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저희 병실에도 오셨네요. 호호!”

경찰병원 병실을 순회하며 환자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어느 병실에서 한 보살님을 만났다. 자신의 이름이 숙희라며 앉을 자리까지 마련해준 보살님은 전혀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환자보다는 간병인에 가까울 만큼 웃음이 많고 목소리도 밝았다.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시던지 그 이후로 숙희 보살님이 있는 병실을 방문하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숙희 보살님은 몸이 좋지 않아 몇 년 동안 수시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은 병실 환자들과 고루 나눴다. 특히 자신도 같은 환자인데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인연으로 아는 환우들을 찾아가 말벗을 해주며 상대방을 즐겁게 했다. 유쾌한 성격 덕분이었는지 숙희 보살님은 경과가 좋아져 이내 퇴원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병실을 순회하다가 숙희 보살님을 다시 만나게 됐다. 하지만 처음엔 그저 닮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큼 내가 알던 숙희 보살님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과 온몸이 퉁퉁 부은 숙희 보살님은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밝았던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급성 유방암이 원인이었다. 긴급하게 수술이 진행됐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경승실장 스님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 그림 박구원.

스님, 마취에서 깨어나 정신차려보니 두 손을 침대에 묶어두었는데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요. 제 손목 좀 보세요. 아직도 퍼런 멍이 있어요. 내가 예수도 아닌데 왜 팔다리를 묶어놓았는지.”

아픈 몸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농을 던지는 숙희 보살님.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 사실 중환자실에 면회 갔다가 숙희 보살님의 몸부림을 본 적이 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팠을 텐데 소문이 다 났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보살님의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수술이 성공적이었는지 숙희 보살님은 퇴원할 수 있었다. 보살님이 병원을 나설 때 앞으로 달덩이 같은 푸근한 웃음 지을 일만 가득하길 기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숙희 보살님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돼 손가락조차 오므리고 펴기 힘들다고 했다.

스님! 그때 그냥 (저 세상에) 갔어야 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더 예쁘게 열심히 사셔야죠.”

오로지 한 구멍으로 가는데. 도착할 곳은 하난데. 눈 한번 감았다 뜨니 날이 가고, 달이 가고, 1년이 벌써 지나가네.”

혼잣말처럼 무심코 던진 숙희 보살님의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았다. 긴 투병에 어찌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았으리. 얼마 뒤 보살님은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돼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렇게 숙희 보살님은 이틀간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임종을 맞았다. 극락세계로 편히 가시라고 나무아미타불 정토염불을 올렸다. 보살님의 가족들은 생전 고인의 원대로 동국대병원에 시신을 기증했다.

숙희 보살님은 몇 년간 의료진의 도움을 받은 것에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겠다며 남편과 상의해 시신 기증을 결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고인의 거룩한 뜻이 의료발전 밑거름이 돼 같은 병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발원했다.

마지막까지 보시하는 삶을 살다 가신 고인의 넉넉한 마음. 밝은 빛깔의 꽃 한 송이가 졌는데, 꽃이 진 후에도 방안 가득 그윽한 향이 풍겨 나오는 느낌이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는데 문득 숙희 보살님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무관 스님(서울 경찰병원 법당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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