의 말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참아가며 안녕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 무서운 꿈을 꾸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 밤에 아빠는 달려와서 민준이를 꼭 안아 주었다.

아빠가 늘 민준이 곁에 있을 거야. 민준이가 위험해질 때면 아빠가 곁에서 민준이를 지켜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렴.”

아빠는 언제나 든든했다. 문제는 그런 아빠가 늘 민준이 곁에 있어 줄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화장실 괴물 이야기를 들은 후로 민준이는 자기 전에 물을 마시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화장실 괴물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할머니 집에 가기 전까지는.

수박이 문제였다. 달고 시원한 줄만 알았지 수박을 많이 먹으면 오줌이 자주 마려울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할머니 집의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다. 다리를 꼬고 몸을 비틀며 아침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오줌통은 점점 차올랐다. 도대체 밤은 왜 이렇게 긴 걸까.

할머니, 화장실에 좀 같이 가주세요.”

민준이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에게 부탁했다. 시원하게 오줌을 누고 나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민준이는 할머니에게 화장실 괴물 이야기를 했다.

제가 바보 같지요?”

전혀 그렇지 않아. 넌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상상력이 풍부한 거란다. 이 할미도 그랬단다. 온갖 것을 다 생각해내서 무서워하고, 걱정이 많았지.”

할머니는 화장대 서랍에서 작은 조약돌 하나를 가져와 민준이에게 주었다.

이 돌은 할머니의 할머니가 준 거란다. 무서운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돌에게 이야기를 하렴. 무서운 생각의 씨앗들이 이 돌 속에 담긴단다. 생각의 씨앗들이 너무 많이 담겨 무거워지면 잠시 물속에 담가두려무나. 그러면 말끔히 씻어져 다시 가벼워진단다.”

이걸 저한테 주시면 할머니는요? 무서운 생각이 나면 어떻게 해요?”

나는 괜찮아.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 돌이 알려주었거든.”

조약돌은 민준이의 손안에 쏙 들어왔다. 작고 까맣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조약돌을 보며 민준이는 속삭였다.

앞으로 너에게 해줄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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