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띠(念)②

앞에서 사띠(sati)’의 기본적인 의미를 잊지 않기로 풀 수 있는 근거로 법구경의 게송만을 제시했지만, ‘사띠잊지 않기로 풀어야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경전의 내용은 한두 쪽만으로 다 소개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잊지 않기가 사띠의 기초적인 의미라고 해서, 이 풀이만을 가지고 사띠의 전모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잊지 않기가 사띠에 내재된 하나의 의미가 분명하다고 해도, 이 의미는 공부하는 이들의 마음가짐, 자세, 일상의 마음 살림 꾸리기를 위한 대의에 속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과 차별되는 불교적인 명상의 면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잊지 않기는 닦음의 출발점에 서게 해주는 소중한 영역이지만, 닦음의 길로 곧장 나서게 하는 추진력의 의미가 그 속에 온전하게 내재되어 있지는 않다.

늘 잊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의 태도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마음상태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역동성으로 나타나는 데 필요한 그 어떤 개념, 사띠의 두 번째 의미를 이해하려면 바로 이 힘 개념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주의력을 불러일으켜주는 마음짓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마음짓이란 우리말 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몸짓에 대비시킬 수 있는 것으로 필자가 시험 삼아 써보았는데, 마음을 움직이는 작동 지점을 의미한다. ‘마음을 일깨움이라는 표현을 써도 통하는 말이 될 것이다. 흔히 불교 밖의 사유체계에서 깨어 있음이란 말로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뜻이다. 사띠를 마음지킴’ ‘마음챙김의 뜻으로 번역하고 있는 이들은 이 의미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 그림 나은영.

병에 걸렸을 때 나는 주의력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병에 걸렸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테라가타(長老偈)’ 게송 제30에 나오는 이 글귀는, 몸에 병이 들어 마음이 나태해지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음을 다잡는 장면이다. 또 다른 경전에서는 상대방에게 꾸지람을 들었을 때 자신을 돌이켜보고 충고한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낸다는 내용도 보인다(숫타니파타게송973). 여기에서 주의력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에 쓰이는 말에 모두 사띠가 쓰이고 있기 때문에, ‘사띠의 두 번째 의미를 주의력 불러일으키기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해당하는 용례도 잊지 않기로 옮겨야할 때만큼이나 니까야아함경에 나타나는 경우의 수는 매우 많다.

사띠의 두 번째 의미를 주의력 불러일으키기로 풀이하면, 불교 명상이 필요한 지점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잊지 않기가 계율정신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주의력 불러일으키기는 마음과 감관의 대상이 접촉하는 바로 그곳에서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앞에서 제시한 경전의 글귀처럼, 몸이 아픔을 조건으로 마음도 덩달아 아프게 되는 그 지점, 타인의 꾸지람으로 인해 감추고 싶은 자신의 상처 그곳이 드러나게 되어 불쾌함과 분노가 발생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사띠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띠의 두 번째 의미에는 감각기관에 접촉되는 대상의 인지’, 그 대상이 마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제대로 살펴보아야 하는 관찰의 도움이 제기된다. 더불어 동요된 마음상태를 그치기 위해 주의력을 작동시켜 몰입/집중의 힘도 요청된다. ‘그침/몰입유형의 명상(사마타)살펴봄/이해’(위빠사나) 유형의 명상과의 통로가 열리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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