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과 현대미술 - ⑫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동독 태생, 자유 찾아 서독으로
생존 위해 사실적인 그림 그려
현실 넘기 위해 작품 변화 시도
‘제로 운동’에도 깊은 영향 받아

추상적 이미지로 관념·틀 탈피
작가 정신이 머무른 흔적 느껴

동서를 가르는 커다란 장벽이 형성되기 바로 직전 그는 자유를 찾아 서독의 뒤셀도르프에 오게 된다. 짧지 않은 시간 전쟁과 분단, 이념의 갈등 속에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해서 진행이 되며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독일)는 살아 있는 예술가 중에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무엇이 그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삶과 예술을 주목하고 있다.

살아 있는 작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리히터는 이미 미술사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예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 가치를 찾아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살았던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대의 흐름 속에 휩싸이며 혼돈의 역사적 과정을 온 몸으로 경험하여야 했다. 이념으로 분단된 동독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젊은 시절 삶의 본질과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커다란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일상의 삶이 모두 같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이러한 생각은 그가 드레스덴의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표현의 자유조차 없는 것에 깊은 고뇌를 느끼게 되며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누가 어떠한 힘으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적 감정과 감각을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서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자유’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고통을 인내하며 1961년 그는 드디어 서독의 예술중심지인 뒤셀도르프에 도착하게 되며 대학에 진학하여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자유로움을 즐기기에 현실은 그에게 그리 쉽지 않았다.

서독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이기도 하였지만 동독 출신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는 생존을 위하여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자신이 동독에서 배웠던 예술적 능력을 발휘하여 짧은 시간에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인지하는 대상과 현실의 깊은 골을 조금씩 채워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리히터는 예술에서도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기존의 사진을 이용한 표현에서 벗어나서 대상이 사리지고 이미지만 남는 추상적 표현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재현적인 요소가 사라진 화면은 대상에 대한 이미지 즉 작가가 인지하거나 감정을 일으키는 관점들을 이미지화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대상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는다. 중요한 요소는 작가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자신의 깊은 울림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정신성이 되는 것이다. 당시 뒤셀도르프를 중심으로 진행이 된 ‘ZERO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히터의 작품 〈추상화(Abstraktes Bild, 260x200cm, 1991)〉.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색채들이 뒤엉키며 발산하는 에너지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대변한다.
〈Abstraktes Bild(260x200cm, Oel auf Leinwand, 1991)〉은 ‘추상화’로 제목붙인 이 작품은 리히터 추상 회화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강렬한 색채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칠해지며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색채의 개별적인 특성들보다 서로 혼합을 통하여 나타나는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그는 의도하고 있다. 리히터는 어떠한 것도 결정하지 않는다. 행위의 반복일 뿐 어떠한 목적성이나 개념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색채들이 서로 뒤엉키며 발산하는 에너지는 자신의 삶을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화려함 속에 감추어져 있는 자신의 내면적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수행을 시작하는 초심자가 자신의 관념적 사고를 모두 벗어 버리듯 지금까지 자신이 의지하고 신념처럼 간직했던 가치들을 한 순간 모두 벗어 버리는 행위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엄숙한 의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치열한 생존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많은 부분 구속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틀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이나 생각들이 자유로워지면서 자신의 작품은 더욱 강한 힘을 발산 하는 것이다. 필자가 이 작품을 독일 쾰른에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에서 처음 보았을 때 받았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예술에 대한 깊은 고민이 많던 필자에게 이 작품은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에 대한 이치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다. 존재하는 것은 고정되어있거나 항상 그대로 있지 않는다는 이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하지만 그것이 변화인줄을 알지 못 하면 그 생각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리히터의 이 작품을 보면 지금 사진으로 봐도 새롭다. 왜일까? 내가 보는 시각이 변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감각은 서로 다르다.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Abstraktes Bild(Oel auf Leinwand, 82x62cm, 2003)〉은 리히터의 생각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계속해서 많은 색을 칠하게 되면 검정색이 되거나 흰색이 된다. 즉, 다시 말해 모든 원색의 색을 계속해서 덫 칠하게 되면 결국에는 검정색이 된다. 각 개별적 특성들이 사라지고 모두가 혼합되어 어두운 색이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검정색의 바탕에 흰색의 물감을 계속해서 칠하게 되면 화면은 점점 밝아지며 흰색에 가깝게 된다. 이 작품은 검정색의 바탕에 반복해서 흰색을 칠하면서 나타나는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 〈추상화(Abstraktes Bild, 82x62cm, 2003)〉는 검정색의 바탕에 반복해서 흰색을 칠하면서 나타나는 특성을 보여준다.
관념적 사고가 깊은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 낸다. 현실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을 더욱 공고히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거리감이 있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찾아가지 못하고 고정된 생각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생각 속으로 끌어 들여 자신의 관점이 옳다는 생각을 하며 현실과 멀어지는 것이다. 무명 속에서 방향을 잃은 것이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온통 검은색이다. 하지만 눈을 뜨면 세상은 밝은 빛으로 인하여 모든 것들이 생동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처럼 리히터의 작품은 무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선사는 관조하라고 하지만 무명에 가려져 있는 상태에서 그 무명을 관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중에 하나가 리히터의 작품처럼 작품을 가까이에 놓고 자신의 마음이 변화해 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매 순간 작품을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감지하여 자신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 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저 깊은 내면에 있는 어두운 검정색이 보일 때도 있고 흰색이 덫 칠해져 회색빛을 내고 있는 부분이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고, 거의 흰색에 가까운 부분이 강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것에 지금 내 마음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선(禪)사상이 일반인들에게 확산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부분 중의 하나가 예술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선을 체험하고자 선방을 찾아가서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지만 다리만 아프고 도저히 선에 대한 깊이를 인지하지 못하던 경험자들이 시작한 것이 작품 명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구입하여 생활공간 속에 놓고 늘 상 보며 작품이 변화해 보이는 느낌을 기록하여 시간이 흐른 후에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특히 리히터의 이 작품처럼 무채색이나 단색의 작품들은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예술가의 작품은 작가의 정신이 머무른 흔적이다. 작가는 작품을 하는 매 순간 매우 집중을 하여 작품을 한다. 이러한 작가의 집중력은 작품에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다. 때문에 관람객은 그 작가의 정신성을 작품을 통하여 느끼게 되는 것이다.

리히터의 많은 작품들은 세계의 미술관, 갤러리, 기업, 개인 소장자 등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리히터의 정신의 발현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다. 혹자는 그의 작품가격이 높기 때문에 그 작품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리히터의 작품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것이 단지 가격이 높다는 것이 아닌 그의 정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가치는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선사의 설법이나 글을 통하여 어떤 사람들은 선사의 삶의 유품이나, 흔적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곤 한다. 각자의 방식은 다르지만 깨달음의 흔적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자신이 무명 속에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그의 열정과 열망이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행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의 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절실한 노력은 그대로 작품으로 표현되어 자신의 정신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작가의 혼이 담긴 흔적이며 살아 있는 생물이다. 그 생물의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보는 사람의 자유다. 자유는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그의 작품에서 느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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