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에필로그: 연재를 마치며

삼국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고유 특성 형성하며 전개
한국사회 현실 속에서
미래 여는 종교로 변해야

▲ 1998년 금강산 신계사를 찾아 통일을 기원하며 탑돌이를 하고 있는 스님들. 1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불교는 시대 흐름 속에서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이제는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선도하는 불교로 거듭나야 할 때다. 사진=〈한국불교100년〉
한국은 지리적·문화적·역사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태생적으로 주변부의 속성을 지녀왔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다층적 공간 속에서 중화문명의 수용자이면서 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한편 근대 이후에는 서양문명의 이식과 적용 과정에서 탈전통의 혼돈과 탈주체의 정체성 균열을 경험하였다. 근현대기에 나타난 맹목적 근대화 지상주의는 동양이라는 주변성, 더욱이 식민지의 아픈 상처를 탈피하고 넘어서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한국사의 흐름을 긴 호흡으로 되돌아보면, 특수(로컬)와 보편(글로벌)이 교차하면서 양자의 갈등과 융합이 되풀이된 과정이었다. 한국의 고유성(국풍)은 동아시아 차원의 문명성(화풍)과 결합하면서 변화와 도약, 확산을 거듭하며 확장되었다. 불교의 경우에도 전래 이후 토착신앙과 고대적 관념과 충돌하고 변용, 조화하면서 보편성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고유성을 창출하였다. 개인의 심성을 표출하고 내세로 향하는 방법을 제시한 불교는 고대 한국인들의 삶에 새로운 이정표를 던져주었다. 이는 한국사에서 자연의 법칙성과 도덕을 결합시킨 사회윤리이자 정치이념인 성리학, 합리적 이성과 제도, 그리고 과학문명을 내세운 서양 근대문명에 견줄 만한 파급력을 가진 것이었다.

불교는 지난 2500년간 인도에서 출발하여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고도의 사유체계이자 보편적 종교로서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 불교의 세계화 과정에서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격의적 문화 접변, 그에 따른 창발적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고, 3의 수많은 파생문화가 생겨났다. 한국 또한 불교 수용 이후 동일한 문명화, 보편화의 길을 걸어왔다.

근대기의 저명한 한국학자인 최남선(1890~1957)은 한국의 역사전통에서 불교가 미친 영향력과 그 위상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그는 조선불교의 대관으로부터 조선불교통사에 급함’(1918)이라는 글에서 한국의 역사와 불교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불교는 서민의 정신생활과 사회의 심령적 발전에서 유교보다 큰 역할을 해왔고, 사회적 세력과 문화적 영향력 또한 매우 컸다고 보았다. 또한 한국불교야말로 불교 유통에서 중요한 계통이자 결론적인 불교로서, 교리보다 학문연구를 중시하는 특성을 가지며 중국과 다른 특수하고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의미부여 하였다.

최남선은 19307월 미국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서 발표하기로 되어있던 조선불교-동방문화사상에 있는 그 지위’(1930)라는 글에서 다시 한 번 한국불교의 보편적 특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동서 문명 교류에서 동방 교통의 종착지인 한반도가 문화의 최후 정류지이며, 동아시아 불교사의 전개에서 삼론종의 승랑, 법상종의 원측, 화엄종의 의상 등 한국승려들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원효를 통불교, 전불교의 건설자로서 최고로 평가하였다. 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원심적 분화 경향을 가졌지만 한국불교는 구심적 귀합의 경향성을 보이며, 그 대표자인 원효에 의해 교학의 이론적 종합, 일승사상의 완성, 이론과 실천의 융화와 불교의 대중화가 함께 이루어졌다고 극찬한 것이다. 나아가 최남선은 인도 및 서역의 서론적 불교, 중국의 각론적 불교에 비해 한국불교는 최후의 결론적 불교라고 선언하였다. 이와 함께 석굴암, 고려대장경 등을 예로 들며 동방문화의 교차지점인 한국이 동아시아 불교사상 및 예술, 불교전적의 집성과 유통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하고 높은 위상을 차지했음을 거듭 강조하였다.

20157월부터 20166월까지 약 1년 동안, 한국불교의 역사적 전개와 특성을 한국불교 토픽 36이라는 시리즈로 연재하였다. 신문지상에 나간 토픽별 제목은 윤문을 통해 약간의 변화를 주었지만, 시대별로 게재한 36개의 토픽 주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국(5개 토픽)은 불교 전래의 전사와 수용 과정을 서술한 것으로, 1-불교의 탄생과 전개, 동점의 여정, 2-불교, 한반도에 들어오다, 3-신라, 불교와 왕권의 만남과 시너지 효과, 4-불교, 토착신앙과의 융화와 대중적 확산, 5-삼국의 불교 교학 이해, 학파불교의 전성기이다.

불교 공인기는 삼국에서 모두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수용한 시기였다. 신라에서 왕권과 불교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전륜성왕 관념, 불교식 왕명 사용, 진종 의식의 성립을 들었다. 이어 삼국의 교학 이해, 계율 정립, 원광의 세속오계와 자장의 교단 체제 정비를 소개하였고, 현세와 내세의 복을 기원하는 불교신앙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관음신앙, 미륵 도솔천 상생과 하생신앙, 전생의 죄를 참회하고 선행을 닦는 점찰법회,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 왕생신앙 등을 다루었다. 또한 토착신앙과 불교의 갈등과 융합과정을 언급하고, 팔관회, 백고좌회, 불국토 관념 등을 들어 호국불교의 모습을 설명하였다.

통일신라(5개 토픽)6-정토, 내세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7-원효,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를 뛰어넘다, 8-교학불교의 만개: 의상 화엄과 해동 유식, 9-통일신라, 불교문화의 화려한 꽃을 피우다, 10-불교 새로운 시대를 열다: 선과 풍수지리이다.

삼국통일 과정과 그 이후 불교가 삶의 고통을 위로하고 내세의 안락을 기원하는 한편 지방사회의 통합에 기여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저잣거리에서 활발히 전개된 불교 대중화의 양상을 원효와 아미타 정토신앙의 확산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이어 유식학의 원측, 경흥, 태현, 화엄학의 의상은 물론 모든 교학을 종합한 원효의 사상을 정리하였고, 통일신라 후대에 도입된 선종의 전래와 산문의 개창과정을 기술하였다. 또 선승들에 의해 도입된 풍수지리설의 유행과 그 의미를 강조하였다.

다음 고려(7개 토픽)11-고려 불교 어떻게 볼 것인가?, 12-교종과 선종의 공존: 광종의 기획과 의천의 승부수, 13-지눌, 결사의 시대와 선교겸수 전통, 14-문화국가의 자부심, 고려대장경을 조성하다, 15-고려의 불교의례와 신앙의 향연, 16-한국불교의 자화상을 그리다: 해동고승전과 삼국유사, 17-원간섭기 불교계의 변화와 임제종 간화선풍의 유행이었다.

고려는 흔히 불교국가라고 할 만큼 불교가 사회적으로 중시되었고 전 계층에 걸쳐 신앙되었다. 다만 국가는 사찰을 지원하는 한편으로 불교를 관리, 통제하였고 교단의 정치 세력화는 경계하였다. 고려는 승정체계를 관료체제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하였는데 이는 정치와 종교의 이원체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상징적으로 왕사와 국사를 두었고 국가의례로 연등회와 팔관회를 매년 개최하였다. 고려의 불교교단은 화엄종, 법상종 등의 교종과 조계종, 천태종의 선종이 병립하였다. 고려는 두 차례의 대장경 조성, 의천 등에 의한 불서의 간행과 유통을 통해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의 주역이 되었고 문화국가로서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었다. 고려후기에는 보조 지눌로 상징되는 선종 계통이 교계의 주류가 되었는데, 무신정권 이후 결사운동이 확산되었고 임제종 간화선풍이 크게 유행하였다.

조선(13개 토픽)은 일반 대중은 물론 학계에서도 그간 주목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실상 또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욱이 식민지기 이후 억불과 쇠퇴의 도식이 투영되어 조선시대 불교의 슬픈 자화상이 그려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불교는 존립하였고, 한국불교의 원형이자 전통의 근간을 이루는 시기인 만큼, 비중을 늘려서 상세히 소개하였다. 그 내용은 18-불교와 유교의 패러다임 전환과 조선불교 다시 보기, 19-조선전기, 억불정책을 단행하다, 20-전통의 유산, 왕실불교와 국왕, 21-선교양종의 재건과 도약의 전조, 22-임진왜란, 의승군 나라를 구하다, 23-임제법통의 성립과 문파의 형성, 24-선과 교, 염불의 융합: 이력과정과 삼문, 25-종교적 지형의 확대: 내세와 정토, 민간신앙과의 융합, 26-조선후기 승역의 양상과 사원경제의 기반, 27-유불 교류와 심성의 교차, 28-중국불서의 전래와 화엄의 전성시대, 29-19세기 선 논쟁의 전개와 선교일치, 30-불교 역사서 찬술과 전통의 집성이다.

여말선초에는 불교에서 유교로 상부구조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고 유교국가를 표방한 조선은 공식 영역에서 불교를 배제하였다. 조선 초에 사원의 경제기반을 국가에서 회수하는 억불책이 시행되었고 여러 종파가 선교양종으로 통합되었으며 중종대에는 법제적 폐불 상황까지 갔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듯 사찰의 대대적 철폐나 승려의 환속은 없었다. 또한 왕실불교의 전통은 조선말까지 이어졌고, 불교는 여전히 내세의 기원을 해소하는 종교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특히 정토왕생을 기원하는 염불신앙이 성행하였고 산신각에서 볼 수 있듯이 민간신앙이 사원 공간 안에 포섭되었다.

임진왜란의 의승군 활동으로 불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17세기에는 선교겸수의 교육과정, 선과 교, 염불을 아우르는 수행체계, 임제 선종 계보의 법통이 정비되었다. 조선후기에는 국역체계 안에서 승역이 운용되면서 승려의 자격과 활동이 인정되었고, 각계의 후원과 사원의 경제적 자구책 마련을 통해 많은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강학을 통한 교학 연찬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주석서가 나왔다. 삼교일치론 주장이나 유학자와의 밀접한 교류는 전 시기에 걸쳐 나타난 보편적 현상이었다.

끝으로 근현대(6개 토픽)의 토픽 주제는 31-문명개화와 불교 근대화의 길을 찾다, 32-사찰령 체제의 현실: 자주적 종단의 꿈 물거품이 되다, 33-불교근대화와 세속화의 상징: 대처식육, 34-근대불교학의 수용과 불교 전통의 조형, 35-식민지 유산의 청산: 불교정화의 빛과 그림자, 36-한국불교의 현재와 나아갈 길이다.

근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불교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개혁론과 근대적 지향, 식민지의 정치적 현실, 대처 문제의 시대적 배경과 전개, 근대불교학의 연구방법론을 적용한 한국불교사 이해의 축적, 정화의 과정과 결과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또한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과제,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국불교는 인도는 물론 중국과도 다른 고유한 특성을 형성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이는 불교의 보편성과 확장성이 한국적 토양에 완전히 뿌리내렸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역사에서 불교는 사상, 종교, 문화, 의례, 문학 등 많은 영역에서 거대한 변화를 추동해 왔고, 한국인의 심성과 가치관의 저변에는 유교와 함께 불교적 맥락이 잠재되어 있다. 장기지속, 내재적 전통의 가장 중요한 축이자 역사였던 불교는 지금 현재도 한국사회의 현실,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다만 독선과 배제, 갈등과 대립이 아닌 포용과 융화, 절충과 조화를 이끌고 상생과 공존의 미래를 여는 불교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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