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 박사

참불선원 불교인문학 강좌원효, 부처의 삶

신라시대 의상대사와 함께 불교중흥에 큰 기여를 한 원효대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원효에 대해 해골물 일화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원효는 일심(一心)’화쟁(和諍)’을 중심으로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이런 그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면 어떤 의미가 될까?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620일 참불선원에서 열린 인문학강좌서 해탈과 자비는 같다. 무상함을 깨달아 허무주의로 빠지는 게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이승희 수습기자

해탈과 자비 근본적으로 동일
세상 모든 것에 아파하게 돼
계급 없는 불국토 주장한 원효
세상 아픔 그대로 받아들였다

▲ 강신주 박사는… 연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상상마당 등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출판기획사 문사철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삶의 핵심적인 사건과 철학적 주제를 연결시켜 포괄적으로 풀어낸 철학서를 다수 펴냈다. 동양철학 전공자이면서 서양철학의 흐름에도 밝아 쉽게 읽히는 철학을 지향한다. 주요 저서로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 삶을 만나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상처받지 않을 권리〉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등이 있다.

해탈은 반드시 자비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고급 서비스 산업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대가로 보시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래 불교의 전통은 굉장히 래디컬(radical:급진주의적)합니다. 선불교의 핵심은 바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유와 사랑이 같은 의미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교에서 자유에 해당하는 것은 해탈이고, 사랑은 자비입니다. 자유=해탈사랑=자비가 같은 뜻입니다. 결국 해탈=자비공식이 됩니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엄마에게 묶여있는 마마보이가 여인을 사랑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해탈은 마음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해탈이 자비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정신승리일 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집착과 애착을 끊으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집착하는 대상만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대상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착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만약 내 가족을 사랑하는 집착의 힘을 좋은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더 큰 사랑으로 발전도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해탈과 자비가 같다는 말을 일상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오늘 강의할 원효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될 겁니다.

여러분 원효는 스님입니까? 아니죠. 파계한 이후 소성거사(小性居士)로 죽었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신분입니다. 원효는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나는 자주 사람들에게 해탈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해탈하면 자비를 실천하면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이와 남편, 가족만 챙기지 않게 됩니다. 해탈의 자유를 얻게 되면 세상 모든 것들에 아파합니다. 그러니 속된 말로 대략 난감이죠. 누군가를 돕는이들을 보면 참 자유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해탈하면 집에서 돈이 많이 새어나갈 겁니다. 어쩌면 작은 보시할 정도만큼만 해탈하는 게 우리들에겐 더 나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해탈했을 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비행이 터지게 될 거란 사실을 잘 안 사람이 원효입니다.

괴로운 이들이 눈에 밟혀
원효를 소개할 수 있는 문무관속 화두 한 가지를 얘기해보겠습니다. 황소 한 마리가 미닫이문 격자틀을 뚫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소는 아마 해탈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꼬리가 나오지 못했단 겁니다. 화두는 왜 나오지 않았을까를 묻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황소가 나왔으니 꼬리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인도 고대 경전에서 코끼리와 꼬리이야기로 전해오는 내용입니다. 거기에선 우리가 해탈을 했어도 습관이나 고질적 병폐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런데 무문관은 다릅니다. 선사들은 인도 경전의 해석을 그대로 베껴올 분들이 아닙니다. 답은 딱히 정해진 것이 없으니 여러분들이 풀어내야 합니다. 저는 방안에 갇혀 있는 이들을 위해 꼬리라는 실마리를 황소가 남긴 것이라고 풀었습니다. 그게 바로 자비심아닌가요?

한 사람이 해탈했을 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눈에 밟힙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 주위사람들을 되돌아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유로워지면 세상의 고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꼬리를 빼지 않는 황소의 의지는 비장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꼬리란 설법이나 경전일지도 모릅니다. 선사들이 깨달음을 얻은 후에 불립문자를 내세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을 수 있으나, 스님들은 경전을 남겼습니다.

원효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서라벌일 겁니다. 신라시대 당시 원효가 어떻게 살았는지 가늠해보면 이해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찰은 황룡사와 분황사입니다. 황룡사는 지금 목조건물 터만 남았습니다. 황룡사는 국가사찰로서 궁궐 바로 앞에 자리했고, 도금된 커다란 불상과 9층 석탑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분황사는 황룡사를 바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황사 바로 뒤편에 저잣거리가 있었습니다. 원효 뒤에는 저잣거리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분황사에서 원효는 누구를 지키고 섰던 걸까요? 왕실 사람들일까요, 저잣거리 사람들일까요? 문득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어떤 종교인이 국가권력과 맞붙을 수 있을까요? 약자들의 시위 현장에 스님들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라 왕실은 정권 정당화를 위해 스스로를 전법왕이라 칭하고 민중의 해탈을 명분으로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왕족들 입장에서 보면 원효는 위험분자였습니다. 에피소드 하나를 들어보시죠. 원효가 길을 걷다가 나에게 자루 없는 도끼를 달라. 그러면 하늘을 지탱하는 기둥을 만들겠다(誰許沒柯斧我斫支天柱, 수허몰가부아작지천주)”고 말했다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이 전설은 원효를 폄하하는 근거로 아직도 인용됩니다. 원효가 후사를 얻을 여자를 청하는 내용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중국 한나라 시대 저서 춘추번로에 보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은 왕을 의미합니다. 한비자에 군주는 이라는 두 자루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게다가 작()은 쪼개다는 뜻 이외에 다르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재구성하자면 원효는 왕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했던 셈입니다. 사람을 해할 수 없는 자루없는 도끼로 왕을 없애야 불국토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굉장히 거센 주장이니 기득권이 위협을 느꼈을만합니다.

원효 철학의 깊이
대승기신론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핵심적 위치에 있는 저서입니다. 원효는 이 책에 주석을 달아 대승기신론 소별기를 지었습니다. 기신론의 핵심은 일심이문(一心二問)’입니다. 마음에 진여문과 생멸문 두 개의 문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대승기신론에 여러분들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한 마음에 부처와 중생의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해탈로 가는 진여문으로 나오면 부처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속으로 향하는 생멸문이 닫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도 방심하면 필부가 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합니다. ‘일심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원효는 기신론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완벽한 저서를 남겨 기신론을 찬란히 빛나게 했습니다.

원효의 주석을 보면 생멸이란 마음이 생겼다 멸했다하는 것이며, 집착같은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이 마치 조울증 상태인 겁니다. 생멸은 자기 집착에 갇혀있는 마음입니다. 집착은 무언가 없어졌을 때 찾아옵니다. 만약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만 알면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빈 호주머니를 돈이 없어진 호주머니가 아니라 그냥 호주머니로 봐야합니다. ‘없다는 개념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있다는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없음에 사로잡혀 좁게 보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합니다.

진여문을 통과하면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내 마음이 날뛰어 세상을 왜곡하지 않고, 물에 비추듯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맑고 고요한 물은 바람이 불면 흔들립니다. 그때 생멸의 흔들림은 처음의 흔들림이 아닙니다. 비록 처음 마음 속 요동은 나 때문에 생겨났지만, 결국 세상이 아프기 때문에 나 또한 흔들립니다. 우리는 타인 때문에 흔들리며, 안타까운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렇게 남이 아픈데 내가 아픈걸 느끼면 자비가 저절로 일어납니다. 해탈에 이르면 너무나 섬세한 마음 때문에 남을 보고 아파합니다. 부처는 타인 때문에 웁니다.

금강삼매경론에는 용왕이 원효에게 금강삼매경의 주석을 맡겨 저술하게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금강삼매경은 용왕 소유이므로 그 실체가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본 학자들은 원효가 만주지역 경전 중 하나를 위조했다고 폄하했습니다. 그러자 국내 한 학자가 오히려 그래, 우리는 경전을 만들었다며 반격을 했답니다.

원효는 경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불교 전반을 깊이 이해한 대학자입니다. 저는 원효가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도 저술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은 대승기신론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열반에 이르면 열반에 이를 수 없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열반에 이르면 평화의 순간은 잠깐이고, 맑은 물이 바람에 요동치듯 세상 모든 고통을 섬세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다시 평화롭지 못하게 됩니다.

진짜 깨친 이는 열반에 머물러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열반을 감당할 수 있나요? 내 아이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들을 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열반에 이르지 않는 사람들만 열반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상 풍파에도 꿈쩍 않는 얼어붙은 마음은 차라리 죽어버린 마음입니다. 마음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아픔이 느껴져 마음이 팔딱팔딱 뛰어야 합니다. 그러니 원효가 본 당시 서라벌은 굉장히 마음 아픈 모습이었을 겁니다. 민중들은 계급으로 산산이 조각나고, 전쟁에 동원돼 죽음을 맞았습니다. 원효는 분황사에 머물며 민중들을 위한 불국토 건설을 주장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왜 원효를 좋아하는지 아시겠나요? ‘열반에 이르면 열반에 머물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불교의 핵심은 초지일관 자비입니다. 무상함을 깨달아 허무주의로 빠지는 게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나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극도의 감수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비는 매우 강도가 세고, 실천적인 개념입니다. 자비를 행하고 선업을 쌓으세요. 대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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